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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Sep 05. 2021

답답한 부모들

학생들의 두려움

오늘도 큰아이와 나이 든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갔다 왔다. 요즘 하늘이 너무 예뻐서 어디를 찍어도 예술이다. 시골에 살면 운동을 많이 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그렇게 운동량이 많지 않은 데다가 개들도 나이가 들다 보니 움직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시간을 내서 매일 산책을 나온다. 산 언덕 위 패러글라이딩 착륙장까지 올라가니 사람도 없고 바람도 시원해 개들보고 뛰어 놀라고 줄을 풀어 줬다. 마당하고 다른 환경이라 나름 멀리까지 냄새 맡으며 돌아다닌다.

개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자유로워 보이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가끔 수학 공부 상담을 온 부모들과 학생들에게서 느껴지는 긴장감 때문에 나 스스로 고 3 입시생이 된 것과 같은 긴장감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이제 고1밖에 안 된 학생인데 내일 수능 보는 입시생처럼 하루 종일 공부만 한다. 영어단어 외우고 수학 문제 풀고 좀 쉬면 또 과학 인강 듣고 논술도 다니고 게다가 활동도 중요하다니 무슨 무슨 활동을 등록해서 하러 다니기도 한다. 그 학교에 올해 유난히 공부 잘하는 학생이 들어왔다나...

학교에서는 등급을 나눠야 하니 문제가 어렵게 출제된다. 못 따라오는 애는 등급 깔아주는 역할밖에 안되고 공부 좀 한다 하는 아이들은 1등급 2등급 3등급을 따려고 아동 바동이다. 누군가 1등급을 하면 그 다른 누군가는 2등급을 할 수밖에 없고 밀려 밀려 5등급 6등급... 이렇게 줄 세워진다.

가끔 같은 학년 아이가 있냐? 걘 몇 등급이냐? 이런 저련 성적 이야기를 물어본다. 왠지 거부감이 슬며시 올라온다. 물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1등급 아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학원인지. 그런 것들이 궁금할 것이다. 나도 아이들 학창 시절에 공부를 가르치고 싶은데 어디서 가르처야 할까? 알아보다가 누가 이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좀 다르게 가르치나? 그 학원 다니면 공부를 잘한다니까 정말일까? 하고 궁금해 하긴 했었다.

사실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의 소개로 전화를 준 것이다. 그 아이가 성적이 많이 올라 기대에 차서 전화를 한 것 같은데 부모님과 나눈 대화 내용은 내 교육 방법과는 맞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편하게 해 주며 공부시키는 편이고 스파르타 식으로 공부를 안 시켜서 나와 맞는 아이들이 있고 이런 방법을 싫어하는 부모들도 계시니 아이가 따라주기 나름이다 라는 상담내용으로 '공'을 하늘에 던졌다.

과도한 성적에 대한 집착은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부모들도 잘 알 것이다. 자신에게 남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니 무리해서 어려운 문제도 척척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면 누가 좋아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그걸 요구한다. 일부 순종적인 아이들은 부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하게도 그에 잘 따르나 보다. 그러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낙담과 좌절과 자존감이 땅을 친다. 하고 내성적인 아이들은  속으로 삭히느라 힘들다. 이러한 아이들 늘 초조해져 있다. 못하면 안 된다는 초조함과 긴장감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니 난 고3 부모를 졸업한 지 한참인데도 그들의 긴장감으로 내가 아직 고3 학부모인 듯 착각에 빠지게 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수학은 재미있게 배울 수도 있다. 뒤늦게 합류한 고3 학생 하나가 1학기 기말 성적이 좀 올랐다. 그러나 모의고사 성적은 그다지 많이 오르지는 못했다. 워낙 늦게 수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얘가 수학을 재미있어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문제 푸는 거 재밌잖아요"

"그래? 그럼 됐다. 그런 정신만 있으면 다른 공부도 재밌어질 거야. 대학가서도 열심히 해"

그리고 9월 모의고사 보고 마무리 하는 날

"저 수시 원서 쓰느라 이제 마무리하는데... 선생님하고 공부한 시간 나쁘지 않았어요 하하"

난 그거면 족하다. 아이가 수학하면서 좀 더 흥미를 느끼고 힘들 때 내가 도움이 되어주고 그래서 딛고 일어나 다시 공부할 수 있는 도우미가 되고 싶은 건데 이런 마인드로는 고등학생을 오래 가르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가끔 이렇게 상담하러 같이 온 긴장감 팽팽한 아이들을 보면 딱하고 답답하다.

묶어진 줄을 풀어주고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놀며 기뻐하게 하고 싶다. 수학 문제를 꼭 많이 풀지 않아도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다 보면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게 배움의 즐거움 아닐까? 한창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가야 할 나이에 경쟁의 도가니에 빠트린 이 상황에서 탈 출 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모님의 의지밖에 없어 보인다. 그냥 놓아주어도 될 듯한데.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좀 기다려 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내 아이에게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게 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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