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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Sep 03. 2021

이런 학생 저런 학생

나도 그중 하나

가끔 나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좀 특이한 점이 있어 보이려나? 궁금할 때가 있다. 어렸을 때는 내가 보는 거울의 모습이 진짜인가?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보이는 걸까? 럼 내가 하는 말은?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난 기분 나쁜데 쟤는 서슴없이 말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분 나빠하지 않는 걸 보며 나의 기준이 가끔은 잘 못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점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조심하게 되었다. 그게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 건 대학교 들어가서 나 자신이 답답해 보이면서부터였다. 원래 활달한 성격은 아닌데 단어 선정을 고심해서 표현하다 보니 말해야 되는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경우도 생기면서 내가 숨 막힐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단련하는 기간이 있어서인지 그리고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또 남편과 지금껏 살면서 생긴 능력인지 모르겠는데 사람 마음을 좀 잘 읽는 편인 아줌마가 되었다.

그 능력을 수학 개인교습을 할 때 요긴하게 쓰고 있다 못해 내가 나 자신에게 자만하고 있었다. 마치 거의 모든 아이들을 내가 잘 다룰 수 있을 것만 같던 착각. 개인교습 소전에 학원에서 나만의 착각이었겠지만 인기 있는 선생이었다.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겨주고 공부도 잘 알려주는. 그렇게 자신에 빠져있게 아이들이 날 좋아해 줬는데. 그건 다수의 아이들 중 좀 비율이 높은 편이지 아닌 아이도 분명히 있었다. 개인교습소를 하니 그 점이 더 잘 보이는 것뿐일 것이다. 나도 걔 마음을 읽기 힘들고 걔는 내가 말하는 것들에 전혀 반응이 없어 보이는 그런 류의 아이들이 학원에서도 물론 있었다.

다수의  다른 아이들에 묻혀 다니니까 잘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제는 거의 1대 1로 수업하다 보니 참 특이한 안쓰러운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을 코앞에서 어르고 달래며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떤 여학생이 있었다.

언제나 부스스한 얼굴로 힘들게 들어온다.

"어제 못 잤니?"

"늦게 잤어요"

"뭐하다?"

안 물어봐도 답은 핸드폰 하다가 또는 게임인데 아이와 말을 이어가려고 물어본다. 좀 대화가 오고 가야 상황을 정리하며 친해지고 그래야 공부를 좀 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데 거기까지가 아이와 대화의 끝이다.

뭘 알려줘도 풀어보라고 해도 목석처럼 그냥 앉아 있고 늘 혀 풀린 소리로 겨우 네에~ 한다.

그렇게 며칠을 왔을까? 오지 않기에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는다. 엄마한테 하니 엄마는 밖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신다. 결국 엄마가 집으로 달려가 잠에 취한 아이를 깨워서 오게 했다. 아이는 순하고 착하다. 그런데 엄마와는 매일 싸우는 것 같다. 엄마가 이제 그만 싸우고 싶다고 우리 애는 안 되겠다고 속상해하며 나와의 수업을 그만뒀는데 그렇게 결심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그 아이의 풀다만 문제집이 아직도 공부방 한편에 있다. 너무 많이 안 풀어서 버리기가 아까워 다른 애들 연습시키려고 그냥 뒀다. 사실 언젠간 오지 않을까 오면 기초가 약하니 다시 저걸 시켜야 하는데 하는 안쓰러움에  둔 것도 있다. 의욕도 없어 보이고 늘 잠에 취해있고 가정에 문제 있어 보이진 않았는데 아이는 공부를 해야지 하는데도 한 10분 지나면 혼미해지는 모습이 안타까워 야단을 친 적도 있다. 자극을 주면 긴장하고 하려나 하고. 그랬더니 다음 날 수업에 안 왔다. 엄마에게 전화하니 엄마가 얘 오늘 못 간다고 했다고 하신다. 어제 야단을 좀 쳤다 하니 어머니께서도 이해는 간다고 그래도 살살해 달라고 하신다. 물론 내가 살살하는 거 아시지만 어떻게 공부방 오게 하는 게 엄마의 첫 번째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다 하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공부가 방해되는  또는 마음을 못 잡는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하니 전혀 없다고 하신다. 핸드폰을 좀 보는 것뿐이라고.

내가 자만하던 학생에 대한 어르고 달래는 기술에 회의를 갖게 만든 첫 학생이었다.  지금은 어찌 지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원인이 뭘까 궁금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요즘 아이들이 sns 중독으로 인해 오히려  대면하고 관계 맺어야 하는 사회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sns로 또래의 비슷한 친구의 아이들과만 소통하는 문제에 대해서 접한 적이 있다. 혹시 그게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해결 못한 문제처럼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아 있는 학생이다.  언젠간 어려움을 딛고 잘 성장하길  응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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