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무척 더웠다.
방학에는 아침에 시작했는데도 공부방 문을 들어오는 아이들 등은 흠뻑 젖어있다. 에어컨을 계속 틀어놔도 방금 들어온 아이들의 땀이 식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아이들 오기 좋으라고 학교 후문 작은 원룸에 공부방을 차렸는데 요즘은 코로나로 거의 집에서 온라인 수업 듣다가 오니까 버스에서 내려 헉헉거리며 언덕을 올라와야 공부방 문에 다다르다 보니 좋게 말해 운동이 되는 거고 이 더위에는 더워 죽겠는 거다.
이렇게 어렵게 힘들게 온 아이들인데 뭐라도 하나 얻어가게 하고 싶은 건 내 마음이고 애들은 힘든 거 하나 했으니 와서 좀 쉬고 예의상 공부 좀 해주고 해방돼서 집으로 가는 게 목표다.
거기서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해서 하는 애는 기특한 거고 그렇지 못한 애는 집에서 하루 종일 있다가 이야기 상대가 그리워 집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굳이 내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부모님이 아시면 아마 까무러칠 일들도 좀만 친해졌다 생각되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난 처음엔 부모 입장에 빙의되어 들어줬는데 지나 놓고 보니 애들은 그저 배설하듯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일 뿐 심각하게 그것을 듣고 내 조언을 이야기해줄 필요까지는 없어 보여서 나도 그냥 즐겁게 수다 떨듯 들어준다.
듣다 보면 뜨끔 하거나 부모 대신 내가 변명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되도록 듣기만 하려고 한다. 그 나이가 중학교 2학년 3학년 이 시기에 집중되는 거 같다.
어제 늦게 한 부모님께서 문자를 주셨다.
'... 우리 아이가 엄마하고 이야기 많이 하고 싶은데 못해서 그걸 선생님과 이야기하며 푼다고 하네요. 선생님을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아요. 요즘 부쩍 짜증이 늘어 싫은 소리 많이 하게 되는데 그냥 믿고 맡기면 될까요? 아이가 해야 할 것은 아는데 하기 싫다고 그러기만 해서...'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처음에 와서도 공부에 대한 거부 반응이 컸던 아이인데 좀 나아지나 싶더니 이번엔 감정선이 요동을 치고 이성은 제어하려고 고개 들다가 서로 부딪히면서 밖으로 짜증이라는 형태로 발산해 버린다. 그러니 이미 그 짜증을 당하는 사람은 어른이라도 화가 난다.
부모보다는 이성적으로 아이를 대 할 수 있는데 본인이 어렵다고 생각한 문제에 봉착해서 일으키는 짜증은 나도 슬슬 화가 올라온다. 이 아이를 2년 정도 봐 오다 보니 어느 시점에서 이러는지 너무나 잘 보이는 데다가 그동안 들은 가정사를 종합해 보면 이러한 성향이 왜 생겼는지 이해가 가기 때문에 그래도 무난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가 있다. 이건 내 입장이고...
아이는 하루하루가 자신의 감정과 싸움인 것 같다. 그래서 끌어다 대는 핑계가 집안 사이고 그걸 내가 아이의 시각으로 듣게 되는데 그래도 공부를 시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마냥 푸념만 들어줄 수는 없다.
이 문자를 받은 날 아이 수업이 있었는데 공부만 시키고 얼른 집에 보냈다. 공부방을 나서며 컴컴한 아이 얼굴이 마음에 걸렸지만 엄마가 이렇게 문자를 보낸 걸 보면 아마도 집에서 꾸중과 반항이 오고 갔었나 보다.
고등학생 되면 아이들이 좀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기다림이 답이긴 한데 잘 기다려 줘야 하기 때문에 간섭은 약간- 믿음은 많이 그렇게 대화를 하면서 기다려 주는 우리 어른들의 어려운 수고가 들어가 줘야 아이들은 꽃 봉오리를 맺어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절에 큰 연꽃 포트가 여러 개 놓인 걸 봤다. 작년에도 물론 이맘때 있었는데 올해는 더워도 많이 더워서 이런 무더위에도 연꽃이 필까 의문이었다.
그런데 한여름의 시간이 지속되니 여기저기 연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운다. 꽃대가 높이 올라올수록 꽃은 크고 예쁘다. 이 더운 날에도 연꽃이 필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기다렸다면 그 기다리는 과정도 즐겁게 느껴졌을 것 같아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뿌리를 잘 내린 연은 무더운 여름이 되면 예쁜 연꽃을 진하게 피울 것이다. 모든 부모들이 그때를 기대하는 기쁨으로 하루하루 힘들어하는 나의 아이를 다독이며 즐겁게 보낸다면 어느 날 예쁜 연꽃과 같은 아이와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