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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Oct 06. 2021

사람 사는 일

고3 마무리하는 날

고3 두 명을 9월 모의평가를 끝으로 수시에 올인하기로 하고 마무리했다.

고3 1학기로 내신 산출이 끝나니 내신은 다 봐줬고 중간중간 모의고사를 풀어 줬다. 고3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행여 내가 놓치는 개념 때문에 아이들이 못 배우고 가게 될까 봐 모의고사 문제를 꼼꼼히 미리 풀어보고 킬러 문제 중 알아야 할 개념을 정리해 주느라 내 나름 시간 할애를 많이 하며 공부를 좀 했다.

내가 공들인 만큼 집에 가서 복습하면 좋으련만 너무 머리를 쥐어짜며 푼 문제는 다시는 보기 싫은지 풀만한 문제들만 풀고 너무 어렵다 느낀 문제는 집에 가서 정리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내신도 많이 오르고 모의고사도 등급이 오른 걸 보면서 나 스스로 대견하다 셀프 칭찬해주며 애들한테도 잘 따라줘서 그만하길 고맙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우리 얘들- 내 자식들을 이렇게 안달 떨며 봐줬다면 어땠을까? 가정을 해 본다.

나는 우리 애들에게 그저 너네들이 알아서 해라 했지 이렇게 까지 집요하게 봐주지는 못했다.

아침 먹여서 학교 보내고 청소하고 일하러 가고 하교하면 맞춰서 집에 데리고 와서 간식 먹이고 공부하라는 잔소리 하고 저녁 준비하고 그마저도 시간이 맞아야 하지 내가 가르치는 학원 시간하고 안 맞으면 아이들은 알아서 내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때우거나 빈 교실에서 혼자 공부들을 했다.

그마저도 학교 문을 닫으면 갈 데가 없어서 친구 집에 가거나 카페 가서 기다리거나 그렇게 떠돌았다. 집에 오는 차편이 없어서. 매번 택시 타는 건 비용이 아깝고.

다른 사람들은 엄마가 수학과 출신이니 애들 수학을 잘 봐줬을 거라 생각하고 말을 건네지만 내 현실은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아줌마 역할만으로도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짬짬이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좀 했다.

큰애는 대안학교를 갔고 작은 애는 혁신학교를 고등학교로 선택해서 진학했다.

큰애는 지금 대학원생이고 작은애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갔는데 나는 아직도 중학교 시험과 고등학교 시험 날짜를 신경 쓰고 있으니 아직도 우리 애들 중 고등 시절을 떠올리고 비교하며 추억 속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다.

가끔 학원 학생들을 이야기하다가 

 '내가 지금 이 노하우로 너 수학을 봐줬다면 넌 수학을 꽤나 잘했을 텐데...'

라는 내 말에

'에이 난 그래도 안 했을 거야'

그 말인 즉, 맘이 움직여야 공부하는 자기 자신을 알 게 된 성장의 결과에서 나온 말인 듯해서 한편으로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요즘은 큰 아이는 공부를 하다가 또는 회사 일을 하다가 벽을 만나면 스스로 동기를 찾는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일... 그런 모습을 보면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성장하고 있다는 대견함이 드는 거고.

스스로 일어서는 큰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렸을 때 내가 준 상처가 많았던 기억이 나면 미안함이 드는 거다.

나름 열려있는 엄마였는데도 쓸데없는 이론만 주워 들어서 그리고, 약간의 강박증이 있는 엄마의 성격 탓에 아이는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그렇게 나에게 요즘의 아이들을 이해하며 다독거릴 여유와 기술을 알려준 건 다 우리 아이들 덕분이다.

큰애와 가끔 만나는 작은애와 대화하며 요즘 아이들의 문화적 차이의 간극을 좁히는 이해의 지혜를 얻어내고 있다.

학원 아이들이 나와 공부하며 노력하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사실만이라도 얻어가면 인생이 좀 더 살만해진다는 걸 쪼금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9월 초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날 모의고사 문제를 하나씩 짚어주고 마무리하기 위해 고3 아이들을 한 명씩 불렀다.

마지막이라 그런가? 문제 푸는 마음이 가볍다.

미리 과자와 초콜릿으로 선물 봉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야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며

어디에서든 행복하고 언제나 널 응원한다 "

- 수학선생님 -

이라고 쓴 쪽지를 넣어 놓았다.

한 봉지 주면서

"이거 과자야... 까먹으면서 좋은 자소서 쓰고 공부도 좀 하고 결과야 어떻든 나중에 한번 들러라 "

"아! 네에~ 감사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 꼭 찾아뵐 거예요~"

" 저 선생님과 공부한 거 나쁘지 않았어요 하하하"


마지막 말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마치 고3이면 고생 끝일 것 같은데 지나 보니

이제 시작이다.

고3이 끝난다고 무지개가 펼쳐지는 것은 아닌데 여기에 초치고 싶지는 않다.

주어진 시간 열심히 살다 보면 잠깐 끝인 것 같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또 다른 목표지점이 보인다.

그렇다 달리다

어려움이 닥치면 언제든 일어설 준비하고 이제 출발하면 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수학 공부하다 보면 사는 게 이런 거지 싶다.


아 쉽다 잘 풀린다.

잉 어렵네 어떻게 풀지? 고민... 고민... 고민...

끄적끄적...

답은?

오????... 맞았다!!!!

그래... 좀 고민하니 답이 나오네.... 역시 나 대단해!!!

휴... 좀 쉴까?

음 이건 뭐냐...? 나타난 또 다른 킬러 문제

아 이건 또 어찌 푸냐.... 중얼중얼중얼... 뭐라는 거야?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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