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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Oct 12. 2021

꽃다운 나이

다시 오지 않을 학창 시절 즐겁게 열심히

알고 지내던 지인이 톡을 보내왔다.

'착한 학생 하나가 있는데 엄마가 수학 친절하게 설명해줄 선생님 찾던데...

연락처 줘도 돼요?'

'당연~ 나 친절해 ㅎㅎ'

'요즘 고 3도 마무리할 때가 돼서 여유 있으려던 차였는데 잘 되었네요

고마워요'

그리고 그날 저녁 전화가 왔다.

그때가 금요일이라 가족들과 모처럼 늦은 저녁을 먹으며 느긋하게 있을 때였다.

"선생님 영수 어머니한테 소개받고 연락드려요.

우리 아이 고1인데 혹시 상담 가능할까요?"

"네에~ 얘기 들었어요.

언제 하면 좋을까요?"

"오늘은 수업이 끝나셨나요?"

"네에 오늘은 끝났고요 주말에 전 수업을 안 하는데요"

"그럼... 내일 안되신다는 거죠?"

"...."

솔직히 난 그렇게 바지런하게 공부시키거나 가르치는 성격이 아니다.

아이들을 보면 최선을 다하지만 주말과 저녁 늦은 시간까지 나를 기다리게 해서 수업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아서 학교 끝나고 바로 오라 하고 주말은 가족과 지내면 좋겠어서 내가 수업하는 날은 주 4일이다. 시험 때는 물론 주말에도 2,3번 불러대지만 평소 주중엔 왔을 때 잘하고 주말엔 쉬자 주의다.

엄마는 당장 내일 했으면 하는 느낌이 전화기 너머로 전달된다.

"제가 내일은 수업은 없는데 어디 갔다 오느라 7시에나 가능해요. 괜찮겠어요?

" 아 정말요? 수업도 없으신데 일부러 나오시는 거죠?"

" 어머니 빨리 상담받고 싶으신 것 같아서요. 고1인데 혹시 이야기해서 서로 안 맞으면 다른 데 또 알아보셔야 하고 제가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요"

" 그럼 정말 감사하죠. 제가 맘이 좀 조급해져서요"

" 네에 알겠습니다. 내일 7시에 공부방에서 뵐게요 주소는 지금 이 번호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전화를 끊었다.


"내일도 나가야 하나?"

식구들이 안됐다는 듯 본다.

"상담받고 싶다는 건데 나한테 수업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 상담 실컷 하고 나서 다른 데 갈 수도 있고. 그런데 엄마가 급한가 봐... 그래서 내일 보자 했지. "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내 앞에서 어떻게 가르치는지 꼬치꼬치 물어보며 우리 아이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마치 당장 내일부터 수업할 것처럼 이야기가 끝나고 약속까지 다 하고 다음에 아이를 안 보낸다.

난 찰떡같이 믿고 그 시간 수업을 비워 놓고 기다리는데 연락도 없이 안 오니까 문자를 보낸다.

'오늘 3시에 온다 했는데 아이가 안 왔어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아니면 수업 안 하는 걸로 알면 될까요?'

'아... 아이한테 제가 연락해 볼게요.'

그리고 말이 없다.

초창기엔 순진하게 믿고 기다렸는데 그냥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앞에서 민망하니까 마치 할 것 같이 이야기하고 약속도 하고 집에 가서 안 보내기로 이야기가 되거나 아이가 안 가겠다고 해도 그냥 안 보내면 되지 굳이 연락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기로 하고 토요일 저녁 서울에서 일을 보고 7시 전에 가서 공부방 문을 열고 기다렸다.

딱 7시에 어머니와 딸이 문을 두드렸다.

"어서 오세요. 제 공부방 요렇게 생겼어요. 좀 작은데 제가 혼자 하기엔 딱 좋은 사이즈예요 ㅎㅎ"

"아늑하네요"

엄마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책상에 딸과 어머니가 앉았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이런 사교육 선생을 방문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굉장히 어색하기 때문이다. 나도 상담하러 갈 때 그랬고 이 일을 하는 나도 여전히 그렇다.

맘에 안 드는 선생을 보고 예의상 얘기 듣는 것도 힘들고 맘에 드는 선생도 인성만 좋아 보이지 아이와 어떻게 공부할지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지는 데다가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내성적인 내 성격에는 힘든 일이었기에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낯선 자와 낯선 분위기를 감내해야 하는 대다수의 어머니들에게 되도록 편하게 하려고 내 성격과 달리 너스레를 떨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아이 중학교 때 생활과 지금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간간이 학생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의 말을 종합해서 그간의 경험을 총동원해 상황판단을 해본다.


종합해 보면 이렇다.

아이는 굉장히 똑똑한 편이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눈빛도 예리해 보이고 집중력도 좋아 보이고 차분한 아이다. 별반 공부시키는데 반항도 없었고 공부하는데 욕심도 있어 보인다. 중학교 때 수학을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하고 전교 10등 안에는 충분히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오면서 생각 외로 점수가 나오지 않는 게 1학기 중간고사 기말까지 이어지니까 기말 끝나고 다시 공부를 하는데 어느 날 엄마에게

"엄마... 나 문제가 안 읽혀"

하며 힘들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지금도 수학 과외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 방법을 듣고 난 솔직히 많이 놀랐다.

어떤 날은 6시간씩 문제를 푼다는 것이다.

문제집 3권 정도는 기본이고 그 문제집들도 난이도가 있는 문제집인데... 그런 문제집을 3권 풀고 나면

시험 보기 1달 전까지 다시 한번 풀고 시험이 가까워 오면 과외선생님이 인쇄한 문제들을 풀기 시작한다고.

그렇게 공부했는데 시험문제 받으면 생전 보지 못한 문제들이 나온다고. 문제지 받으면 당황스럽고 그렇게 기말까지 치르고 나니 이제는 문제도 안 풀리고 문제도 읽지 못하겠다고 한다.

아이는 고3 학생이 수능 시험 전 공부를 해도 해도 점수가 안 나와 초조해진 그런 상태의 모습이었다.

이제 고1 1학기를 보내고 온 건데.

하루 4시간은 수학 수업이 기본이고 어떨 때는 6시간씩 앉아 있기도 한다고 한다.


"대단하다... 너 어떻게 버텼냐?"

이 말에 이어 내 생각을 이야기해줬다.

그렇게 공부한 거 어딘가는 다 쌓여있으니 지금 당장 점수 안 나왔다고 상심에 빠지지 말아라. 그런데 수학만 하고 살 것도 아니니 시간을 확 줄여도 될 것 같다. 내가 감히 말하는데 수학은 문제를 많이 푼다고 느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학 쫌 한다는 사람들은 오히려 문제를 많이 푸는 걸 싫어한다. 수학 과목의 장점이 뭔데. 수학은 원리만 정확하게 알면 그 원리를 적용해서 풀어도 되기 때문에 외우는 거 싫어하는 사람들이 수학을 더 좋아한다. 한마디로 수학을 잘하려면 원리를 잘 이해하고 원리를 잘 이해했는지 검증하려고 몇 개의 문제를 푸는 정도면 충분한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시험들은 등급을 따져야 하니 원리를 이해했나 만 묻기보다 여러 가지 개념을 섞어서 물어서 문제가 어려워지고 어렵게 느껴지는 현상이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거다. 

그래서 한 문제집만으로도 개념을 잘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은 없다고 본다.

요즘엔 문제집들이 난이도 별로 나눠져 있고 유형도 쌓이다 보니 문제들이 많아졌는데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방학 때 다음 학기에 배울 개념들을 익히면서 쉬운 문제집으로 친근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어려운 문제와 중간 정도의 문제를 3:7 정도의 비율로 하루에 조금씩 문제들을 풀어 나간다 정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어차피 고등학생의 목표는 수능 범위의 수학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너 참 잘 해왔다. 조금 마음 내려놓아도 충분할 것 같다. 편하게 공부하자. 즐기면서 공부하기 힘들지만 즐겁게 살자고 공부하는 건데 그렇게 힘들면 공부도 잘 안된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고맙게도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선생님 정말 수학을 그렇게 4시간 6시간씩 공부 안 해도 될까요?"

"그럼요~ 그렇게 어떻게 살아요. 전 절대로 그렇게 하라 하면 난리 날 텐데... 정아가 정말 대단한 거예요"

"맞아요. 저희 남편도 뭘 그렇게 많이 푸냐고 그러는데... 제가 만나본 수학선생님들은 고등학생이면 그 정도 해야 한다고들 해서... 불안해서..."


그 말을 듣고 난 나름대로 확신이 있긴 했지만 사람마다 다 다른걸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게 맞는지 살짝 갈등이 왔다.

"어머니, 솔직히 많이 시키면 안 시킨 것보다는 낫긴 해요. 그래서 저도 갈등이 되긴 해요. 그런데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고 다 공부하는 시간이 아닌 것처럼 수학은 특히나 많은 문제를 푼다고 성적이 많이 오르는 과목은 아니에요. 물론 일정 점수까지는 많은 문제로 커버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을 올라가려면 많은 문제보다는 집요하게 몇 문제를 파고 푸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보니 정아는 많은 문제를 푸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몇 문제를 온전하게 자기 문제화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도 할 수 있고 문제를 바꿔 낼 수 있을 정도로 한 문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게 중요해 보여요."


" 아... 예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수업시간은 어떻게 되세요?"

"전 어떨 땐 한 시간 반. 어떨 땐 두 시간. 얘가 잘 버텨주면 시험 때나 컨디션 좋을 때는 3시간도 하긴 하는데 되도록 그렇게는 안 해요."

"그렇게만 해도 수학 공부가 가능할까요?"

"전 두 시간 이상 공부 못하겠던데. 그리고 숙제 내주고 다음에 와서 틀린 것 같이 보고 다시 또 좀 하고 그러면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던데... 더 머리 쓰는 건 힘들걸요?"


솔직히 난 고등학교 문제 두 시간 정도 풀면 체력 딸린다. 어려운 문제는 3문제 이상 못 푼다.

내가 나이 들어 그런 건가? 순간 내가 의심스러워진다.


내가 옳다 주장할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학을 하루 6시간씩 풀어대며 지쳐가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이 똘똘하고 성실한 아이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다는 게 속상하다.

누가 보면 엄친아인데 본인은 스스로 힘들어하고 있으니...

이번 주에 중간고사가 있다.


나와 수업 후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고 엄마가 기분 좋다고 다행이라 해 줘서 나도 기분은 좋다. 그렇지만 이래도 성적이 나와 줄 수 있다는 결과를 내주고 싶은 내 사심은 어쩔 수 없다. 시험이 가까워 올 수록 편안해졌던 아이의 모습이 경직되어간다.


"(가명) 가영아 배운 건 어디 안 간다. 다 네 머릿속에 있어.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 주변도 보이고 너그러워진다. 문제 보는 것도 똑같아. 경직되면 편하게 풀어도 될 문제를 어렵게 풀고 엉뚱한 답을 쓰게 돼. 못 봐도 좋아 그냥 편하게 내가 어느 정도 이해했나 검증하는 정도로 가볍게 시험을 보자.:


누구에게는 마치 시험 못 보면 큰일 날 것처럼 협박하며 공부를 시키는데 오히려 (가명) 가영이에게는 편하게 조급하지 말라하며 공부하라고 매번 당부한다.


가영아 좀 더 편하게... 심호흡하고 세상을 즐겁게 살자. 17살 아름다운 너의 시간이 아깝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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