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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Oct 26. 2021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공부하기

요 녀석을 데려온 지 한 달 정도 되었나 보다.

집에서 재택근무와 대학원 수업을 하느라 하루 종일 앉아 있는 큰아이와 종종걸음으로 수업하고 나면 피곤한 하루에 허릿살만 굵어지는 나와 하루 종일 보호자와 산책만 기다리는 노령견들 두 마리와 함께 밤마다 산책을 나간다. 물론 우리 남편도 포함해서 어느덧 밤의 큰 스케줄이 되었다.

그래서 비가 좀 와도 그냥 비 맞으며 갔다 온다.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오락가락하던 저녁이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꼬리 치며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는 우리 애견들을 보면서 좀 번거롭더라도 짧은 코스로 집 근처로 빨리 갔다 오기로 하고 나섰다.

내가 저녁 늦게 오니 저녁 먹고 치우고 집안 고양이들 챙기고 산책 다녀오면 11시가 되기 일쑤라 저녁 시간이 좀 바쁘고 빠듯하다. 그래서 솔직히 비가 많이 오면 반갑다.

그런데 이렇게 부슬부슬 애매하게 오면 꾀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갔다가 내려오는 길인데 어디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주말마다 어쩌다 오는듯한 빈집 담장 돌 틈에서 소리가 나다 멈추다 하기를 반복하는데 우리 순둥이 개들이 혹시나 해코지할까 봐 줄을 단단히 잡고 남편과 큰아이가 주변을 찾아보았다.

야옹 소리가 멈춰서 사람이 싫은가 보다 하고 찾기를 멈추고 돌아서는데 다시 울음소리가 나더니 큰아이가 "여기 있네" 라며 가리킨 곳은 도로와 돌담 경계 잡초 속이었고 그 속에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비에 홀딱 젖어 추워 보였고 눈은 떴지만 아직 안 보이는 정도의 고양이다. 후레시를 비춰서 요리조리 보고

분명 어미가 있을 텐데 이를 어쩌나 고민을 많이 했다.

주변에 따뜻한 곳이 있으면 좀 놓아줄 수 있을 텐데 그 주변엔 돌 담하고 밭 하고 잡초가 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오고 새끼 고양이가 있던 자리로 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젖었으니 집에 데려갔다가 몸이라도 좀 말리고 다시 데려다 놓으려고 고민 끝에 데려왔다.


일단 물기를 말리고 박스 하나를 가져가 비 안 맞게 놓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큰아이가 요리조리 보더니 "엄마 머리에 이거 뭔가 같아?"

내가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보니 상처가 나서 아문 딱지인가? 글쎄... 모르겠다라며 후레시로 자세히 들여다 보고 기절할 뻔했다.

머리털에 줄줄이 벌레가 알을 낳아놨다.

아직 부화 전인 하얗고 조그만 알들이 딱지처럼 한쪽 머리털에서 등 중간까지 붙어 있었다.


가져다 놓기를 포기하고 아이가 방으로 데려가 알을 1시간 정도 털마다 뒤져서 제거했다.

.... 중략....


그렇게 데려온 아기 고양이가 잘 커서 지금은 깡충깡충 거리며 제법 고양이 자세를 취한다.

분유도 바꿔보고 병원에서 약도 타고 또 멀리 떨어진 병원까지 가서 진료도 받고 검사도 받고 큰아이는 지극정성으로 아기 고양이를 보살피며 내게 묻는다.

"우리 키울 때도 이랬어?"


우리 아이가 어찌나 안달을 떨며 신경이 곤두서는지 새끼 고양이 온 후로 1달이 피곤했다.

그러면서 내가 속으로 ' 나중에 큰애 자식 잠깐 봐달라 하면 못 보겠네. 이렇게 예민해서야..'

설사를 하는 것도 큰일이고 분유 안 먹어도 큰일이고 거기에 피가 섞인 변을 보니 온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잠도 못 자고 살펴보더니 결국엔 잘 키워서 지금은 까불 까불거려서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 어린 시절이나 유기묘 시절 그리고 우리 아이들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나면서 새끼 고양이 살피는 큰아이의 모습에서 내 젊을 때 아이들 낳고 쩔쩔매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한 고집하는 큰애는 자기가 찾은 인터넷 정보를 총동원하여 고양이 양육에 정성을 쏟는데 내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 한마디가 어떨 땐 잔소리로 듣고 흘리다가 하다 하다 안되니 내가 말한 방법으로 해 보니 또 먹힐 때는 그래도 나의 경험을 높이 사준다. 참으로 고맙게도 ㅎㅎ


가끔 열 가지 정보보다 내가 겪은 상황에 따른 대처가 유익할 때가 있다.

그런 정보가 구체적으로 모여 민간요법으로 전해 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병원에서 약을 타 와도 내 멋대로 먹이면 안 되지만 상황을 보면서 적당량을 임의로 판단해서 먹이면 더 효과적이었던 적이 있었다. 결국 내가 돌팔이 의사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내 육아나 내가 동물 키웠던 경험에 의해서 병원에서 손을 못 쓸 때 임의적인 방법을 쓰는 게 낫기도 했다.


아이들과 공부하는 것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지만 나는 이 아이에게는 이러한 방법이 안 먹힐 것 같아서 예외적인 방법을 쓴다. 가끔 너무 느리지 않나? 걱정이 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얼마나 공부하기 싫을까?

아이마다 다르니 그래 천천히 가더라도 질리게 하지 말자.

아이가 공부하겠다고 오는 이상 그 아이의 호기심까지 버리게 만들지 말자.

새끼 고양이를 보면서 아장거렸던 우리 아이들을 보며 조마조마하게 키우며 순수하게 걱정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공부가 힘든 아이들의 모습을 되새겨 본다.

여기까지 공부하러 문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몇몇 아이들의 마음을 다시 이해해 주며 개개인 아이들의 특징에 맞춰 가르치는 게 최선이다 라고 시작한 나의 초심을 찾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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