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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Dec 16. 2021

시험지 보고 공부하는 아이

제일 집증 잘되는 시간

100명의 사람이 모이면 100가지 특징을 볼 수 있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그 특징들이 조금씩 달랐던 기억도 난다. 게다가 요즘 폭풍으로 먹고 놀고 자라나는 새내기 업둥이 새끼 고양이를 보면 내가 키우던 동물들 중 까불기가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갑이다.

까불 까불 거리는 아기 냥이를 보고 있자면 내가 4년째 가르치는 한 학생이 떠오른다.

처음에 올 때는 귀엽고 앳된 모습이었고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티가 나는 까불이 학생이었다. 처음엔 군기가 바짝 들어 있어서 제법 이해도 잘하고 숙제도 해왔다. 그러다 조금씩 분위기에 익숙해 지니까 숙제를 안 해오고 숙제를 안 하니 지난번에 뭘 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고 그러니 수업은 재미없고 나하고 장난말이나 티카 타카 하면서 집에서는 게임에 서서히 빠져드는 자신을 주체 못 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숙제를 하게 하느라 수업에 집중을 하게 하느라 어르고 달래고 별 방법을 다 써봤다.

성품은 착한지라 협박이 통하기도 해서 내 마음엔 안 차지만 그래도 공부를 쫌 하긴 했지만 그 양은 나날이 줄어 갔다. 처음 군기 들었을 때는 100점을 받았다. 그리고 95점 그리고 85점... 그렇게 받다 보니 어느덧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었을 때 급기야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문제나 말썽을 핀 것은 아닌 데 학원을  늦는다거나 와서는 대놓고 '저 공부하기 싫어요'라고 생떼를 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살 달래면 그래도 '그럼 저 요것만 하고 가도 돼요?'라고 나와 협상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사춘기 시절을 넘기느라 속이 볶이나 보다 했고 이 시기를 잘 넘기고 머리가 크면 공부하는 힘을 키우겠지 라는 내 그동안의 데이터가 안 통하는 아이였다.

처음 받은 100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중3 수학 공부가 쉽게 안 풀린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좀처럼 집중은 안되고...

아이를 가만히 보면 무언가에 결핍을 주변에서 찾으려는 심리 때문에 불안해하는 증상이 자라면 자랄수록 커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 때 사춘기라는 시기를 겪으며 자아가 커지는 게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불안해하면서 너무 가늘고 길게 공부와 대치하며 반항기를 거치다가 고1이 되어서야 정점을 찍고 있는 형국이다.

이젠 귀여운 모습도 없고 반복되는 괴로움의 토로에 "어쩌라고..." 라며 나도 냉담한 반응으로 돌아섰다. 학원 쉬기를 두세 번 반복했다. 솔직히 내가 부모도 아닌데 하기 싫다는 학생을 어떻게 도와줄 방법엔 한계가 있는 듯했다.

어머니께 전반적인 진로상담을 전문기관에 가서 받기를 권하고 이번 기말시험 준비만 시키고 당분간 쉬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먼저는 알아서 좀 쉬다가 다시 결심했다고 오고 그럼 받아주고 그렇게 했는데 이번 고1 2학기 말을 치르면서 내가 도 닦지 않고는 속이 늙어가는 느낌에 요놈만 수업하고 나면 진이 빠졌다.

이제는 좀 컸다고 말도 안 듣고 자신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 모양새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얘가 힘든 걸 모르고 자라서 이 정도에서 낙담하나...' 싶다가도 너무 쉽게 수학 개념을 이해하고 쪼금씩만 주워들은 조각들로 시험을 봐도 두 권씩 문제집을 풀어댄 친구들만큼 점수가 나와주니 너무 방심하고 쉽게 공부하는 게 습관이 들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학원은 하나도 다닌 적이 없다. 오로지 나와 수업한 게 얘의 유일한 사교육이다. 그래서 솔직히 수학은 좀 점수가 나와줬었는데 본인이 받아들이기에 점점 개념이 어려워지고 여러 개념을 묻는 문제들이 많아지는 고등학교 과정에 접어드니 깨갱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벌써 고2를 앞두고 있다.

이렇게 고1을 어영부영 보냈으니 고2 과정 어찌 가르칠 수 있을까?

수학과정을 보면 중3의 고난 도급 문제들에 개념을 좀 더 얹어서 고1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 되고 고1의 개념이 충분히 숙지가 되어야 고2, 3의 수학 공부의 산을 넘기가 수월해진다.

물론 고2에 수학 공부 좀 해보겠다고 온 학생이 있는데 걘 어려움이 닥쳐도 넘어가야겠다는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에 지금 기말 준비의 산자락을 잘 기어올라가고 있다.

쉽게 쉽게 공부하고 쉽게 쉽게 생각하고 살다가 그 시기가 영원할 줄 알았던 까불이 고1 학생에게 이번까지만 내 도리가 있으니 기말시험 준비하고 이제 고만 수업하자고 했다.

왜 그러냐고 내게 묻길래 네가 좀 해 줘야 나도 그 줄을 당겨서 뭘 좀 알려주지 않겠냐. 네가 너무 받아들여주지 않으니 고2 과정을 어떻게 가르치겠니? 나도 방법을 모르겠다. 라며 내 입장을 하소연하고 지난 주말 기말 준비를 마지막으로 이제 고만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월요일 시험을 봤을 텐데 시험 점수도 묻지 않았고 얘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마 한 50점 받았으려나?

그리고 내년도 교재 준비를 하면서 엄마에게 어찌 말할까 하다가 아이가 힘들어하니 당분간 쉬었다가 동기가 생기면 그때 다시 상담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내게 아이가 수학 70점을 받았다고 그러더라고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아이 심경변화에 대해 알려주셨다.

시험 보면서 다음엔 좀 열심히 하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던데 솔직히 결심이 얼마 가지 못해서 선생님께 죄송하기만 하다고 말씀하셨다. 70점이 본인에게는 충격적인 점수라고 여겨졌던 모양인데 내가 보기엔 정말 잘 나온 점수라고 생각한다. 내게 꼬장 부리며 공부한 것에 비하면 말이다.

몇 년을 공부 가르치며 그 학생에게 맞는 공부법이라 생각한 것은 어려운 문제보다 개념 위주의 문제를 풀리면서 이 단원에서는 어떤 개념을 적용한 문제들로 이루어졌는지 알려주는 방법으로 공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가르쳐 주어 봤자 나만 혼자 풀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얘는 시험지 받고 그동안 들었던 풍얼을 총동원하여 초 집중으로 문제를 공부하면서 풀어나간다.

내가 모르는 게 아니니 평소엔 어려운 문제보다 쉬운 문제 위주로 흥미를 잃지 않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힘들다고 칭얼거리더니 시험 전날이 되어서야 수학을 당일치기로 하려니까 머리에 빨간 풀이 켜졌다. 게다가 배도 아프다 머리도 아프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태가 된 것이다.

"넌 시험지 받고 공부하는 애니까 내가 지금 알려주는 개념 정리를 머릿속으로 좀 해라 이게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네..."

한 4문제 정도 풀어 줬을까? 묻고 한참을 기다려 답을 하고 그 답에 대해 설명하고 그 과정을 좀 참나 했더니 이제 고만하고 싶다고 한다.

함수, 유리함수, 무리함수는 예전에 상태 좋을 때 좀 했다. 그런데 순열과 조합, 경우의 수 이 단원에 들어가니 문제의 말이 많아지고 설명이 길어지니까 뭔 소린지 모르겠단다.

결국 그 상태로 나도 지치고 걔도 지쳐서 집에 갔다. 집에 가서 무슨 공부를 했는지는 몰라도 시험지 받고 열나게 머리 굴리며 문제를 풀었을 것이다. 그래서 70점을 받고 실망했다고 엄가 전해주는 말을 듣고 나니 어디에 초점을 맞춰  아이 다짐을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잘했다고 해야 하나 이제 혼자 공부해도 그 정도 나오니 하산하여라~ 해야 하나

이 녀석 조금만 철이 들어도 가르칠 맛이 날 텐데... 반짝이는 머리로 단타를 노리는 꾀에 빠져 힘들어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나 나는 답답하고 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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