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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Jan 02. 2022

쫌 속 상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우리 집 막내 업둥이가 요즘 깨물고 까불며 다른 고양이들을 못살게 굴고 다니느라 집안이 정신이 없다. 오랜만에 혈기왕성한 대상을 만난 나이 든 고양이들과 강아지는 "이게 뭐지?" 하는 얼굴들이다.

혼자 달려들고 얼굴을 갈기고 남의 밥 뺏어 먹고

인간의 눈으로 보면 깡패로 보인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그냥 봐준다. 그들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가끔 인간들이 개입을 한다. 잘 모르지만 이럴 땐 말려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연출될 때 강제로 떼어 놓거나 머리 중간을 툭 친다. 고양이들이 혼낼 때 쓰는 방법 같은데 처음엔 통했는데 요즘은 이것 또한 장난으로 받아들인다.

그냥 좀 두면 나아지겠지... 언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 마음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엔 어떤 모습이 될지 알 수 없으니 행여 놓치는 게 있어서 이 시기에 이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조급증이 난다. 그래서 공부를 부모 눈높이에서 시키게 되고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식들을 다그치게 되고 옆집 아이는 어떻게 저렇게 자기 일을 알아서 척척하는지 옆집 부모가 보기엔 기대 이상의 부러운 아이의 모습에 내가 (부모가) 분발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어디 보냈더니 어느 고등학교를 갔다더라.

걔가 어디 다니는데 수학을 그렇게 잘하더라.

영어는 여기가 제일 잘 가르친다고 소문났다.

나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솔깃? 할 것이다. 정말? 과연? 알 수 없으니 한번 보내봐야겠다. 그렇게 귀가 팔랑팔랑 할 것 같다.

우리 큰아이가 세는 나이로 새해 26이 된다. 그렇다면 다 키운 것 아닌가?

그런데 부모마다 다르겠지만 첫 아이다 보니까 한 해 한해 나이 들어가면서 바뀌어 가는 고민의 모습도 조금씩 다르다. 그걸 아이를 통해서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다. 처음엔 내 기억으로 아이의 고민을 보게 되고 다음엔 아이가 느끼는 고민을 요즘 현실에 맞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시절이 바뀌었는데 "나 때는..." 하고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니까.

그러다 보니 참 다양한 변수들이 있었던 걸 모르고 지나친 지난날들이 기억나니 이번에도 또 모르고 내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 아닌가? 조심스러워진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조언하는 것을 얼마나 새겨들을 것이며 그 조언이 꼭 맞다는 보장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들어주고 내 경험에 비춘 사례를 이야기해주는 정도? 이게 가장 적당한 듯하다. 섣부르게 설교를 하게 되면 답답한 당사자가 듣기에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 1의 설교만도 못한 시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나와 2년 정도 수업한 한 예쁜 학생이 아쉽게도 마지막 수업을 하고 그만두었다.

잘하려는 마음은 있으나 친구에게 치어서 자신의 공부 속도를 못 찾는 것 같아 좀 작은 학원으로 옮겨서 기초를 쌓으면서 공부하게 하고 싶어 보냈다는 어머니의 말씀과 함께 시작된 인연이었다. 그런데 아이와 수업해 보니 사람 좋아하고 활동 좋아해서 공부는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시간도 부족하고 공부에 의지를 발휘하면서 까지 다른 시간을 뺏기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 좋은 학생이었다.

상대적으로 힘들게 시키지 않는 나의 공부스타일은 아이에게 중학교 시절 공부에는 그럭저럭 맞긴 했다. 아이는 쫌 오기 싫었어도 막상 들어오면 나와의 의리상 참고 열심히 노력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솔직하게 내게 이야기하고 나는 그런 아이 특성상 무리가 안 가게 조금씩 당겨 가면서 수업을 했다. 싫어하게 하는 것보다 좀 천천히 가더라도 수학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성적은 기대 이상으로 나오지 못했다. 늘 아쉬운 집중도에 점수도 아쉬운 점수가 나왔다. 기대치가 있는 어머니는 좀 더 숙제도 많이 내주고 밀어붙이셔도 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난위도가 있으면 낙담하는 아이에게 무조건 풀어제끼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끼고 어렵게 느끼는 문제를 풀리면 몇 문제까지는 그래도 푼다. 그런데 좀 더 시키긴 힘들었다. 그리고 다음에 올 때 어렵게 이해한 개념이 머릿속에선 휘발되고 난 또 그걸 강제로 넣고 끌고 가기엔 마음 약한 선생이다 보니 그 어머니 눈엔 좀 더 밀어붙이지 선생이 너무 마음이 약하시네...라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어머니께서 고등학교에는 좀 힘든 학원에 보내야겠다며 12월까지 수업하겠다고 했다.

아이가 너무나 나랑 잘 맞아서 와서 늘어지는 것 같고 너무 편안해하는 것 같다는 게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학원 오면 조잘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야 공부를 시작하던 아이라 살살 달래서 이해시키면 어떨 땐 잘하고 어느 날은 기분이 안 좋아 머릿속에서 무슨 말인지 정리가 안된다던 학생이라 어디 가서 수학 공부하던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과 걱정 반이 앞서게 되는 학생이다.

그래도 내 품에서 수업하던 학생이었는데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와도 속상한데 힘들다는데 가서 테스트를 받고 학원의 협박성 말에 상처받는 그 학생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우리 학원에 올 생각을 하느냐

 우리는 상위 몇%만 받는 학원이다

 분위기 망치니 다른데 알아봐라'

' 너는 테스트해보니 D 레벨이다

  우리 학원은 이미 고등과정 진도를 많이 나갔으니 마지막반에 들어가라'

아이가 내게 이런 소리 들었다며 하소연을 했다.

내가 너무 속이 상했다. 그 정도로 모르는 게 아닌데 시험을 몇 점 받았는지 들으면 대략 학생이 어느 정도 하는지 다 알 텐데 굳이 요 좁은 동네에서 테스트를 하고 아이에게 기죽일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난 좀 이해가 안 갔다.

학원들 상술에 아이들이 상처받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정말 나의 교육 개념을 다시 가져야 하는 것인지 잠시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 그래도 정들은 학생에게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의 흐름과 필요한 개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며 당부의 이야기를 하고 보내는데 작은 카드를 내게 부끄럽게 내민다.

'선생님 그동안 고마웠어요

 ...

제가 열심히 해서 성적도 잘 나오고 그랬으면 여기 계속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제가 게으르게 공부해서 학원을 옮겨야 해서 정말 속상해요 다 제가 잘못해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저 자주 놀러 와도 되나요?....'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나중에 읽어 보라는 아이 말 데로 조용한 시간에 읽어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기말이 끝나고 나면 한바탕 부모님들의 갈등의 시간이 흐른다.

학원을 바꿀까?

그리고 헤처 모여 시간이 생긴다.

아이들이 힘들다. 물론 부모들도 힘들다.

그렇게 길지 않은 학창 시절 여러 가지로 힘든 생각으로 찬란한 시기가 암흑처럼 느껴진다.

나만 그렇게 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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