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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Jan 18. 2022

태어나고 죽고

아버지를 보내드리며

운구차 안 천장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병명을 알고부터 10년의 세월 동안 아주 잘 관리하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모든 일들을 정리하고 나서 갑자기 넋을 놓으시더니 이제 가야겠다고 하신다. 노인들 이제 죽어야지 하는 말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허투루 들었다.  식사하셔야지 하며 이것저것 드려도 안 드신다 하시고 점점 눈에 보이게 야위어 가면서 영양제로 두세 달을 버티신 거 같다. 동네 병원에서 맞던 영양제도 이제 효과가 없어져 좀 큰 병원으로 갔다. 도착한 병원에서는 진료받던 병원으로 얼른 가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셨다.

집에 가야 한다고 쓸데없이 병원에 왜 왔냐고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잠깐 깨어나시면 집에 가자고 하셨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받아도 아버지 걱정에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나도 횡설 수설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하루 비는 날 아버지 옆에 있으려 무작정 병원에 갔다.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하고 보호자로 들어가기 위한 절차와 제제가 있었지만 아버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코로나 검사 결과만 제출하고 면회를 위한 융통성으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보자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산소 주입기 밖으로 새어 나오는 발음에 온 힘을 다해 내게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아라'

아버지에게 우리 모두 잘 살 테니 아버지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의사가 직계가족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아버지 CT촬영 사진을 보여주고 설명해주면서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데 동의하시겠냐고 묻는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동의했다.

의사는 여태까지 버틴 아버님께서 대단하시다고 말해줬다.

아버지에겐 버티셔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가 더 오랜 기간 아프셨다. 몸이 불편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때로는 아쉬운 소리를 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평생 고생만 한 어머니 편이 되어 아버지를 한 때 미워하기도 했지만 아버지 속내는

몸 불편한 부인이 먼저 가는 길을 보려고 버티셨던 것 같다.

'부인 무릎 베고 죽는 남편이 가장 행복한 남편이다'라는 말씀에는 어머니를 먼저 보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아버지는 어머니 무릎을 베고 마지막을 맞이할 수 없는 당신의 처지를 생각하시며 바람을 이야기하셨던 것 같다.

그 바람은 이룰 수 없었지만 어머니 가시고 1년도 안되어 어머니를 따라 가신걸 보면 아버지 계획은 성공하신 것 같다.

그렇게 부부애가 좋았을까? 했는데 마지막을 함께 병원에서 지내며 지나온 시간과 지금 맞이하는 시간의 자취를 보니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척이나 마음에 두고 계셨구나 싶었다.

두 번의 죽음을 1년 동안 겪어보니 삶과 죽음은 두꺼운 소설책 속에서 종이 한 장 차이만큼도 아니었다.

한숨 쉬니 이승에서의 삶이 마감되었다.

'설마... 다시 숨을 쉬실 거야' 그렇지만 방금 본 그 숨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을 준비했지만 마지막을 맞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통증이 있을까 봐 마약성 진통제를 준비했지만 끝까지 아버지는 의식을 가지고 계셨고 우리에게 띄엄띄엄 입을 여셨다.

간호사가 아버지 정신력이 대단하시다 했다.

모르핀 주사 없이 아버지는 마지막을 맞이하셨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며 아버지의 바람을 전하며 띄엄띄엄 의식이 있다 없다를 반복하는 힘겨운 사투 끝에 이승과의 이별을 마지막 한숨에 끝내셨다.

병원 큰 창으로 여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에너자이저... 새 생명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어머니의 마지막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스님께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시러 바쁜 걸음을 하셨다.

'죽음은 언젠간 누구에게나 오지만 어머니 보내시고 1년도 안되었는데 또 뵙게 되네요

이렇게 매번 슬픈 일에만 뵙게 돼서 반갑다고 웃을 수는 없지만 태어나는 기쁜 순간에는 아무도 절 부르지 않더라고요.

누군가 돌아가셔야 저를 불러서 수많은 죽음을 보게 됩니다. 그날을 잘 맞이하기 위해 살아있을 때 열심히 수행 정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더 멋지게 말씀하셨지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삶에 느긋함을 주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금세 잊어버리고 난 또 바쁘게 하루를 살게 될 것이다.

2일 정도 지나면 누구 수업은 어떻게 하고 누구는 이걸 시키고 수업 준비에, 집안 살림에, 우리 동물들 애정 의 손길을 주는 시간은 확보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없다.

모두 쥐고 놓지 않으려는 내게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뭐가 그리 안달이고 급해

천천히 해 모두 다 잘하려고 하지 마라

속 편하게 살아 그것만 하면 되지

하긴 그것 말고 너넨 걱정 안 해...

남편한테 잘해라 물론 네가 알아서 잘하지만...

그리고 더 동물 들이지 마라

네가 힘들다.'


아버지 이제 편안하시죠

자식 걱정 마시고 어머니 손잡고 편안히 마음껏 가고 싶은 산도 가시고 바다도 보러 가시고

저희 집에도 놀러 오시고요


하늘 자주 보며 여유 있는 내 삶의 숨 고르기를 놓치지 말기를 내게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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