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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Feb 05. 2022

여유의 용도

수학 문제 풀 때 여유는 필요한가?


이 많은 수학 문제집을 보면 숨이 턱!
얼음 끝 새들은 보는 이에겐 여유를 주지만 새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싸움일까?


지난주도 쉽지 않았다.

마음의 정리도 잘 되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리움들이 내 몫이 되어 내가 해야 할 일들과 함께 섞여

 머릿속은 일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서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아 피곤이 쌓여있었다.

 그 가운데 구정 연휴가 있었지만 오히려 보충 수업할 날짜를 다시 잡아야 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역할을 하느라 충분한 나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와중에 음력설과 큰 아이 양력 생일이 하루 차이로 겹쳐서 거의 10년 만에 집에서 맞이하는 큰애 생일을 그냥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몸과 정신이 따라 주지 않아 미역국 끓여 주는 것도 잊어서 결국은 외식으로 때우기로 했다.

구정 연휴라 내가 사는 양평 주변에서는 음식점을 연 곳이 없고 게다가 원하는 음식이 좀 저렴하면서도 특이한 음식이라 찾기가 힘들어서 서울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인터넷에서 뒤지고 찾은 맛집에 문의해서 문연 것을 확인하고 차 막히기 전에 일찍이 출발했다. 군데군데 문연 음식점을 지나 찾아서 도착한 식당은 어정쩡한 점심 저녁 사이 시간이었는데 사람이 그래도 좀 있었다. 예약한 자리에 앉아 가족들이 모처럼 도란도란 얘기하며 맛있게 먹고 나서 바로 돌아오긴 아쉬웠다. 주변에 광화문 서점이 있으니 거기 들려서 책 구경 좀 하다 오기로 했다.  이번엔 원하는 책을 하나씩 사면 작은애가 받은 인턴 월급으로 큰애 생일 선물 겸 쏴 주겠다 했다.


난 늘 서점에 가면 문제집 코너에 가서 훑어본다. 게다가 광화문 교보는 거의 모든 문제집이 있으니 

문제집들 구경하기엔 좋다.

말이 그렇지 사실 보이는 문제집만 보게 된다.

아주 예전에 잠깐 문제집 만드는 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나는 기획팀에 있어서 문제집 만드는데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문제집 만드는 모습을 본 기억에 의하면 과목별 문제지가 쌓여있는 창고에서 문제를 뽑아 책자를 만드는데 거의 작년 문제지에서 몇 문제를 추가해서 발매하는 형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도 그 추새는 바뀌지 않은 것 같지만 일단 같은 출판사에서도 여러 난위도로 문제집이 나오는데 문제집 만드는 출판사도 정말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수학 문제집만 보더라도 정말 다양하고 많아서 보다 보면 질릴 판이다.  동네 서점에는 그나마 주변에서 많이 찾는 문제집 위주로 배열해 놓다 보니 이렇게 눈이 돌아가지 않는데 대형서점에서 문제집 코너 중 수학 코너를 가서 보는데도 이렇게 숨이 막히니 혼자 공부하는 학생이 문제집 좀 골라 보려면 보통 집요함과 정보력이 동원되지 않고는 선택이 쉽지 않겠다 싶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EBS에서 출판되는 문제집만 해도 상당하다. 그런데 각 출판사마다 기출문제집이 나오고 기출문제집도 난이도 별로 나누어놓은 기출문제집부터 몇 년 치 한꺼번에 묶여 있는 것도 있고 세부 목차별 기출문제집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개념을 잘 설명해 놓은 문제집을 찾아보려니 이것 또한 쉬운 선택이 아니다.

편집이 참신해 보이는 문제집이나 기존에 유명한 문제집이나 고 난이도라고 쓰여 있는 문제집이나 EBS 문제집 등 몇 개를 훑어보다가 멀미가 날 것 같아 거기를 빠져나와 문구류로 가 봤다.

사람이 바글거린다.

춥고 갈 곳도 없으니 아이들 데리고 나왔나 보다.

아이들이 고르는 문구류와 부모가 권하는 책들 등

서점은 아이들과 부모들과 연인들로 바글거렸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구정 연휴지만 이때를 이용해 문제집 사냥에 나서고 그곳에서 보면 자녀의 문제집을 선택해 주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게 좋겠냐 저게 낫냐 의논하는 부모와 자녀도 보이고 아이 혼자 이것저것 골라서 부모 보고 계산하라는 모습도 보이고 부모가 열심히 적어 놓은 쪽지를 가지고 와서 찾아들고 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학원에서 이것저것 사 와라라고 하면 차라리 속은 편하겠네 싶었다.

그런 이유로 나도 문제집을 고를 때 무척 고민이 많이 된다. 그러다 결정의 중심을 잡은 게 웬만하면 그냥 EBS 문제집으로 하자. 그냥 보편적일 테니까. 부족한 것은 문제수인데 그걸 보충해 줄 수 있는 다른 문제집 하나 정도 더 풀리는 마음으로 교재를 선택한다. 그런데 그 나머지 교재 선택하는 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문제집을 고르다 보면 이것도 풀리고 싶고 저것도 풀리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 여유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문제집 코너에서 조급하게 고민하던 내 모습이 그 코너를 떨어져 나오는 순간 좀 숨이 풀린다.


나와 애들이 하나씩 좋아하는 책들 가지고 서점을 나와서 집으로 왔다.

오미크론이 난리를 치던 시기지만 서점 안은 바글거리는 사람으로 마스크를 한 번도 벗지는 않았지만 사실 좀 걱정은 되었다.

괜찮을까?


애들은 오다가 멋진 카페를 들리자고 했었지만 뭐 한 것 없이 에너지 다 빠진 이 느낌은 뭔지

카페에선 케이크만 사 가지고 집으로 왔다.

케이크 파는 카페도 찾아 찾아갔는데 솔직히 난 양평에 박혀서 바깥세상 구경을 거의 못하다가 나온 터라 좀 여유 있게 커피와 빵조각 먹으면 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그곳도 역시 사람이 많았다.

서울은 역시 사람이 많다.

게다가 연휴라.

하여간 우리는 그래서 비싸지만 맛있는 케이크를 사 가지고 집으로 왔다.


가끔 시내 가는 정도로 사람 구경하다가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 가니 정신도 없고 에너지 소진되는 느낌에 피곤이 엄청나게 몰려왔다.


우리는 가끔 개들을 데리고 남한강 주변 산책을 간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멋진 차림의 여유는 아니고 얼굴부터 몸까지 칭칭 동여매고 칼바람에 볼이 아린 바람을 맞으며 개들과 산책을 하지만 가끔 띄엄띄엄 만나는 사람들과 개들을 보면서 강물에 동동 떠있는 오리나 고니를 보면서 가족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낸다.

물론 밖에서 보기엔 여유 있어 보이지만 내 머릿속은 산책 갔다 집에 가면 무슨 일 하고 그다음 뭐해먹고 등등으로 바쁘지만 일단 주변의 경관은 편안하고 조용하다.

가끔 이 추위에 모여있는 새들의 속내는 보는 모습과 다르겠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움이란? 


사람에게 여유는 필요한 필수 아이템이다.

그걸 알면서 종종 놓치다가 상실의 아픔을 겪고 나면 비로소 다 소용없네.

뭘 위해 악착을 떨며 살았을까? 싶어 진다.

여유를 좀 가지고 보면 본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다른 생각이 다시 명료했던 머릿속을 가리지만 다시 여유를 가지면 평온해지면서 본모습이 보인다.

여유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요소이다.


가끔 잘하려고 애쓰는 친구한테 나도 그 말을 한다.

너무 맞히려고만 하지 말아.

물어보는 게 뭘까? 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가 잘 풀릴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은 여유가 있어야 꺼낼 수 있는 질문이다.


수많은 문제집은 그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문제 푸는데 가장 필요한 능력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건 하려고 하는 자에게 통하는 말이다.

오늘 하루 그냥 공부한 척! 하는 이에겐 이 말은 통하는 방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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