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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May 09. 2023

공도  없다

무엇을 바랐는가?

중간고사가 끝났다.

고등학교진학 후 처음 맞는 시험이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건 아니던 많이들 초조하게 시험을 준비한다. 그 성화에 나도 덩달아 이번 시험준비는 힘이 들었다.

이 학생은 너무 많이 하려고 하지만 요령이 없고 저 학생은 자기가 정한 마음속 분량을 넘어가면 더 이상 나가질 못하고 또 다른 학생은 중2병이 늦게 와서 갑자기 가오 잡고 거들먹거리며 문제 조금 풀고 가고 또 어떤 학생은 중학교과정 잊어버렸다면서 중학교복습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각기 다른 학교분위기에 따라 고등학교진학한 학생들 비위를 맞추려고 무던히도 힘들었다.


그중 안달을 떨며 시험 전 날까지 눈물까지 흘리며 불안해하던 한 학생의 엄마가 띵~ 카톡을 보냈다.

" 아이가 친구가 다니는 힘든 수학학원 가본다고 하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시험이 끝나면 학원가에서 종종 발생한다.


여기서 안되니 저기서 해보고 시험결과가 안 좋으면 다른 학원 가서 한번 해보고 친구랑 같이 시험공부하다 보면 나는 못 푸는데 쟤는 문제를 푸는 거 보니 그 학원 가서 공부하면 좀 나을 것 같은 마음에 옮기고 부모님이 불안해서 옮기고 아이들이 불안해서 옮기고...

시험이 끝나면 발생하는 웃픈 현상이다.


여기에 나도 같이 마음이 흔들흔들 거린다.

이번 학생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기대치가 머리꼭대기에 올라앉았다. 반에서 1등 하고 싶은데 공부를 더해야 하는데... 이것만 풀면 안 되는데... 제가 숙제를 조금밖에 못해왔어요. 오늘 많이 하고 갈게요.


오답노트하고 있니?

조금 했어요.

오늘 얼마큼 할 수 있을까?

음... 이만큼 할래요. 그래 그만큼 해보자.

아... 너무 조금 하는 것 같아요. 더 할래요.

내 생각엔 이것도 힘들 것 같은데.

일단 나가는 데까지 나가보자.

네에...

문제를 좀 풀다 막힌다.

예전에 풀었던 건데...'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해준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꼭 오답노트 해라.

이것까지 강제적으로 하다 보면 진도를 많이 못 나가. 검사 안 해도 네가 해가지고 와서 나 보여줘.


강제성을 안 가지니 아이는 안 해온다.

그래도 나와 오래 앉아 문제 푼 양이 있어 그런지 진도나 문제양을 꽤나 많이 풀었다.

그런데 아이는 모든 문제를 풀기엔 역부족이었다.


너무 웅크리고 문제 푸는 스타일이라 문제가 묻는 것보다 문제 유형을 익혀서 푸는 모양새다.


난 속으로 안타까웠다.

초조하게 모든 문제를 다 풀어야 될 것처럼 안달을 떠는 것에 비해서 문제들을 생각보다 잘 못 풀어서 시험직전이 되니 더 문제 푸는 걸 힘들어했다.

결국엔 시험전날 정리용 문제를 뽑아서 한번 풀리는데 기대보다 많이 못 푼다.

아... 얘가 왜 이렇게 불안해하지.

계산은 계속 틀리고 '-'를 자꾸 '+'와 착각하고 나름대로 암산을 하려고 단계를 건너 띄다 보니 실수하고 몇 번을 그냥 써서 계산해라 해도 듣지도 않으면서 틀렸다고 안달을 떤다.


잠깐 문제 푸는 걸 멈추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라고 했다.

안달 떤 거 나중에 남지 않는다. 문제에 집중해라.

문제 많이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문제가 뭘 묻는지 고민하고 풀어라.

한 문제를 풀더라도 정성껏... 풀어서 치우듯 문제를 풀지 말고...


뭐 잔소리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그렇지만 성실성 하나만은 기특해서 다독다독 거리며 맞추고 계획해서 끌고 가는데...

부모도 어떡하냐고 걱정끌탕을 하는 걸 이런 점은 장점이니 이걸로 잘 풀어가자고 의논하는데 엄마와 아이는 내 공은 별로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끌고 온 시간이 있는데 상의 하나 없이 땡강 톡 한 줄로 관계를 정리하려 하니 이럴 땐 너무 허탈하다.

중학교 때 잠시 관둘 때도 문자 한 줄이었다.

그리고 다시 보낼 때는 작문의 톡과 통화로 다시 오게 되었다.

좀 달라질 줄 알았더니 역시 잠시 쉴 때도 공도 없이 이렇게 통보만 하다니...


어디 서운함을 하소연하지 못해 이곳에 쏟는다.


학생들은 이해하는 방향과 모습이 다르다.

하나를 가르치면 확장시켜서 생각할 줄 아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하나를 가르치면 그 하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해했는 줄 알고 문제 풀어보니 한 포인트만 이해하고 전부를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속속들이 다 해결할 순 없지만 다른 방법의 시도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마음속으로 다른 곳에 가면 괜찮을까? 의문도 들지만 어린 학생이 상처 안 받고 잘 적응해서 도약할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바라기로 서운함을 돌려 막는다.


이 공도 없는 시간을 보내는 걸 가끔 보상받으며 기뻐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공도 없는 허망함에 기운 빠지는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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