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팥 찐빵 먹고 체한 일 - 죽을 뻔? (1/2)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마 2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침구 가게를 운영하셨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침구류는 엄마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재봉하는 분, 수를 놓는 분, 시침질부터 이불 완성까지 도맡는 분들까지,
모든 과정을 엄마가 챙기셨다.
자식 넷을 키우는 일, 맏며느리로서의 역할,
그리고 공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엄마는 틈틈이 모은 돈으로 작은 집을 장만했고,
그 집에서 뛰어 5분 거리에 침구 작업 공간도 따로 마련하셨다.
물론 아버지도 열심히 사셨지만,
그 시절 어머니들의 부지런함은 정말 ‘슈퍼우먼’ 급 이상이었다.
내가 이 나이 되니 이제야 알겠다.
우리 엄마는 유난히 책임감 있고, 부지런하고, 희생정신이 강하신 분이셨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가끔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빠 덕분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유전자가 나올 듯 말 듯 고개를 들다가도, 이내 아빠가 말려준다.
그런 바쁜 엄마는 교육열도 높으셨다.
하지만 네 형제의 숙제와 공부까지 일일이 봐주는 건 엄마 맘과 달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중, 언니와 내 또래가 있는 부모님을 알게 되었고,
그 집 엄마도 일을 하고 있어 아이들 하교 후 봐줄 분을 찾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제를 봐주고 다음 공부까지 챙겨주는 참한 선생님을 구했다며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우리를 그 모임에 합류시켰다.
언니와 두 남자아이가 같은 학년(5학년)으로 한 팀이 되었고,
나와 두 집의 여동생들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팀을 이뤘다.
사실 언니네팀은 6학년이라 공부할 것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아직 3학년이라 공부라기보단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언니팀이 공부하는 동안, 우리는 마당에서 소꿉놀이, 인형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공부한 건 거의 기억이 없다.
4칙연산 정도 시켰을까?
거의 방과 후 돌보미역할을 그 선생님이 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친구 집, 특히 할머니가 계신 그 집에 자주 모였다.
학교가 끝나면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그 집으로 가서 놀았다.
할머니는 간식을 챙겨주시거나 때로는 저녁까지 먹여 주셨다.
그런데 그날은 그 집 엄마가 일찍 퇴근하셔서 찐빵을 쪄 오셨다.
아마 간식 한 번 못 챙겨주는 게 늘 마음에 걸리셨었나 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원래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양갱도, 단팥도 싫었고, 살짝 단맛이 도는 정도는 괜찮지만 음식이 달면 금세 물려버렸다.
사실 그날도 끝나고 바로 집에 가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친구 엄마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셨을 것이다.
쟁반 가득 쪄온 찐빵은 6명이 순식간에 나눠 먹었지만,
나는 반 개쯤 먹고는 더 이상 먹어지지 않았다.
다른 오빠들, 언니, 친구들은 한 개씩 뚝딱 해치우고, 남은 찐빵까지 집어 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한 개도 먹는 게 버거웠다.
모두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난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만 먹겠다는 말을 못 하던 성격이라, ‘남겨도 되냐’는 말 대신 그냥 입에 쑤셔 넣기로 했다.
목이 메었지만, 밀어 넣으면 되겠지 싶었다.
사실 나는 팥죽도, 팥빵도 안 좋아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남기면 예의가 아닌 것만 같았다.
찐빵을 입에 욱여넣으며 “다 먹었어요..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말하자,
친구 엄마는 내 몫으로 하나 남은 찐빵을 보며 “천천히 먹어” 하셨다.
“저 배불러요.”
우물우물 씹으며 대답했지만,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걸 꾹 참고 삼켜버렸다.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집에 오긴 했을 텐데,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집에 와서 배가 아프기 시작하고 식은땀을 흘리다, 그렇게 데굴데굴 굴렀던 것 같다.
그날 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꾼 꿈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