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의 문장들

(제6화) 정리는 무슨... 떠오르는 추억

by 보리수

물건 찾는 일이 잦아졌다.

바로바로 정리 못하고 쌓아놓는 전형적인 미련형 인간이라 살아온 세월만큼 물건들이 쌓여있다. 그래도 좀 또릿또릿 하던 시절은 쌓인 물건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잘 찾았고 식구들의 물건 내비게이터가 되어 주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뭐 어디 있지?'라는 말이 나오면 신경이 곤두서고 내 머릿속이 흙탕물이 된다.

가라앉은 부유물이 떠 오르면서 창고에 넣었나? 서랍에 있던가? 정리했던가? 여기저기 뒤집고 찾다가 결국엔 못 찾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면서 '시간적 여유만 생기면 이제 정리하리라.' 반복적 다짐만 진행형이다.

3년 전 부모님 물건을 정리하며 다짐했었다.

내가 미련 갖고 이걸 다 싸들고 살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많지 않으니 앞으로 좀 간단하게 살리라.

전투에 나가는 비장한 마음으로 결심을 하고 계단 밑 창고를 열었다.

아... 지난번 뭘 찾느라 열어봤었다. 뒤집어엎으면서 카오스가 된 창고에 한숨이 나오면서, ' 오늘도 아니다... 좀 있다가 수업하러 가야 하는데.' 하며 닫으려고 하는데 반짝이는 구슬을 봤다.

큰아이가 3학년인가 되던 해에 내가 보관하던 오래된 구슬을 주었던 바로 그 구슬이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만큼 아이도 잠깐? 은 소중하게 생각하며 목걸이 줄을 바꿔서 걸고 다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나 여름.png AI가 그려준 그 당시 나와 아버지

하지만, 지금은 다른 예쁘고 사연 있는 물건들이 많아지면서 뒤처져서 창고 상자에 박혀있다가 물건 찾느라 뒤지면서 상자밖으로 모습을 내 보인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정도? 아님 4학년정도였던 것 같은데 거의 2-3년에 한 번씩 아버지는 설악산에 가족들을 데리고 다니셨었다.

나는 더 컸던 것 같고 아버지는 더 마른 상태였을 것이다.

그때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싶어서 AI의 힘을 빌려 봤는데 내 머릿속의 기억과는 같지 않지만 이리저리 주문하면서 그때의 모습을 다시 그려 보았다.

등산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그 당시엔 기념품점이 몇 개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갔으면 절대로 들어가지도 않았을 상점에 그날은 아버지와 언니와 나만 설악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이었기에 가능했다. 그 상점 중에 젊은 자매가 물건을 팔고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난 신나서 구경하다가 구슬에 눈이 갔다.

구슬을 한참 만지작 거리니

" 어린애가 이걸 갖고 싶어 하니 신기하네. 장난감도 있고 그런데..."

그런 류의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속으로 이게 왜 신기할까? 비싼가? 고민했었기에 그 말이 무척이나 신경 쓰여서 아직도 기억한다.

그 당시 아버지 사업이 힘들다고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이 구슬을 갖고 싶은데 골라도 되나?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 우리 둘째 이거 갖고 싶어?"

난 대답대신 아버지 눈치를 봤다.

언니는 뭘 골랐는지 내 기억엔 없다.

그때 왜 그런지 이 맑은 수정돌이 갖고 싶었다.

"이거 설악산에서 나는 돌이에요. "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파는 아가씨의 말에 더 사고 싶었고, 이름도 수정구슬인지 알 수 없지만 선택장애 없이 난 얘만 내 눈에 들어왔었다.

만지작거리는 나를 위해 아버지는 이거면 족하냐 하시며 재차 물으시고는 값을 지불하고 기분 좋게 가게를 나왔다.

그걸 20대가 되고도 목에 걸고 다니고 예쁜 다른 장신구에 밀려 상자에 보관해도 한 번씩 상자를 열어 액세서리를 고를 때마다 수정구슬을 보며 찰나의 추억을 생각하곤 했다. 결혼 후에도 예물보다 우위에 있었다. 예물을 보면 오히려 이쪽저쪽에서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했던 쓸모없는 시간에 대한 기억만 남아있지만, 이 구슬은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서 인지 구슬을 보면 그냥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렇게 아끼던 것이었는데 큰아이에게 주고 나서부터 내 기억 속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얼마 전 금값이 올랐다고 난리 났을 때 난 얼마 되지는 않지만 예물로 받은 것들을 팔아버리자고 했다. 그냥 그때 옥신각신했던 그 당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이 구슬을 찾았었다.

큰애를 주긴 했는데... 어디에 뒀더라 하고...

한참을 찾다가 다음에 또 찾아야지 하고 미뤄 두었던 그 구슬이 오늘은 요술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요즘 내 에너지가 바닥에 들러붙어 잘 올라와지지 않는다.

그래서였나?

요술처럼 나타나서 내게 힘이 되어 주려고?

가끔 '아버지... 힘드네요.' 그래도 '저 잘할 수 있어요.' 하며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고 주문 거는 일도 이제 좀 지쳐갈 때 나를 어린 시절 기뻤던 아련한 기억으로 데려가서 좀 쉬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맘이셨을까?

창고에서 나타난 구슬을 보며

'분명 요술 수정 구슬일 거야 ㅎㅎ'

라는 믿음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 본다.

아빠와 함께 설악산 기념품점에서 구슬을 고르고 흐뭇하게 쳐다봐주던 아빠의 따뜻함을 마음에 채워보며 나를 좀 쉬게 해 준다. 아빠가 있으니 걱정 없다. 언제나 내 곁에 계시니까.

'아빠 그렇다고 걱정 마세요. 잠깐 추억하니 편안해져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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