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학력고사 보러 가던 소녀
오늘이 수능 날이란다.
하늘은 뿌옇고 맑던 가을 하늘 느낌이 사라졌지만 오랜만에 강변길의 산책은 한가롭고 호젓하다. 이제 강아지에게 진드기도 안 붙고 얼굴에 달라붙는 날 벌레들도 들어간 계절이라 예민한 노견도 산책길이 신나 보인다. 조용한 적막이 여유로운데 왠지 긴장감이 도는 건 오늘 수능이라는 시험을 보는 학생들에게 마음이 빙의되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몇 번 바뀌어서 사실 요즘은 시험 보는 학생들이 매스컴에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모두 목숨 걸고 긴장 속에 시험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이미길을 정한 아이들도 있고 시험에 실감을 못한 채 자기 일로 못 느끼고 '고3이니 시험 봐준다.'라는 느낌으로 오늘 시험에 임하는 학생들도 적잖게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내가 겪은 학생들 중에는 고1 때 이미 ‘아 안 되겠구나, 이렇게 공부하며 난 못 산다.’라며 그냥 고등학교 졸업에 의의를 두는 학생도 꽤 된다. 세상이 양극화가 심하게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학교의 모습은 더욱 심하다. 수능에 아이들이 긴장하며 시험에 모두 임할 것이라는 건 어른들이 만든 그림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라떼는... '아마도 학력고사라는 이름으로 전국적 시험이 치러졌다. 이 정도로 나라가 모두 조용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험생에 대해 우리 집에서 어느 정도 대접은 해줬던 것 같다.
그렇게 얘기하다 보니 수능 때마다 떠오르는 내 모습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안이 좀 어려워졌었다. 그 시절 학력고사라는 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 집안에 제사가 있었던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오빠와 언니는 시험 보러 갈 때 엄마가 동행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그때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그냥 엄마가 시험 보러 가는 날 도시락을 싸 주면서
“혼자 가야 하네. 이따 끝나고는 아빠가 갈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했던 것 같다.
“괜찮아 엄마.”
난 그때 엄마에게 씩씩해 보이고 싶었다. 전 날 시험 보는 학교를 가 봤으니 가는 길이 초행이 아니었고, 집에서 버스 타고 한 40여분 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차를 처분한 후라 무슨 일이 있으면 꼭 태워주던 아버지차를 탈 수 없게 되었던 게 더 크게 다가와서 엄마가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집 안 분위기도 있고 예민했던 언니를 보며 난 엄마에게 부담 없는 자식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한 달을 입고 다닌 점퍼에 시험 볼 때까지 손톱도 안 깎고 일주일을 머리도 안 감은 떡진 머리를 하고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혼자 오르며 속으로 괜찮다 대견하다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힘을 주던 그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올라가야 학교가 나오는 언덕 위에 있는 고등학교였다. 춥기는 또 얼마나 추운 지 한 달 전 점퍼는 추웠지만 그때 미신을 믿으며, 입던 옷을 계속 입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엄마도 다른 두꺼운 겨울 옷을 입으라 했지만 마땅치도 않은 데다가 이 옷을 입어야 시험을 잘 치를 것만 같았다. 엄마의 걱정소리에 되었다고 큰소리쳤지만 언덕길은 춥고 응원하는 식구들이 없던 내 뒷모습은 왠지 서글프고 쓸쓸해 보일까 걱정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당당해진 어른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시험 치고 나와서 언덕을 내려와 버스정거장 즈음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것이다.
시험 끝나고 나오는 딸과 어긋날까 봐 일찍부터 기다리셨을 아버지일 텐데 그때는 그냥 반갑기만 했다.
‘애썼다.’
‘평소 내 성적대로 나올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탈 없이 시험을 봤으니 다행이라고 웃음 없던 아버지가 웃어주셨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오래되었지만 자가용이 있었다. 학교 갈 때도 그 차를 타고 다녔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처분하고 다시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는 재정상태였다. 가족들에게 특별한 일이 있으면 아버지가 항상 데려다주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졌었는데 이렇게 아버지와 둘이 뛰어서 버스를 타고 흔들거리며 가니 좀 어색했다.
시험 치른 내 모습보다 버스를 타고 가서 내려서 적당한 식당을 못 찾아 주변 짜장면집에 급하게 들어가 긴장했을 딸을 위해 짜장면을 사주면서 미안해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 기억 한 곳에 계신다.
그때 짜장면집은 사람이 많았고 바닥은 따뜻했다.
"엄마가 외식이라도 하고 집에 데리고 오라 했는데..."
근사한 걸 사주고 싶었는데 마땅치가 않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엄마는 또 엄마대로 집에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집에 일이 있어 와도 바로 저녁을 못 챙겨 먹으니까 아버지에게 특별히 부탁하셨던 것 같고... 그렇게 두 분의 안쓰런 마음이 아직도 느껴진다.
꽁꽁 얼었던 몸이 녹으며 얼굴이 벌게지고 몸이 노곤해지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되었지요. 아버지... 난 그날의 아버지를 고맙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아버지 말씀도 기억하고요.'
“모르는 중국집에 와서 시킬 게 마땅치 않으면 짜장면을 시켜. 어느 중국집이나 짜장면은 기본 맛은 하니까. ”
지금껏 살아보니 아버지 말이 진리더라고요.
지금도 짜장면은 맛있어요. 살찔까 봐 가끔 먹어야 하지만요. 짜장면 먹을 때마다 아버지의 그때 말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고요. 전 그때마다 아버지와 마주한 19살 소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