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사주팔자에 화가 4개인 사람과 흙이 4개인 사람의 만남
참는다 참는다 하다가 이제는 안 참아도 흘러간다.
아... 내가 마음공부를 참 잘하고 있구나. 참지 않아도 조용한 날이 꽤 오래가니... 요즘은 화가 안 나네? 하는 자만심이 들었던 요즘. 아침밥을 먹다가 작은 아이 이야기가 나왔던가? 아님 냉장고에 있는 어떤 음식 때문이었는지? 사실 뭣 때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뭐라 이야기를 가볍게 하고 다음 남편이 내 말에 댓 구를 했을 것이다. 그 말에 대해 내 생각을 막 이야기 하는데 남편이
“ 이 빵 더 먹을 거야? ”
"....."
갑자기 조용하던 내 마음에 화가 치밀었다.
“ 내가 대답하고 있잖아. 그리고 나는 지금 이걸 먹고 있고. 이 와중에 그 빵을 먹는지는 왜 물어봐! ”
조용하던 내 마음이 마구 출렁거렸다.
‘ 어쩜 이렇게 여전하냐. ’
“ 자기가 물어봐서 내가 대답하고 있는데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뜬금없이 빵 먹겠냐고 그런 걸 물어보냐? ”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갑자기 소리를 버럭 크게 내며
“ 다 듣고 있어. 그냥 궁금해서 내가 빵을 더 먹을 건데 자기도 더 먹을 건지 물어보는 게 그렇게 잘 못이야? ”
난 속으로 ‘아니 소리는 왜 질러 듣지도 않았으면서 ’ 어이없어하며 목소리를 깔고 이를 물고
“ 내가 말을 하고 있었잖아---- ”
결혼 초에는 남편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나와 서로 공유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다툼이 잦았다. 숫자에 너무나 밝은 남편. 좋게 말하면. 사실 남편은 숫자와 글로 되어 있는 것만 중요시 여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누구와 의논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하물며 자기 진로와 진학. 모두 자신이 스스로 결정했다. 그런 버릇 때문인지, 누가 장황하게 설명하면 몇 마디 단어로 그 사람의 지식의 정도를 파악하고 다 이해했다고 답을 내려 버린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신중해 보이는데 입만 열면 상대의 마음에 스크레치를 벅벅 내어준다.
간혹 이야기하다가 상대가
“그래 야 너 잘났다.” 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역사면 역사. 경제면 경제. 과학은 또 어떻고. 아는 것도 많아요. 그런 남편은 세상이 우스웠을 것이다. 그런 남편이 멋져 보여서 결혼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그 특징이 싸움을 넘어 나의 정신세계와 인내의 확장을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큰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내가 넘어야 할 극기의 대상.
페이스북에 전문가들로 친구를 맺고 그들의 말이 진리요, 마누라의 말은 그냥 밥 같이 먹는 밥동료? 정도로 생각되나 보다는 서운함을 안겨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난 스스로 내 생각의 파도를 잠재우는 연습을 끊임없이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나이 들면서 이렇게 늙으면 외로울 것만 같아 남편에게 요구했다. 두 번 이상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을 우리도 좀 해보자고. 이 제안에 서로 여유 있는 생각이 가능할 때는 공감을 하긴 한다.
젊어서는 시댁문제 아이문제 경제적인 문제 등등으로 싸움이 잦았다.
사실 남편은 톤이 거의 안 바뀌고 같은 패턴으로 화를 낸다. 반면에 난 남편입장에서 보면 어느 포인트에서 화를 내는지 알 수 없는 인간으로 보이는 것 같다. 매번 난 이런 지점에서 화가 난다고 알려줘도 남편에게는 입력이 안 되는 듯 매번 같은 싸움이 반복되지만 그 텀은 점점 길어지긴 했다.
나이 들면서 내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서로 대화하면서 늙어가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모처럼 집에 오면 나의 수다가 터진다.
큰아이가 내게 "엄마 외로웠구나!"
남편은 멀뚱멀뚱 끼지도 못하다가 가끔 낀다는 게 뻘쭘한 말만 하니 나와 아이들은 웃으면 아빠가 기분 나빠할 텐데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줘야 하나 눈치를 보기도 하다가 그게 웃겨 웃기도 한다.
다른 것에는 그렇게 학습력이 좋으면서 인간의 마음이나 대화의 방법은 익힐 생각을 안 한다.
고도의 집중력. 고도의 학습력. 궁금한 것은 굳이 따로 시간 내지 않아도 바로 그 자리에서 익히는 자세. 납득이 안되면 상대가 힘들어해도 끝까지 따지고 집요하게 물어보는 자세. 따지고 묻고 해결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그 상대는 어이없게 질리는 경우도 많다.
그럼 남편은 업무 미팅하고 나서 상대에게서 연락이 안 올 때 궁금해하며 때로는 속상해 하지만 난 그 이유를 안다.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남편한테 질렸을 것이다. ‘이 사람과 일을 같이 하면 피곤하겠다.’
남편이 공부의 결과로 자신을 나타낼 때는 무척 도움이 되는 특징이었다. 그런데 그 점이 나와의 생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니 세상은 그렇게라도 공평을 유지하기도 한다.
무엇에 집중할 때 보면 내가 옆에서 비명을 질러도 분명히 처다 봤는데 그 걸 기억하지 못할 정도인 남편.
내 입장에서는 남편과의 트러블이 생기면 서럽고 외롭고. 하지만 남편과 여태껏 쌓아온 나와의 싸움이력 때문에 자상하게 응대해주려고 하고 귀 기울여 보려고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눈치 보면서 내 말이 길어지면 그만 말하라고 하고 싶은 것을 참는 모양새가 밖으로 다 드러나지만 , 그런 모습을 보며 남편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는 수준까지 왔다.
내가 사주에 ‘불 화’가 4개란다. 그런데 남편은 흙이 4개란다.
어쩐지 어른들이 궁합을 보고도 뭐라 안 한 데는 서로 4개짜리가 만나서였을 거다.
나는 남편이 강하다고 느끼고 남편은 나를 강하다고 생각하며 억울해하는 결혼생활을 했다고 본다. 이제야 고백하는 남편은 ‘내가 좀 특이한 놈이긴 해’ 하며 나에게 이해를 구한다.
‘알면 다행이다. 나 아니면 누가 당신을 데리고 사냐. 고맙지?’로 나의 이해에 대한 답은 하지만 아쉽다.
밖에서 보면 나를 착하다고 볼 테지만 왜냐면 난 싫은 소리 하는 걸 바보같이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남편이 나와 달라 이렇게 만나 결혼생활하며 손해 보고 살지는 않는 것 같은데, 아쉬운 소리 잘하는 남편은 나에게도 잘했다. 이제는 그걸 내가 잘 넘기는 것 같고 그런 상황이 많이 잊혔는데 그저 뭔지 가끔 억울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리고 예전엔 남편 참 잘 난 것처럼 내겐 보였지만 이제는 세상이 남편에게 녹녹하게 대하지 않는 모습을 본다. 지금도 본인이 낸 아이디어가 세상에 인정받기를 원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나의 상태가 잔잔해져 있을 때는 짠한 마음이 든다. 똑똑함으로 살 수는 없는 세상이니까.
이제야 살아보니 나와의 대화에서 두 단계 넘을 동안의 관심만 키운다면 희망이 보일 수도 있다.
내 기대치를 훅 낮춘 건지. 아니면 이렇게 살아보니 사는 거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 건지.
돌고 도는 세상에서 이게 넘치면 저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단계에서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마지막 큰 꿈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가끔 좋은 남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난 좀 대화라는 걸 하고 싶은데... 내 꿈이 너무 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