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 화) 애도하고 싶다.
이해찬 전 총리가 돌아가셨단다. 정치는 욕심꾸러기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데모하는 학생들은 위대해 보였지만 힘없어 보이고. 내가 다니는 대학 캠퍼스에서 선배여학생이 전경에게 머리끄덩이를 휘어 잡혀 내 동댕이치는 그 모습에 분노해서 데모에 동참했지 나에게는 나의 사상을 무장해 준 이론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고 난 그런 서적이나 모임과는 거리가 먼 이과생이었다.
아스팔트에 머리가 ‘쿵’ 하고 부닥쳤다. 그 소리가 멀리 창문으로 공포에 질려 보던 우리들에게 들렸다. 수업준비로 어수선하던 강의실에서 창밖을 보던 학생들은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날 모든 수업은 중지되었고 학생들은 건물에서 나갈 수 없었다. 전경들이 학생회 학생들을 교문 밖으로 끌어내는 소동이 끝나고 나서야 학교에서 집으로 가라는 방송을 했던 거 같다. 다음 날부터 학생들은 모든 수업을 거부했다. 서울 동부모임 서부모임 남부모임 등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지역별로 모임을 조성했었나 보다. 수업은 중지되었지만 학생들은 학교에 모였고 팔짱을 끼고 스크럼을 짰다. 별 의식도 없던 나는 뭔지 모르는 분노와 정의감으로 몇 명이 빠져나간 수학과 같은 학년들과 팔짱을 끼고 교문 밖으로 나왔다.
교문 앞 아스팔트 거리로 몇 발자국 나가지도 못해서 전경들이 맞은편에서 가로막았다. 이쪽은 학생들 저쪽은 전경들.
그들은 서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무서워서였을까? 온몸 이 ‘쿵 쿵 쿵 쿵....’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전달되었다. 머리까지 울렸다. 선배들이 모두 길에 누웠다. 우리도 팔짱을 끼고 누웠다. 솔직히 집에 간 몇몇의 같은 과 애들이 비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현명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산당 이론도 모르고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조차도 모르는 내가 혹시 끌려가면 날 어떻게 할까?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이 팔짱을 풀고 도망갈까? 솔직히 그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비겁하기로 한 용기. 그 용기는 더더욱 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내가 한만큼 하고 나면 결과야 에라 모르겠다. 하고 포기를 잘하는데 그날은 그런 생각도 안 들고 계속 ‘어쩌지 어쩌지.’ 했던 공포의 시간이 생각난다. 그때 앞줄에 새로운 선배들이 등장하고 조금씩 우리는 전진했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그때 교문 앞 대치와 그다음 남대문 시장입구까지 전진했을 때 닥쳤던 상황이 부분 부분만 기억난다.
어떻게 해서였는지 남대문 입구까지 전진했다. 거리를 동부지구에서 온 대학생들이 합류하면서 도로를 가득 메웠고 난 속으로 이렇게 많으니까 이제 좀 안전한 건가? 전경들은 다 어디로 갔지? 의심을 하며 그들을 따라갔다.
죽은 사람, 다친 사람, 그들의 뉴스를 들으며 나약한 정의감을 탓하던 내게 이나마 동참할 수 있다는데 스스로 뿌듯함을 가졌던 순간이다. 같이 가던 친구도 그런 생각이었을 거 같다.
우리는 구호를 크게 외치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앞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도망가!!!"
마구 최루탄을 쏘며 몇 십 명의 전경들이 앞 쪽에서 우르르 뛰어 오며 여기저기 사람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앞서서 가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옆에 있던 친구도 어디로 갔는지 없다. 나는 순간 남대문 지하로 뛰어 들어가 지하상가 입구 화장실 벽에 서서 얼음이 되었다.
‘어떻게 하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게 ‘여기 서있어 가만히.’ 한 기억이 희미하다. 내가 내게 한 말인지. 누가 해준 말인지 사실 알 수 없다. 눈앞에서 학생들이 마귀 뛰어 도망가고 지하까지 전경들이 뛰어 들어왔다. 남학생들을 끌고 갔다. 끌려가는 학생의 눈과 마주쳤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남자들만 끌고 갈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있어. 남학생들이 많아서 남자들만 데리고 갈 거야.’
순식간에 전경들이 몇 명을 끌고 가고 계속 뛰어 들어오는 학생들을 쫓아 전경들도 계속 들어왔다. 결국 어떤 여학생이 입구에서 끌려가는 걸 봤다. 거기 계속 서 있다가는 나도 끌려갈 것만 같았다. 얼어붙어 있던 나는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내가 이곳 지리를 좀 안다. 가끔 들리던 지하상가라 상가 안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별일 아닌 것처럼...... 상가 입구를 보는데 상가로 통하는 문을 닫고 몸을 반쯤 가리고 보던 상가 아줌마가 얼른 내게 들어오라 손짓했다. 솔직히 난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내가 무서웠던 거와 나는 상가를 통해서 위로 올라와 상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조용해져서 집에 온 기억뿐.
너무 무서웠고 이건 잘 못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잘 못 되었다는. 부모님께는 말씀드릴 수 없었다.
지금은 애들한테 뭣도 모르고 정의감이라는 생각으로 한 나의 이 행동을 훈장처럼 이야기하지만 난 그때 비겁과 용기 사이에 무서움만 존재했었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그 시절을 지나고 나서 인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오늘이 되게 만든 사람 중 일등공신이었던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이제는 그분을 대신할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을까? 세상의 나쁜 놈들을 이겨내기에 혼자는 힘들다. 많은 사람이 팔짱을 껴야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내어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난 조문할 용기와 체력도 없지만 여기 앉아서 마음으로 그분의 가는 길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오늘 하루 아이들의 편안만 빌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 세상인가? 바로 얼마 전까지 이 나라를 뜨고 싶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정치를 한다면 누가 정치하는 사람을 미워하겠는가.
용기를 갖고 세상을 바꿔 준 선한 분들의 행동으로 나의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누리니 모두 감사하다.
부디 편안히 쉬시길 그리고 그 가족이 편안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