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의 문장들

(제20 화) 아버지가 만들어준 장난감

by 보리수

얼마 전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요즘엔 매일 산에 오르며 우리 집 노견의 건강관리는 하는데 그 덕에 나도 관리받고 있다. 두툼하게 입고 산에 오른다. 양평에서 사는 게 솔직히 녹녹하지 않고 원시적으로 보이는 생활패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개 데리고 산책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다.

눈밭에서 굴러도 안 다칠 것 같이 두껍게 무장한 옷과 미끄러질까 봐 손에 막대기 하나 들고 산을 오른다. 눈이 온 다음 날도 꾀가 나서 나가기 싫지만 원활한 노견의 배변활동을 위해서 완전무장하고 개도 옷을 입혀 산책을 간다.

집에서 멀리 떨어지고 매번 낯선 곳을 가야 대 소변을 봐주는 개의 까칠함 때문에 우리는 여기를 갈까 저기를 갈까 산책에 나설 때마다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벌레가 너무 많아서 그동안 포기했던 집 건너에 있는 산행에 겨울이 되어 다시 도전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진리이다. 그곳도 처음엔 너무 수풀이 우거지고, 가기도 힘들었지만 들어갔다 나오면 이름 모를 벌레에 물리거나 가시 돋친 나무 가지들이 몸을 막아서 안까지 들어갈 수 없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이쪽 입구에 한 사람이 지나다닐 길이 생기고 안으로 들어가면 저 쪽 넘어 에서 오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발자국으로 길이 만들어졌다.

그곳에 가면 노견도 신나 냄새를 맡고 매 번 배변에 성공을 하다 보니 아침 산책길로 최적이었다. 거기로 가기 시작하면서 아침의 산책 지 고민은 해결되었다.


20분 정도 올라가고 20분 정도 내려오면 딱 적당하게 아침 운동과 산책이 이루어진다.

집에 바로 붙은 산은 너무 경사가 져서 처음 이사 올 때 보다 산에 오르기가 힘들어졌다. 내가 나이 들어서. 그리고 산에 흙과 낙엽이 비와 눈으로 아래쪽으로 조금씩 흘러내린 게 그렇게 입구의 경사가 가파르게 모양을 바꿨다.

산은 어느 정도 들어가면 능선이 나오는데 집 뒤는 능선까지 오르기엔 이제 경사가 너무 급하다.

하지만 우리 집 노견이 좋아하는 산책길은 산 입구까지 난개발로 택지가 개발되어서 그곳 까지는 가기 쉽고 조금만 산속으로 들어가면 완만한 능선이 만만하게 이어져 꽤 오래 마음먹고 산행할 결심을 하면 두세 시간은 힘들지 않게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덕분에 여러 산짐승의 배설물도 보고 눈이 온 다음 날엔 산 짐승 발자국만 있는 산속에 우리 개와 사람 발자국을 처음으로 남길 수 있는 곳이다.

눈온길.jpg 입구에서 뒤돌아 찍으면

밤에는 덩치 큰 짐승들도 활동하는 시간이라 오기 힘들고 벌레가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에도 오기 힘든 곳이다. 매년 봄에 아직 괜찮겠지 했다가 온몸에 진드기가 붙어 그걸 떼느라 개도 사람도 고생해서 좀 따뜻해지면 가기 힘든 곳이기 때문에 겨울에만 갈 수 있는 히든 산책로이다.

나도 도시에 살아봐서 이렇게 한적하고 사람 없는 곳을 산책하다 보면 그때와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이들 어려서 자연을 접하게 한다고 도로 길가에 나무 많으니 여기서 소풍 하자고 하던 그 번잡스럽던 장소와 비교하면 말이다.

여기는 사람구경 할 수 없고 조용한 곳이 이렇게 곳곳에 있다 보니 굳이 소풍을 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아버지는 사람 없는 조용한 산행을 좋아했다.

별 말 수 없는 남편도 가끔 산타는 거 좋아하던 장인어른이야기를 한다.

개와 매번 이렇게 산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니 간혹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그중 산에서 만나는 소나무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겨울이라 물을 머금고 성장을 멈추고 있는 소나무의 껍질이 유난히 두툼해 보이는 오래된 소나무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런 껍질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 주던 소나무 껍질 보트가 떠오른다.

예전에 아이들 데리고 냇가에서 아버지 흉내 내며 만들었던 보트는 아무런 호응도 못 받은 채 그냥 흘러가버렸지만 아버지가 만든 소나무보트는 탄탄하게 중심을 잡고 잘 떠다녔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데리고 산에 가면 계곡에 자리 잡고 밥도 해 먹이고 설거지가 끝나면 계곡의 도랑물에서 놀고 있는 우리들에게 나뭇잎 보트를 띄워 보여주거나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돌과 돌사이에 얹어 돌아가는 천연 장난감을 보여 주셨다.

그중 제일 앞 권은 소나무 껍질로 만든 보트였다.

두툼한 소나무 껍질을 한 덩어리 떼어 보트모양으로 옆을 깎는다. 그리고 작은 구멍을 뚫어 거기에 나뭇잎을 낀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놓은 좁은 도랑 위에서 보트를 놓으면 좁은 돌사이로 떠 내려와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넓은 물 구덩이까지 무사히 흘러 안착한다.

그 시절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도랑물은 나의 무한 상상력의 무대가 된다.

소나무껍질 보트가 쉴 선착장도 돌을 쌓아 만들고 한쪽엔 물레방아가 돌 수 있는 계곡을 만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그 계곡과 소나무껍질 보트. 북한산 어디메쯤일 텐데.

그 보트는 그렇게 흘러 아래로 내려가 어딘가 걸려서 이제는 썩어 흔적도 없겠지만. 아쉽다.

아버지는 해지기 전 내려가자고 보트를 흘려보내라 하셨다. 다음에 또 만들어 준다고.

그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보트를 보며 아쉬워하던 내 어린 모습이 떠오른다.

산에서 두툼한 소나무 껍질을 보면 이걸로 만들 수 있으려나? 내 기억엔 더 두꺼웠던 거 같은데.

몇 번 시도했다가 이제는 포기한 아버지 흉내 내기가 겨울 산에 갈 때마다 떠오른다.

성공해 보고 싶은데. 재주 많았던 아버지.

나의 상상력의 창고를 열어 준 아버지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상상력의 창고가 넉넉한지도 모르겠다.

문득 어느 순간 열리는 창고 안엔 많은 추억들이 있다.


아버지 기일을 맞이해서 준비한 음식들.

엄마가 한 것 같지 않아 마땅치 않겠지만 우리의 상상력으로 엄마의 손맛을 맞춰 봤다. 그 핑계로 우리 식구들도 맛난 반찬과 탕국을 오랜만에 먹었다.

이렇게, 이제는 슬퍼하지 않고 기억하고 추억하며 아버지와 함께하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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