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의 문장들

(제17화) 오는 인연 가는 인연

by 보리수

작은 아이가 주변의 환경에 많이 영향을 받아 힘들어한다. 사실 이 모습은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자식들을 보면 볼수록 남편과 나를 어쩌면 그렇게 골고루 다르게 닮았는지... 얼마 전 제미나이와 챗 GPT에 물어본 사주풀이를 봐도 나와 남편의 닮은 점들도 풀이에 나오니 얘가 뭐 아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아이의 걱정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처럼 대꾸는 하지만 내 내심은 소소한 일처럼 보이는 일에 신경 쓰는 작은 아이에게 ‘지나 보면 별거 아니다.’ 란 잔소리를 하고 싶은 안타까움이 크다.


그렇게 초점이 작은애의 안달에 가 있다가 보니 그동안 잘하고 있겠거니 하던 큰아이에게는 소홀했었나 보다.

통화가 뜸하기도 했고 그동안 연락들도 없었는데 회사에서 큰아이를 좀 신경 쓰이게 했던 분이 4월부로 그만둔다는 톡이 왔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분이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때까지만 참자라는 생각도 들었겠고 ‘이제 4월 되면 조용해 질까? 너무 내가 미워했나?’라는 아쉬움 미 안 함 등 여러 생각이 들었을 거다.

그런 큰아이 마음을 알기에 전화를 했다.

각자 독립해서 나가니 아이들은 웬 간 해서는 전화를 거의 하지 않지만, 매번 내가 목소리 듣고 싶어 거는 입장이다.


‘ 어 엄마 ’

‘ 아쉽지만 그래도 이제 좀 일하기 편하겠네’

‘ 응 뭐 4월까지만 하면. 근데 막상 듣고 보니 좀 기분이 묘하네’

‘ 좋게 그만두게 이야기가 나온 건가?’

‘ 모르겠어. 당사자가 점심시간이라 나가고 나서 해준 말인데 ’

‘ 대표는 힘들겠네. 요즘 상황이...’

‘ 그렇지 연달아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게다가 회사일이 너무 바쁘고... 나한테 이 얘기 저 얘기하시더라고 ’

‘ 대표도 좀 일을 쉬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


큰아이는 그간 있었던 힘듦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신경을 쓰고 업무시간에 일을 하는지 퇴근시간이 되면 주르르 힘이 빠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로 1시간 정도 지나면 저녁 먹고 자기 루틴의 일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 끝에

‘ 엄마는 내가 둔한 줄 알지만...’


그 말에 내가 화들짝 놀라

‘ 네가 얼마나 예민한데... 외부에서 보면 여유 있어 보여 일 시키는 입장에서는 너무 여유 부린다 하고 볼지도 모른다고 했지 ’

난 큰아이를 한 번도 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작은 아이가 요즘 예민 떠는 말을 옮기면서 그렇게 와전되었는지 모르겠다.

큰아이는 어려서부터 제격이 컸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격 좋고 둥글둥글 살고 있다고 넘겨짚는데 그런 주변의 말에 큰아이도 이골이 났었나 보다. 그에 비해 작은 아이는 체구가 작아서 사람들은 당연히 예민할 것이라 보였을 테고.


살아보니 그렇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어떤 때는 설명을 열심히 해도 상대에게 전달되는 말이 하나도 없고 어떤 때는 한마디가 바로 전달될 때도 있고.

요즘은 가르치는 학생 외에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내 나잇대의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한다.

나도 남의 말을 정확히 잘 듣지 않고 그들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지만 그래도 친하다고 함께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우스운 상황.

그런 게 세상사는 거 같다.


형제자매도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고 만나면 또 예전처럼 서로 각자 다른 이야기를 공통화제처럼 수다를 떤다.

자주 만나면 자주 만나는 데로 문제가 생기고 어쩌다 만나면 또 어쩌다 만나니까 서로 풀어놓을 이야기보따리에 목소리가 커지며 내 이야기를 들으라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 좋아하지 않는 카페가 등장하기도 하나보다.

노 키즈존에 이어 노 어르신존이 등장하는 판이라고 어디서 들었다. 그 정도로 돌아다니지 않아 사실여부는 모르겠지만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 장소에 따라 사람들에 따라 상황이 다르니까.

큰아이는 자신을 둔하다고 한 적이 없다는 말에 그때서야

‘그런가?’

하며 ‘그래 그 정도로 이해해 주지’라는 수준으로 받아주는 듯했다.

큰아이의 어려서 분리불안과 자기 세계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 여러 특징에 애달파하던 지나온 엄마의 육아과정이 아이에게 전달되지는 않았겠지만 어쩌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전달되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독 심하게 떨어지지 않던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전문가인 어떤 분의 조언을 들었는데 태어날 때 사람은 10개의 껍질 안에 갇혀 나온다고 볼 수 있다면서, 자라면서 하나씩 그 껍질이 깨지는데 빨리 깨지는 사람이 있고 늦게 깨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큰아이는 그 껍질이 단단한 편이니 많은 경험과 사회적 자극을 주면 하나씩 깨어져 나갈 거라고 이야기해 줬다.

난 그 말을 위안으로 삼아 한 가지만 가지고 노는 큰아이를 집중력이 좋은 아이라 위로를 삼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해서 다른 걸 소홀하는 청소년기에도 비교적 불같던 내 성격을 누르며 큰아이의 특성을 지켜주려 나름 애를 썼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상처 주고 몰아붙이는 말이 튀어나왔을 수도 있고 그 말이 지금도 아이에게 둔하다는 평을 들은 것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든 지속되진 않았다. 유아기 때 힘들었던 마음과 초등학교시절 엉뚱하던 모습과 중학교시절 사춘기의 반항으로 고등학교 선택부터 대학교 전공까지 자신의 특징을 찾아가는 중요한 지침이 되어줬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기도 하는 힘든 상황이 지금의 창의적인 큰아이를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지나야 보이는 것들.

오면 오는 데로 좋고 가면 가는 데로 좋을 수 있는데 오면 와서 싫고 가면 가서 아쉽고 하니. 아직 그렇게 당연한 이치가 착착 받아 들어지지 않는다.

인연의 흐름은 나도 이제야 조금 받아들여지는 세상사는 방법인데 아이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 같긴 하다. 우리 아이들이 일부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60살의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