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신정, 구정... 나에게는
양가 어른들을 모두 보낸 지 2년이 되었다. 홀가분과 허전함이 동시에 밀려오며 무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명절 때가 되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명절 때나 가족이 모여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날이 되면 내가 해야 할 의무가 당연히 있어서 투덜거리며 했는데 이제는 내가 결정해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기에 오히려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해야 만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을 내가 내게 부여한 결과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아마 더 혼동스럽고 불편 한 지도 모른다.
불편함의 근원이 무엇일까? 곰곰이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친정집은 신정을 지냈다. 구정보다 양력 1월 1일을 새해맞이의 날로 12월 31일이 되면 다음날 올릴 차례상과 친척들이 모여 나눠 먹을 음식 준비로 바빴고 엄마는 한 보름 전부터 김치나 식혜 수정과등 미리 필요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1월 1일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새배를 하고 가까이 있는 어르신 친척집을 방문하고 세뱃돈을 받았다.
아마도 1980년대 초까지 고등학교 입학 전후로 자연스럽게 친척집에 우르르 가서 세배하는 일이 없어진 것 같다.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거나 멀리 이사 가시거나 했을 테니.
언제는 구정을 지냈었었다.
예전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정 지내다가 신정 지내다가 또 구정 지내다가 나라에서 신정을 지내라고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방학 때고 어느 날은 개학 이후고 또 어떤 때는 방학이고... 아버지는 장손이셨고 나라에서 이래라 저래라에 화가 나셨었다.
갑자기 “나라에서 뭐라 해도 우리는 신정 지내자!”
라고 집안내에 선언을 하셨다. 엄마는 우리가 방학 때라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하셨다. 네 자식들이 모두 방학 때 명절을 치르는 게 도시락 줄줄이 싸던 엄마 일이 좀 줄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우리는 신정을 지냈다.
그러다가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시댁은 다수가 지내던 구정을 지내니 추석명절 때만 약간의 갈등이 있었을 뿐 새해 인사로 신정은 우리 집, 구정은 시댁으로 인사를 다녔다.
그런데, 신정은 하루를 쉬고 구정은 3일을 쉬다 보니 왠지 친정과 시댁에서 보내는 내 마음의 시간에 불공평함이 일어났다. 그리고 신정 때도 떡국을 먹고 구정 때는 전날 가서 음식하고 떡국을 또 먹고.
양가 어른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은 나의 결정으로 새해맞이 날과 모습이 달라지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나이가 들어보니 어른들이 하자는 대로 하던 그런 습관 같던 명절이 내가 결정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2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내 힘과 내 결정으로 보낸 명절이 작년부터이긴 한데 작년엔 산소 가서 인사하고 아이들 출가와 겹치며 얼렁뚱땅 지나가 버렸다.
올해가 되어서야 정신이 좀 들면서 어떻게 명절을 보내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 떨어져 살다 보니 아이들이 집에 모이는 날이 명절로 느껴지고, 나는 이날 원 없이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은 요리를 잔뜩 하는 욕심꾸러기 엄마가 된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남편도 애들 오면 뭐 먹일까? 에 관심이 가고 그다음 산소에 이것을 가져가서 새해 인사를 드리고 이것은 식구들이 먹고. 명절 전에 가서 인사드리고 아이들이 왔을 때는 내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싶은 시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세배하던 일도 서로 어색해서 어른이 안 계시니 안 하게 되었다.
아이들 중 누군가 결혼하여 다른 식구가 생기고 내 아이에게 챙겨야 할 다른 집이 생기면 이 명절 모습 또한 바뀔 것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의무감에 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나의 짐을 벗어버리고 싶지만, 딱히 내가 그걸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소식이 뜸하면 안 될 것 같은 나의 형제들과 남편의 형제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부터 친척간의 유대를 책임지는 엄마를 봐와서 그런가? 딱히 사이가 안 좋은 것이 아니니 내가 챙겨야 할 관계인 것 같아 피로를 빨리 느끼는 내게는 이제 60 들어 부모님 말고 그들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내게 주면서 ‘내가 좋아서?’ 하는 거 맞는데 의무감을 부여하며 공평함을 들먹이는 내게 ‘너 참 피곤하게 산다.’라는 한마디를 던져본다.
남편을 바라보면 세상 편해 보이는데... 난 그게 안된다.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살자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