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적 육아일기
1년 만에 머리를 하고 와서 거울을 보며 귀밑으로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컬을 계속 쓸어본다.
'펌이 너무 잘 됐구먼...'
옆에서 지켜보던 첫째가 한마디 던진다.
"엄마, 너무 자기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오, 신이시여, 내가 나를 사랑했던가요?
나는 나를 이상적인 인간상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내 기대와 이상은 높았다. 인격적인 것이나 과정이 아닌 결과에 있어 높은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기에 나를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키도 작고, 예쁘지도 않았다(못생겼다고 썼다가 제목에 걸맞게 좀 더 긍정적(?) 표현을 선택해본다). 매년 남자아이들이 부르는 별명들이 많았다. 각종 만화 캐릭터부터 코주부까지 정말로 다양한 별명으로 불려보았는데, 모두 그다지 유쾌한 종류는 아니었다. 끝까지 무시했어야 했는데 내 안에 코주부가 반발하며 반응했기에 싸워야 했다. 대부분 깡으로 이겼으나 3학년 때 나보다 몸무게도 훨씬 더 나가는 남자아이와 크게 한 판을 하고는 싸움도 지고, 제법 큰 일이었는데도 귀한 집 아들이라 그런지 담임 선생님께서 단 한 말씀도 하시지 않는 것이 서러워 세상을 욕하며 이득도 없는 몸싸움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하였다. 여중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어 귀까지 자른 칼단발에 졸업반이 되어야 맞을 듯 크게 맞춘 교복에 버스 타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자의식이 너무 강해, 사서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졸업할 때까지도 치마가 너무 길어 접어 입어야 했다(도대체 얼마나 기대가 컸는가!). 심지어 교복을 몸에 딱 맞게 입는 것이 처음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랬던 내가 지금은 내 키도, 얼굴도 다 좋다. 하나 바뀐 것 없지만 특히나 얼굴로 내리 꽂히는 눈부신 조명 아래 그리 예뻐 보일 수 없다, 세상에나.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많이 애썼다.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잘 지내려 애쓰면서도 그렇지 않은 마음을 애처롭게 드러내고 말았던 나 자신에게 많이 실망했다. 정신과 수업을 들으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분명 사랑을 많이 담은 분임에도 술만 드시면 우리 자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욕인지 저주인지 퍼부으시던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 또한 보듬기 시작했다. 아빠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작은 울타리에 갇혀있던 엄마와 그런 엄마가 보듬지 못했던 아빠. 그렇게 나의 어두운 부분을 파고들어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상처를 돌보았다.
그렇게 상처가 많다 생각했던 나였기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오로지 사랑과 행복으로 넘실거리게 키워보고자 각종 육아서 및 성공한 사람들의 자녀교육법을 그렇게도 읽어댔다. 끝없이 멘토를 찾아 헤맸다. 책 속의 거장들을 만나는 시간은 참으로 즐거웠다. 내 안의 묵은 관념들이 서서히 씻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의지하고픈 순간들이 나를 흔들어댔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 해결하는 힘도 내 안에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외부에서 찾아 헤매는가? '
배운 것도 실천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되기에, 어떠한 것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괜찮을 수 있도록 내 마음 근육부터 키워야 했다. 이 모든 것들도 내가 정한 한계 속에 갇혀 있었음을 이제야 느낀다. 그러나 그 또한 내가 지나야 했던 길이다. 내 의식 수준이 거기에 머물렀고, 더 큰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처라 규정짓고 끊임없이 과거를 헤매며 나를 이해하고자 했으나, 이런 시도는 언제나 의미가 있다. 관념의 시공간에 갇혀 현재를 살지 못하고 아파했지만 그 순간에 머물며 충분히 울었다. 그러니 이제 떠나보낼 수 있다. 그토록 원했던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막상 아이들로부터 7년간 오롯이 받았더니 어느덧 진짜 나를 사랑한다는 그 폭닥한 느낌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다 보니 나를 다듬어야 했고 그렇게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때 나의 반응, 그 리액트를 점차 바꿔간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모두 허용하고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 본다. 그렇게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진다.
어느 날, 이런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대충 살자~ 구김살 좀 있어도 괜~~찮~다"
괜찮다.
모든 것이 괜찮다.
모두가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