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이가 내게로 걸어오는 찰나의 순간, 나의 시공간이 확장된다.
마치 영화에서 슬로 모션처럼 재생되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다. 좀 더 자란 소년 소녀의 모습이 문득 마음에 떠올라 이토록 어린 지금 모습에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순간, 다 자란 모습이 얼마나 뿌듯한지, 그만큼 지금 이 아기의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혼자 몰래 울컥하곤 한다. 마치 미래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리운 순간으로 돌아온 것 마냥 내 시공간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이 찰나의 순간을 붙잡고 앉아 아린 가슴에 손을 얹고 또 아이를 본다. 그렇게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늘 현재에 머물고자 애쓰는 나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매 순간 더 충만한 삶을 살아보고자 꾸준히 시도해 왔음을 문득 깨달았다. 현재에 머물기 힘들 때, 잠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이리저리 찾다 보니 괴로움에서 돌아온 순간들이 켜켜이 모여 내 나름의 고유한 지층이 생겼다.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더 단단하다. 우울하거나 불안감에 휩싸일 때, 하루하루 지독 시리 지겨울 때, 그렇게 지친 날에 기운을 차리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나는 주로 근처의 독립영화관을 찾았다. 주로 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작품들 중에 이럴 때 도움이 되는 영화를 찾기 쉬웠다. 가장 자주 갔던 곳은 서울 신촌 필름포럼과 부산의 국도예술관이었다. 특히 국도예술관이 남포동에서 대연동으로 옮겨온 12년의 역사 속에 행복한 시간이 참 많았는데,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먼저 조금은 닳아빠진 영화관 의자가 촘촘히 모인 작은 공간의 퀴퀴한 냄새를 들이마시며 몸의 긴장을 푼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차리도록 해주는 영화, 그런 주제를 다룬 영화를 찾아서 보았다. 대부분 가족, 시간,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가치를 다룬 영화였다. 그저 영상이 아름다워 마음이 평온해지는 그런 영화들도 있었다.
이제 자세한 부분은 기억도 안나는 게 대부분이지만, 몇몇 장면들이 아직도 마음을 가득 채우는 영화들이 있다. 이프 온리, 어바웃 타임, 엘리자베스 타운 같은 것들. 어바웃 타임은 지금도 간헐적으로 보고 또 보곤 한다. 카모메 식당, 미라클 벨리에, 안경, 바닷마을 다이어리, 리틀 포레스트..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는 어떤 것들이 가득했던 영화들이 끝없이 떠오른다.
비교적 메시지가 확실하게 전달되는 영화를 보고 나면, 감사의 폭포수 아래 앉아 명상이라도 한 것 마냥 훅 정신을 차리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감사한 아흔아홉 개보다 괴로운 하나만 바라보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흘러가는 1분 1초가 내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점을 찍는 순간인지 하마터면 그대로 흘려버릴 뻔한 아찔함과 알아차린 감사함이 썰물처럼 밀려와 새까만 감정을 모두 쓸어 간다. 그렇게 나는 정화되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곤 했다.
마음에 폭풍우가 일 때마다 이런 응급 처치를 하고 다시 고요하게 일상을 살아냈다. 코앞에 닥친 삶의 과업들을 완수해 나가던 동안은 다른 생각이라곤 할 수 없었던 내가 비교적 짧은 시간 쉽게 회복할 수 있었던 방법이다.
요즘은 나를 일깨우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명상을 알고부터 더욱 간단하고 빠르게 스스로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눈을 감고 호흡에만 집중하며 어지러운 감정을 날숨에 내뱉고 나면 그 생각과 감정을 끊어낼 수 있다.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집중이 쉽지 않다면 화장실 한 칸에 앉아 해보면 굉장한 효과가 있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1분 동안 온전히 나를 돌보자.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무언가를 날숨에 뱉어내고 나면 적어도 그 감정과 에너지에 사로잡힌 채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게 된다. 나를 비우고 잠들면, 밤동안 무한한 지성의 힘이 내 정신과 육체를 회복시켜 새로이 멋진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