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rib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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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Y Shin






No kids zone


지연은 모처럼 아무 이유 없이 연차를 내고, 집 근처 새로 생긴 카페를 찾았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며 한참 비어 있던 자리였는데, 어느 날 문득 지나치다 눈부시게 하얀 벽과 나무 격자창을 짜 넣은 출입문 위로 터키 블루 색의 앙증맞은 차양이 눈길을 사로잡아 언젠가 한번 와봐야지 벼르던 참이었다. 빈자리 하나둘씩 새로운 가게들이 생기는 걸 보니 확실히 다시 살아나긴 하나 보네. 커피 맛이야 뭐, 내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 동네 내수경제 진작을 위해 이 한 몸 나서서 이용해야지.


보기보다 묵직한 문을 밀고 들어서니 산뜻한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 향이 그를 감쌌다. 몇 개의 하얗고 둥근 테이블과 가지런히 놓인 의자들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느지막한 아침, 햇살이 가득한 창가에 앉으면 곧 피부가 화륵거리며 붉어질 것 같은 그런 시간, 지연은 이 시간에 그냥 그대로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을 즐겼다. 이렇게 가끔은 하루를 온전히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날을 비워 두는 것이 쳇바퀴 같은 그의 삶에 작은 행복이었다.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민소매 블랙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하얀 어깨에 닿은 까맣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짝였다.


메뉴판에는 글씨가 빼곡했지만, 지연은 별다른 고민 없이 오늘의 커피와 건포도가 몇 개 박힌 두툼한 쿠키 하나를 주문해서 자리에 앉았다. 이제 이 달콤한 여유와 행복감을 느낄 준비가 다 되었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덮친다. 하루빨리 인사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야 할 텐데. 스물아홉이다. 요즘은 스물아홉이면 아직 창창한 것 아냐? 뭐가 창창해, 서른 넘으면 노산인데. 어차피 낳을 거면 일찍 낳으라는 어른들.. 아니 선배들 얘기 지겹게도 들었잖아? 애 낳는 게 그렇게 대수냐.. 대수지.. 잠깐의 여유 시간이 생길라 치면, 도돌이표를 그리는 생애주기별 발달과업 수행에 대한 압박감이 지긋지긋하다. 아무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본인이 제일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이 더욱 싫은 지점이다. 부지런히 대학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고, 직장에 좀 적응하는가 싶더니 스물아홉인데, 또 무언가(잘 모르지만 엄청나게 힘들 것 같은)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니. 그렇지만 출산 휴가, 육아 휴직, 뭐 이런 휴가는 나도 꼭 써야 할 텐데. 너무 아깝잖아. 아까워? 휴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낳으려 한다니, 나도 참, 지나치다.


그때였다. 그야말로 귀를 찢는 듯한 아기 울음소리가 그녀를 다시 이 장소로 데려온 것은. 언제 들어온 건지, 그리 넓지 않은 이곳에 굳이 유모차까지 끌고 들어온 한 여자가 보였다. 덕분에 카페 한 구석이 꽉 찼다. 아기는 뭐가 불만인지 모스 부호처럼 뚝뚝 끊기는 신경질적인 울음을 이어가고, 여자는 주문도 못하고 혼자 땀을 흘리며 그냥 아기를 흔들고만 있는 것 같다. 왠지 아기가 더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아, 뭐야, 오늘 내 소중한 연차는 이미 망한 것 같은데. 어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에는 모두 'No Kids Zone'으로 법제화가 시급하다. 얼른 테이크 아웃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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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형태와 밝기가 변화하는 빛이 아른거리고 있다. E1356은 최근 완성되어 전 우주에 걸쳐 사용 가능한 새로운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이제는 더 미루지 않고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 사실 유기체라 정의하기 어려운 우리에겐 그 어떤 프로그램도 필요하지 않지만, 즐거이 활용하는 분위기다.


'주 관심사.. 운동.. '


그는 비교적 열성적인 부류로 다양한 안내에 참여했지만, 여전히 '삶'이란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이든 좋다고 하셨지만 몰입해보고 싶은 항목을 고르는 것이 가장 어렵다. 개념이 뚜렷하게 와닿지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이라고는 현재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선택해야할 세부 항목이 너무 많다.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아시스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그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같이 달라진다는데, 지금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고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수많은 필터를 적당히 설정하자, 리스트가 올라왔다. 점멸하는 글자들. 지금부터는 이름에서 풍기는 무언가를 느껴본다. 즉 이 선택이 나를 어찌 휘두르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물론 나와 내 아시스토가 서로 주고받는 물리화학적 작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역할이 훨씬 크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되어 있다. 그래도 이렇게 항목이 많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주 잠시 고민해 보지만, 이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이름을 응시한다. 느낌이 좋다. 과연 이곳에는 판단은 없고 방향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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