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누구에게나 언젠가 한 번쯤 스쳐 가는 단어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사건처럼 찾아오기도 하고, 오랜 시간 마음속에서 자라난 작은 균열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퇴사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출발의 다른 말이다. 모순적인 두 얼굴 사이에서 우리는 흔들린다.
나 역시 그랬다. 회사는 내 삶의 무게중심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업무였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동료들과 보내며 성과와 보고서로 나를 증명했다. 한 달에 한 번 찍히는 월급은 가정의 생계를 이어주는 버팀목이었고, 가장으로서의 체면과 책임은 내 선택을 단단히 묶어두는 끈이었다. 그래서 퇴사를 상상한다는 것조차 처음에는 무책임하거나 위험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붙잡던 끈은 점점 느슨해지고 있었다. 반복되는 업무, 끝없는 회의, 채워지지 않는 성취감. 성실히 버티고 있는 듯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렸다. “이 길이 내 전부여야만 할까?”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은 두려움을 불러왔다. 회사를 그만둔다면 나는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가장으로서 가족의 삶을 지킬 수 있을까? 수십 년 동안 이어온 경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사회와 단절된다는 공포는 상상만으로도 숨을 막히게 했다. 퇴사라는 단어는 마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아찔한 공포를 동반했다. 그러나 동시에 설렘도 있었다. 아침마다 알람에 쫓기지않고 눈을 뜨는 상상, 아이와 함께하는 긴 오후, 미뤄두었던 책을 읽고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는 모습. 무엇보다도 ‘나답게 살 수 있다’는 희미한 가능성이 가슴을 뛰게 했다. 두려움과 설렘은 같은 무게로 나를 흔들었다.
퇴사는 단순히 직장을 떠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이다. 부모 세대에게는 평생직장이 당연했지만 지금 세대에게 직장은 더 이상 삶 전체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평생을 바쳐도 지켜주지 않는 울타리라면 우리는 언젠가 그 밖의 세상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당장 회사를 나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속에 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퇴사를 상상한다는 건 지금의 자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는 왜 일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버티고 있는가? 지금의 선택은 내 삶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고 무겁지만 동시에 나를 더 자유롭게 한다. 두려움 속에서도 설렘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멈춤 앞에 선다. 퇴사는 그 멈춤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퇴사는 생계를 건 결단이라는 점에서 더 크고 선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퇴사를 떠올리는 순간,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망설인다. 그 망설임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보편적인 과정이다.
나는 아직 회사에 남아 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일하며, 같은 보고서를 쓰고, 같은 출근길에 오른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마음속에는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자라나고 있다. 그 가능성은 내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퇴사를 상상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퇴사를 선택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퇴사를 상상하는 순간 드러나는 나의 마음, 두려움과 설렘의 사이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퇴사라는 단어가 두렵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 단어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고, 삶을 새롭게 설계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두려움은 나를 움츠리게 하지만 설렘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퇴사를 상상한다는 것은 그 두 감정의 경계 위에 서는 일이다. 이 경계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묻는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 답은 시간이 지나며 변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퇴사는 결국 나를 다시 살아 보게 만드는 질문이며 멈춤 앞에서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이다.나는 지금 멈춤 앞에 서 있다.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분명히 느낀다. 이 흔들림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이 흔들림이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