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옭아매던 직장의 무게

by Hwan

직장은 오랫동안 내 삶의 중심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늘의 일정이었다. 하루의 끝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위로받았다. 월급은 한 달의 노고를 증명하는 표식이었고, 명함 위의 직함은 사회가 나를 불러주는 유일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십수 년을 살아왔다.


회사는 나에게 안정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매달 꼬박꼬박 급여를 받으며, 팀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렸다. 나는 그 안에서 성장했고, 책임을 배웠으며, 누군가의 신뢰를 얻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안정이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회사는 나를 보호하던 울타리이자 동시에 나를 가두는 울타리였다.


회의실의 공기는 늘 무거웠다. 누군가의 목소리만 크게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은 눈치로 말의 방향을 읽었다. 하루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좋습니다’라는 한마디를 얻기 위한 시간이었다. 문장을 다듬고 수치를 조정하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일이 좋아서인지, 성취가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두려워서인지. 돌이켜보면 나는 일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붙잡고 있었다. 두려움이 나를 지탱했고,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의 불안을 감쌌다. 회사를 떠나면 무너질 것 같은 공포, 그 공포가 나를 계속 머물게 했다.


퇴사를 상상하게 된 건 바로 그때였다. 보고서를 제출하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 모니터 속 반사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 사람이 정말 나인가?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흔들렸다. 퇴사는 현실을 부정하는 도피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렌즈였다.


어느 주말, 아이와 함께 놀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급한 보고서가 생겼고 상사의 전화 한 통에 계획은 무너졌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했지만 그날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걸까? 회사에서는 늘 지금이 중요하다고 외쳤지만, 정작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은 회사 밖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회사 생활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갉아먹었다. 성과를 내기 위해 밤을 새우고, 승진을 위해 내 감정을 감췄다. 칭찬 한마디에 들떴고, 인정받지 못하면 한없이 작아졌다. 나는 점점 ‘회사 안의 나’로만 살아가고 있었고, 회사 밖의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휴일에도 업무 메신저가 울리면 몸이 먼저 반응했고, 쉬고 있어도 마음은 일에 묶여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이상하게 허전했다. 성과는 쌓였지만 만족은 늘 모자랐다.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퇴사를 상상하는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건 회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되찾고 싶어서였다. 만약 지금의 자리를 내려놓는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상상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보고서 대신 책을 읽고, 아이와 산책하며 하루를 보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미소가 났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상은 나를 살게 했다.


직장은 필요하다. 그 안에는 배움이 있고, 관계가 있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이 나를 규정하게 두면 언젠가는 그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를 잃게 된다. 나는 이제야 안다. 퇴사를 상상한다는 건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은 이상할 만큼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회사가 내 전부가 아니기에 나는 오히려 더 담담하게 일할 수 있었다. 불안함 속에서도 내 삶의 주도권이 조금은 돌아온 기분이었다. 아직 현실은 바뀌지 않았지만 내 마음의 중심은 조금 달라졌다. 회사의 무게를 견디는 대신 내 삶의 무게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출근길에 선다. 다만 이제는 안다. 이 길이 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멈출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내 안에 있다는 것,그 가능성이 나를 옭아매던 무게를 천천히 풀어내고 있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