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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 Mar 11. 2023

여자 한의사 페이닥터의 생활

한의사 봉직의, 끝없는 떠돌이의 삶

국가고시에 합격해서 한의사가 되면 남자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공중보건의 또는 군의관을 가고 몇몇은 수련의(인턴, 레지던트, 전문의 과정)가 되며 대부분 로컬 한방병원, 요양병원, 한의원에서 페이닥터, 봉직의로 일을 시작한다. 물론 임상 한의사에 한해서이며 연구, 대학원 등 다른 루트도 다양하고 졸업 후 바로 개원을 할 수도 있다.


나의 첫 선택지는 수련의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수련의에 큰 뜻이 있었다기보단 학교 성적이 괜찮았고 현역(20살 제때 입학하여 휴학 없이 제때 졸업)이니 수련의로 일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주변의 조언들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나를 잘 몰랐고 그렇게 어영부영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 가고 싶어 타 병원에 지원하여 오게 됐지만 히키코모리로 살다가 첫 사회생활을 맞이한 나에게 병원문화는 너무 차가웠다. 구구절절 얘기하기엔 두려우니 생략하고, 더불어 퐁당퐁당 당직(주 6일 근무에 더불어 이틀에 한 번씩 야간근무를 하고 2주에 1번은 일요일도 일했다.)으로 잠을 못 자서 성격이 어긋나고 건강에도 위협을 느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걸 이길 만큼의 준비가 덜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걱정 됐으며 그렇게 도망치듯 병원을 나왔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서울에서 1년 오피스텔을 계약한 상태였으며 짧디 짧은 서너 달의 인턴생활을 끝낸 뒤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서울 월세값을 지불해야 했다.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신졸 여자 한의사의 서울 취직은 쉽지 않다. 먼저 신졸이기에 한번 걸러지고 여자라는 이유로 한번 더 걸러진다. 경기도까지 왕복 3시간을 다니며 일을 시작했고 그 이후 서울로 돌아오긴 했지만 말 못 할 여러 일이 있었다. 더불어 업계 특성상 연단위(더 짧을 때도 있었다.) 계약, 주말, 공휴일근무, (심지어 설, 추석연휴에 일하기도 했다.) 짧은 연차(최소 3일부터 다양했는데 요즘은 더 길어진 것 같다.)가 기본이라 직장인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이곳저곳 다니다가 인천에서 이제 자리를 잡나 했는데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매출감소로 퇴사를 권유받았다.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그거 때문에 잘린다고?'라며 어리둥절하겠지만 한의원 운영에 부원장 월급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업계에서 나 외에도 잘린 부원장들이 허다했다. 오랜 자취생활과 잦은 지역이동, 나를 어떻게 해서든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심신이 지친 상태로 나는 그렇게 8년간의 자취생활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갔다.


어디 가서 전문직, 한의사라고 하면 큰 걱정 없이 안정적일 거라는 시선이 만연했지만 당시 내 삶은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전문직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 때문에 삶의 고충 역시 털어놓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이렇게 써놓으니 '한의사'라는 직업을 그다지 좋지 않게 묘사한 것 같은데 한의사로서 장점도 많다. 일의 보람은 비교할 수 없지만 누군가를 건강하게끔 도와준다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뿌듯한 일이다.
내가 느끼기에 한의사 봉직의는 직장인과 프리랜서 사이 그 어디쯤에 위치하여 고용의 안정성이나 복지는 부족하지만 타직장인에 비해 급여가 높고 지역이동이 자유로운 편이며 연단위 계약이 끝난 뒤엔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한의사로서 꽃은 개원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업수완이 좋다면 여러모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몸과 마음을 수고할 각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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