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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 Mar 14. 2023

히키코모리 생활 청산기 1

잊고 있던 가족의 소중함

8년 동안의 자취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부산에 와서 성인이 된 이후 내 삶을 돌이켜봤다. 나는 외부 소통과 단절되었다. 나의 고질적인 성격에 외부적인 환경까지 더해져 소위 히키코모리의 삶을 살았는데 후천적으로 육류, 유제품 알레르기가 생겨 식사자리를 자주 피하다 보니 더욱 가속화된 것 같다.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겉보기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에 히키코모리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회 어디에서도 적응하지 못했고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공부와 내 삶에 집중했으니 나름 긍정적인 히키코모리였다고 할 수 있겠다.


부산에 돌아온 이후 곧바로 외부와 소통을 시도한 건 아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것도 아니며 그럴 필요성도 못 느꼈다. 당시 나는 관계에서 얻는 따뜻함을 잊고 산지 오래였고 머릿속엔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생존해야 할 나에 대한 걱정과 연민으로 가득했다. 나에게 누군가와 만난다는 건 나의 부정적인 기운이 상대에게 전해질까 봐 숨기기 급급하여 두렵고 피곤하기도한 과정이었다.


부산에 온 뒤 나는 또 '무얼 할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일을 바로 시작하기엔 심신이 지쳤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늘 그랬듯이 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다. 그때 아빠가 가르쳐줄 테니 가족들과 함께 경제스터디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아빠는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 중 제일 존경하는 사람인데, 아빠는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삶으로 보여줬다. 최악의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아빠에게 배운 게 아닌가 싶다.


일일이 뭘 배웠는지 구체적으로 적으면 경제칼럼이 될 것 같아 각설하고, 몇 개월 뒤 부산에서 일을 다시 시작한 뒤에도 스터디는 계속됐다. 가족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의견 차이로 다투기도 했지만 크고 작은 과정들을 풀어가면서 더욱 돈독해졌다. 아빠에게 '이런 공부는 어렸을 때부터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어?'라고 하자 아빠는 '학업에 집중하고 사회의 쓴 맛도 봐야 돈을 다룰 줄 안다.'라고 했다. 정말 아빠다운 답변이었다. 병원에서 당직으로 지친 내가 핸드폰을 붙잡고 그만두고 싶다고 울먹일 때 '그것도 못 버티면 세상에서 아무것도 못한다.'라며 차갑게 말해놓고 부산에 돌아왔을 땐 잘 왔다며 따뜻하게 안아줬던 사람이다.


오랜 자취생활로 가족과 제대로 소통할 시간이 없었던 나에게 잊고 있던 가족의 소중함은 사뭇 크게 다가왔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렇게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독이고 보듬어줄 수 있을까. 마음 한구석 잊고 있던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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