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ini Jul 21. 2024

잘 산다는 것, 삶의 모호함

며칠 전 아빠와 오랜만에 대화를 했다. 아빠랑 전화를 자주 하긴 하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게 얼마 만인지. 오늘의 대화는 일상적인 얘기에서 시작되었다가 일심사상, 연기설 그리고 엔트로피 법칙까지 이어졌다. 이어서 앎과 행동의 차이, 감각을 통한 인지의 한계, 깨달음의 의미, 죽음과 사랑의 가치까지.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었고 새벽 1시가 다 되어 약 3시간의 긴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빠는 나와 뇌회로가 굉장히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릴 땐 이를 인지하지 못했는데 사회에 나오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이런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없다는 것을. 그리고 한때 우리 집에서 mbti가 유행했을 때 온 가족이 검사를 했는데 아빠는 entj, 나는 intj가 나왔다. mbti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아빠와 나는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유사한 것은 분명하다.


아빠는 철학도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했기에 장남으로써 경제적 안정을 위해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회사를 다니다가 엄마를 만났고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았다. 아빠는 아이 셋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공과 관련 없는 사업을 시작했고 업종도 몇 번이나 바꿨다. 그 시절 많은 부모가 그랬듯 아빠는 가정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 어릴 때 나는 감히 그런 아빠를 불쌍해하고 가여워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아빠의 삶에서 아빠의 가장 큰 가치는 가족이었으며 아빠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랑했을 뿐이었다.


나도 아빠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될까. 순간의 점들은 다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비슷한 흐름을 찾을지도 모른다. 겉은 자꾸 바뀌었고 또 바뀌어 가고 있지만, 우린 삶의 매 순간을 사랑했다.


보잘것없는 예측력에 좌절되어 나를 미워했던 지난 순간들을 연민한다. 예측력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엄밀히 대상의 명확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물리는 무질서를 향해 달려가며 삶도 그저 모호함 투성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명의 우연성만 봐도 삶의 마지막조차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그럼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저 삶의 모호함을 끌어안고 내 분수를 사랑하며 살아갈 것. 모호하기에 우린 감탄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벚꽃 추억 가득, 북촌 갤러리71 전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