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곳적 신화부터 비롯해 이야기 속 인물들은 여행을 한다. 길 위에서 맞닥뜨린 우연한 사건을 통해 주인공은 더 단단해지고 성장한다. 우리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길 위의 분투를 응원한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1964)도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도입부는 카메라의 시선처럼 시작된다. 멀리서 산모퉁이를 도는 버스를 롱샷, 버스 안의 모습을 미디엄숏, 주인공의 내면을 클로즈업해 들어간다. 독자들은 소설 속 1인칭 화자인 주인공의 목소리로 무진의 특산물이 ‘안개’ 임을 안다. 그리고 기대한다. 이곳에서 주인공이 겪게 될 일들을. 하지만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승전결이 없다. 이런 모호함 때문에 독자들은 <무진기행>에 서서히 그리고 강하게 매료된다.
주인공은 무진에서 그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린다. 또한 현지인들이 서울 재력가 집안의 사위가 되어 금의환향한 자신을 부러워하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무엇보다도 사업상 이해관계가 없는 곳인 만큼 편안함을 느낀다.
빛과 그림자로 양분된 서울 생활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에게 무진의 안개는 보호막이다. 안개는 명암이 구분되지 않는 혼미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명쾌함과 합리성, 개방성이 중요한 근대화, 산업화 시대의 서울과 달리 적당히 자신을 가려주는 하얀 그림자다.
그림자와 하나 되기
빛도 어둠도 아닌 모호한 공간에서 주인공은 하인숙을 만난다. 그는 주인공의 여성 버전처럼 느껴진다. 첫 대면부터 노골적이기보다 적당히 절제된 태도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주인공에게 다가선다. 수줍음과 교태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하인숙의 말씨나 몸짓은 주인공은 물론 무진의 모든 남자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곧 연애인지 색정인지 모르는 관계를 맺는다.
하인숙은 주인공에게 그림자 같은 존재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모습을 지닌 인물이란 뜻이다. 사람들은 나와 유사한 특성을 지닌 사람에게 끌리지만 더 깊이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인숙도 주인공에게 구속되지 않는다. 자신의 서울행을 위한 동아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는 밤안개 같다.
무진을 떠나기 직전 주인공은 하인숙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삶의 터전인 서울에서 인숙과 새 인생을 시작하기엔 잃을 게 너무 많다. 주인공은 곧 편지를 찢어 버린다. 사랑이라고 썼지만 남자의 무책임한 모습에서 사랑이라는 이름 자체가 무색해진다.
성장하고 싶지 않은 어른-아이
소설 속 주인공은 무진이라는 공간과 닮은 구석이 많다. 무진은 영원히 발전 없이 정체되어 있는 비합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성장담을 보면 주인공이 여행길에서 모험과 역경을 겪은 후 집에 돌아오면 더 나은 인물로 변화되어 있다. 무진기행에서 이러한 미담은 없다.
주인공은 뭔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 같지만 그래서 아이처럼 미숙하다. 어른스럽고 고급스러운 말투와 성인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현실에 맞서지 못하고 상대를 진정으로 배려할 줄 모른다. 게다가 자신이 벌인 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인숙과의 짧은 연애도 병아리로 장난치는 아이들 심리처럼 매정하게 느껴진다. 주인공의 아내는 그의 삶과 스케줄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엄마’ 역할을 한다. 실제로 아내는 그의 여행의 시작과 종말을 통보하는 존재다.
<무진기행> 속 주인공은 여정 끝에 달라진 자아가 보이지 않는다. 복잡한 사연과 배경이 있음에도 무진은 그에게 삶도 없고 성장도 없는 피터팬의 ‘네버랜드’ 같은 공간이다. 그는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연약함과 우유부단함을 드러내고 도망친다.. 소설 속 공간 무진은 매력적이지만 결코 주인공에게 매료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