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영<Aggregations: Resonance, In-between>
명절 연휴 첫날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전광영 작가 개인전을 보러 갔다.
1944년생인 전광영 작가는 한국 미술계의 원로이자 K아트의 선구자 격으로 영국박물관, 홍콩 M+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가는 51세가 되던 1995년부터 입체 회화 '집합(aggregation)'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선 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집합 시리즈는 어릴 적 한약방을 운영하던 큰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수 천, 수 만 개의 한지와 노끈으로 만든 삼각형 조각을 이어 붙여 평면은 물론 대형 설치작업으로 확대해 작가만의 우주를 생성했다.
처음에 작가는 논어, 맹자, 법전 등 50년~100년 전 고서를 잘라 작품에 사용했다. 하지만 옛 것을 훼손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서 대신 글자 문양이 새겨진 한지를 사용했다.
수 천 개의 약재 봉투 모양의 삼각형에 적힌 글씨는 그 누구도 온전히 해독하기 불가능해 무의미화 되며 새로운 조형적 가치를 만든다. 이는 기존의 서사가 새로운 맥락에서 탈영토화 되며 다른 가치로 재창출되며 다원화되는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과도 닮아있다.
한지로 만든 시리즈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자 집합 시리즈도 점차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처음엔 무채색의 종이 색감을 그대로 살린 것이 이후 특수 염료로 컬러풀하게 물들이며 화려해졌다.
이번 전시는 2024년 신작은 물론 1980년대에 그린 추상화부터 다양한 작품 세게를 선보여 일종의 미니 회고전으로도 볼 수 있다.
크기가 제각각인 삼각형 모듈이 긴밀하게 짜여 있는 그의 작품들은 종이로 만든 소프트 조각에 속한다. 노동집약적인 작업방식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미니멀한 기하학 추상조각의 면모도 지닌다.
강한 조명에 의한 그림자 효과도 조각의 일부분으로 수용한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정적이면서도 강렬한 색감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대형 설치 작업에서 압도감마저 느낀다.
신작 'Aggregation24-FE011(2024)'에서는 메마른 우주공간에 물줄기 혹은 새로운 생명체가 스며든 것 같은 이미지다. 작가가 직조한 행성에 불시착해 탐험하다 온 느낌이다.
집합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면 '차이와 반복'을 통해 새로운 연결들을 만들어내는 들뢰즈 철학의 '리좀(rhizome)'이 생각났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로 11m, 세로 4m의 벽에 드리운 폭포의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청량한 느낌을 준다. 그는 두 작업을 한 공간에 놓아 수만 년의 시간을 품은 자연과 인간이 만든 형상의 대비를 연출했다.
한약방 약재포장과 보따리가 연상되는 한국적인 소재와 정서, 현대적 미감으로 전 세계 미술관에서도 각광받는 전광영 작가의 전시는 2월 16일까지, 입장료 3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