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희랍어 시간』 (2011)

부서진 삶을 잇는 침묵이라는 킨츠키

by 이선


초등학생 시절, 나의 작은 서재에는 부모님이 사주신 세계명작동화 전집이 꽂혀 있었다. 그중 ‘희랍신화’라는 책은 유난히 낯설고 신비로운 어감을 풍기며 내게 다가왔다. 훗날 ‘희랍’이 그리스를 옮긴 음역어임을 알게 되었지만, 이린 시절 책 속에서 펼쳐진 신화의 세계는 어린 나를 충분히 매료시켰다. 제우스처럼 전지전능한 신도 있었지만, 헤라나 아프로디테처럼 질투에 흔들리는 신,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까지 인간의 희로애락을 압축시킨 신들의 행태는 흥미진진했다.

시간이 흐르며 ‘희랍’이란 단어는 각종 문헌에서 ‘그리스’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희랍인 조르바』가 『그리스인 조르바』로 바뀌듯, ‘희랍’은 서서히 죽은 단어처럼 잊혔다. 언어의 창고 한구석에 말라붙은 촛농 같던 ‘희랍’이 활활 타오르는 양초로 부활한 건 한강의 『희랍어 시간』덕분이었다. ‘그리스어’를 굳이 ‘희랍어’로 부르는 것도 특이했지만, 낯선 언어 강습을 매개로 연결되는 남녀의 서사는 애틋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강의 작품이 늘 그렇듯, 『희랍어 시간』에서도 인물들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담담하게 마주한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마음을 주지 않으며 말할 수 없는 깊은 고독 속에서 삶을 이어 나간다. 한강은 섬세한 문장으로 우리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고 상상하던 삶의 모양들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와 카산드라를 떠올리게 한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에 의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 스스로 눈을 찌른다. 카산드라는 예언 능력을 받았지만 신은 그가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 능력도 함께 주었다. 앞을 볼 수 없고 말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 비극 속 주인공들처럼 소설 속 남녀 역시 상징적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이다. 신화 속 인물들은 이구동성으로 신의 비정함과 운명의 무상함을 노래한다.

“아아, 필멸의 인간 종족이여!”

“아아, 가련하구나, 인간의 운명이여!”


희랍어시간의 주인공들의 삶도 산산이 부서져 예전처럼 회복될 수 없는 사금파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운명에 스러지는 신화 속 인물들과 달리, 이들은 희랍어를 통해 천천히 서로에게 닿는 법을 배운다. 한강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생산성과 효용성이 없는 어떤 행위-즉 예술행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존재의 진실을 드러낸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행위가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생산한다.

이들이 희랍어로, 침묵으로, 손바닥 글씨로 소통하는 장면은 도자기 수리기법인 ‘킨츠키’를 떠올리게 한다. 킨츠키는 깨진 도자기의 틈을 옻과 금분으로 이어 붙이는 기법으로, 사물의 본래 용도를 회복시키며 심미적으로 더 아름답게 만든다. 그릇도 사람도 완벽한 형태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금 가고 상처가 날 운명이다. 하지만 산산이 흩어져 사라지지 않는 한, 다시 보듬고 치유할 수 있다. 여자의 침묵은 옻처럼 틈새를 접합하고, 남자의 희랍어는 균열을 따라 뿌려진 금분처럼 삶의 정념을 일깨운다..

그들은 서로 균열을 메워가지만, 봉합될 수 없는 틈, 금, 흠도 인정하고 보듬는다. 그러면서 한 번 깨진 것은 원래의 것보다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 맞지 않는 파편들이 접합되며 전혀 다른 그릇이 되듯, 부서진 개인의 내면이 낯선 언어를 통해 스며들고 이어진다. 이렇게 맥락이 다른 두 존재는 마침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프로이트는 “꿈이나 말실수, 농담 속에 오히려 숨은 진심이 있다”라고 말했다. 언어로 하는 소통은 완벽한 번역이 불가능하다. 어쩌면 오역이나 실수가 더 많은 것을 드러내며 침묵조차도 때로는 말보다 더 진실하게 마음을 건넬 수 있다.


『희랍어 시간』은 잊힌 말의 시간을 복원하고, 부서진 삶들이 서로를 통해 회복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강은 언어가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상처 난 존재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금빛 이음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희랍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행위는 결국 ‘다시 말하기’의 기술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는 과정이다. 오래전 내 어린 마음을 매료시켰던 신화의 세계처럼, 이 소설 또한 언어와 인간을 향한 근원적 질문을 맑고 고요한 문장으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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