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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나 Feb 09. 2024

축구하자,는 생소한 말

우리 축구하자~


우리 집에 들려오는 생소한 말이다.

딸 둘만 있는 집에 생전 나올 것 같지 않은 말의 주인공은 바로 엄마인 나다.  


처음에는 유튜브부터 찾아보았다. 생기초, 왕초보를 위한 축구 유튜브를 구독했다.

고알레[GOALE] 유튜브에서 [축구가 좋은 girl-축린이 탈출기]부터 [나 혼자 찬다-집에서 하는 축구]를 즐겨보았다.

고알레 유튜브

하지만 언제까지 집에서만 할 수 없지 않을까 싶어 마당으로 나와 신랑에게 축구 레슨을 받았다. 레슨이라기보다 공 뺏어봐, 한마디밖에 없는 신랑의 발재간만 지켜볼 뿐이었다. 당연히 공은 뺏을 수가 없었다. 괜히 약이 올랐다.

 

40년 만에 처음 하는 축구는 발이 따라가지 못했다. 발 안쪽으로 차는 축구의 동작은 끊임없이 다리의 근육이 익숙해지도록 연습해야 했다.

신랑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집 근처 아이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축구공을 들고 나자가고 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운동장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나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신랑의 공 넣어봐,라는 한마디 속에서 공을 무조건 골대 쪽으로 차고 달렸다.

골키퍼 없는 골대에는 공이 착착, 들어가 앉았다. 신이 난 나는 다양한 세리머니를 날리며 운동장을 달려 다녔다. 다행히 우리 가족 외에 아무도 운동장에 없었다. 누가 봤을까 걱정스럽기도... ㅎㅎ

그런데 신랑을 보니 공을 멀리 힘 있게 뻥뻥 날리는데 아무리 해도 나의 발은 힘 있게 축구공을 찰 수가 없었다. 공의 소리가 뻥뻥과 퐁퐁의 차이정도랄까.  

축구하라고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고 뭐든지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싶어 했던 신랑이지만 어떻게 가르쳐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냥, 진짜 그냥 마구 공으로 차고 달려서 몸으로 배운 거라 공을 차며 손과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천천히 생각해 보며 공을 차 보랬더니 목각인형 흉내를 내고 있었다. 팔다리가 따로 노는.


이제 보니 마치 한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것 같았다. 문법을 한 번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정작 가르치려고 하면 왜 그런지 쉽게 설명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팔과 다리가 따로 노는 듯 목각인형이 된 나는 진짜 축구코치를 찾아 나서야 했다. 축구 클럽에서도 코치님이 가르쳐주긴 하지만 20여 명이 다 같이 배우니 잘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았다. 빨리 배워 축구를 더 잘하고 싶었다. 욕심이 생겼다.

일대일로 축구를 가르쳐주는 코치님을 찾아 레슨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2번은 클럽에 참여하고 또 2번은 개인레슨을 받았다.


사실 개인 레슨을 받는다는 말은 신랑 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왜인지 비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축구클럽에 조차, 같이 다니는 동네언니조차에게도 비밀로 했다. !!!

좀 어느 정도 실력이 향상된 다음에 레슨을 받았다고 하고 싶었다. 정작 축구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헛발질하면서 개인레슨을 받는다고 기대하는 눈초리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 어제 뭐 했어?

- 네? 그냥 집에 있었어요...


하는 거짓말이 미안하고 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개인레슨으로 배운 내용을 클럽에서 시합할 때 써보려고 열심히 연습했다. 골을 넣기 위해 수백 번 공을 차고 또 찼다.


조금씩 발에 공이 붙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공이 정확히 발에 맞아 뻥 날아가는 느낌이 들 때 그 기분이 뚫어뻥보다 더 시원했다. 하지만 몸에 워낙 근육이 없었고 힘이 없으며 구력이 부족해 한참 모자랐다. 골때녀 선수들이 일주일에 5번 이상 몇 시간씩 축구를 연습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실력이 늘려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내 최애 프로그램이 되었고 매주 잊지 않고 챙겨보았다. 스스로 찾아 축구를 보고 연습하는 모습에 신랑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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