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야외운동이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눈이 오는 날은 눈이 쌓여서, 한여름은 더워서, 한겨울은 추워서, 바람이 많이 불어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운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혹여 날씨가 괜찮더라도 낮동안 힘든 일을 하고 또 야외운동을 하려고 하면 피로가 쌓여 못 나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축구클럽에 회원들이 많이 참여하는 날은 20여 명이 넘었다. 그러면 큰 경기장에서 11대 11로 진짜 축구 시합을 할 수 있었다. 15명 내외로 참석하는 날은 축구장 반만 사용해서 경기를 했다. 7~8명이 한 팀이 되어 시합을 했다.
모두가 제대로 축구라는 운동을 하려면 최소 20명 이상은 참석해주어야 했다. 그래서 축구클럽 회장님은 끊임없이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고 안 나오는 사람들을 독촉하며,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더 잘 나올 수 있도록 독려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못 나가게 되는 날은 너무 미안했다.
깜깜한 밤도 아닌데 하늘의 별을 제대로 보았던 날이 있다.
그날따라 회원들의 참석률이 매우 저조했다. 대부분 20여 명이 함께 운동을 해왔는데 겨우 10명정도의 회원들만 참석한 날이었다.
그때가 아마 8월쯤이었던 듯싶다. 한참 뜨거운 낮의 열기로 푹푹 찌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이 되어 낮동안의 죽일듯한 열기는 좀 가라앉았으나 바람의 입김조차 더위로 지치게 만드는 날이었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 몸을 풀기 위해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다리가 자꾸만 운동장 아래로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적으니 넓은 경기장이 더 넓게만 보였다.
간단한 훈련 후 축구경기가 시작되었다. 운동장 전체를 사용할 수도 없고, 운동장 반만 사용하기에도 참여한 회원 수가 너무 적었다.
미니축구를 하기로 했다. 운동장 반의 반 정도의 경기장을 사용해 골대 대신 양쪽에 각각축구공 3개씩을 세워두고 축구공을 먼저 맞추면 이기는 미니경기였다. 따로 골키퍼가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담당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수가 적었지만 공간이 좁아지니 그 속에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마치 초등학생때 하던 피구경기를 손이 아닌 발로 하는 느낌이었다. 날아온 축구공을 가슴으로 받아 패스를 해줄 때도 가슴이 턱턱 막혔다. 날이 더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은 편임에도 힘조절이 안되었다. 이렇게 가깝게 공을 차본적이 없었다. 훈련을 하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땐 친근한 동네아줌마 같다가도 시합이 시작되면 다들 눈빛이 바뀌었다. 공을 뺏기 위해 몸싸움도 오갔다.
그러다 별을 보았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번쩍하고 별이 핑 도는 동안 어느새 경기장 한가운데 내가 대자로 누워있었다.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기억이 났다.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어 그 앞이 안 보였는데 상대편에서 축구공을 있는 힘껏 날려 높게 차 올린 것이다. 물론 내 앞쪽 시야를 가렸던 사람은 깜짝 놀라 옆으로 피해버린 후였다. 불과 2-3m 앞에서 날아온 축구공은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골대에 공을 넣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있는 축구공을 맞추면 되기 때문에 공이 하늘로 날아오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왜 하필 그렇게 가까이 있는 곳에서 발로 슛을 때린 걸까.
나는 다시는 축구 미니게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얼굴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심하게 멍이 든 것도 아니었다. 대신 마음에 멍이 아주 까맣게 들었다. 공이 무서워졌다. 상대편 선수가 와서 계속 미안하다 하였지만 그 친구 잘못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여 헤딩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눈감아버린 내 잘못이었다.
그 뒤로 다른 축구경기를 할 때에도 한참 동안 날아오는 공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멀리서 날아오는 공을 잡아 서둘러 공격준비를 해야 하는데 축구선수가 공을 피하다니... 피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마음에 든 무서움이라는 까만 멍을 빼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아주 까맣게 물든 멍은 잘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