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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나 Feb 21. 2024

축구가 서러워,,

비가 살포시 내린다. 그래도 이 정도의 비 내리는 날에는 축구할 만하다. 비가 와서 살짝 물기 묻은 축구장에 축구공이 무거워진 느낌이다. 차는 만큼 잘 안 나가긴 하지만 완전 쏟아지지 않는 한 다들 축구하러 모인다. 그만큼 축구가 좋으니까. 축구공을 차며 달릴 때 그 에너지를 받고 싶으니까.


오늘은 축구클럽 회원은 아니지만 축구를 정말 잘하는 대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축구클럽의 한 회원분의 딸인데 운동선수라 기본적인 힘과 스킬을 있어 가끔 놀러 올 때마다 축구클럽 이모들의 격렬한 환영을 받는다.

내가 축구 경기장에 들어서면 그냥 근처 몇 명의 회원분들이 왔어요? 하는 가벼운 인사 정도 주고받는 반면, 그 대학생 친구가 경기장에 들어서면 저 멀리에서부터 달려 나와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나는 그 아이와 별로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 그냥 가볍게 인사를 하지만 그 아이는 이모님들의 환영인사 속에서 나는 안중에도 없다. 이곳도 역시 축구를 잘해야 대접을 받는가 보다.


가끔 오는 거라 반가워서 그러는 거라 생각해보려 했지만 또 격렬하게 환영해 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나보다 몇 살 더 어린 회원인데 뼈대가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 나와 같은 힘으로 축구공을 차는 것 같은데 공이 맞는 소리조차 다르다. 그 경쾌한 소리와 함께 축구공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이 친구가 오면 다들 입을 다물지 않고 오늘도 잘 나왔다며, 어깨 한 번씩 두드리고 지나간다.

축구를 잘하면 한 번만 나와도 좋고, 못하면 매일 나와도 그냥 그런가, 싶은 마음에 괜히 자격지심이 발동한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축구공을 차 보지만 40년 만에 처음 시작한 축구는 쉽지 않았다. 실력이 늘지 않게 보이더라도 꾸준히 배우고 달리고 차보며 구력을 늘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축구경기가 시작되었다. 두 강력한 에이스가 각 팀의 대표가 되어 팀을 나누었다. 나는 가끔 오는 운동선수인 대학생의 옆에 서서 공격수로 뛰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달리기 체력이 뒷받침되어 공격에도 지치지 않게 운동장을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니 그 장점을 살려보기로 했다.

삐-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축구공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편으로 패스된 모든 공은 대학생에게만 계속 패스되었다. 그 아이는 빠른 스피드와 힘으로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도 달려 나갔다. 혼자서.

그 옆에는 내가 계속 같이 달렸다. 진짜 시합이 아니고 서로 운동하고 실력을 높이기 위해 하는 연습경기인데 잘한다고 골대에서 골대까지 혼자 차고 달리는 게 괜찮은가? 하는 생각을 들었다. 패스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양 옆에 같은 편 선수들에게 분명 패스할 수 있는데 혼자 무조건 차고 달려 나간다. 물론 나에게 패스했으면 내가 방어하지 못해 공을 뺏겼을지도 모른다. 골을 넣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게 다 연습 아닐까. 정작 시합에 나가도 참여하지도 못하는 선수대신 매일 나오는 선수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지만 코치님도 회장님도 다른 선수들도 그 아이에게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한다. 결국 그 아이가 골을 넣었으니까. 나는 그 옆에서 패스되기만 기다리며 같이 달릴 뿐이었다. 오늘 운동은 축구가 아니라 달리기를 하러 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전반전이 끝나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나에게 패스 좀 해줘!라고...


후반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편이 골을 넣어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 대학생의 들러리를 하러 운동하러 나온 게 아니니까. 달리기만 하다 끝이 났다. 마지막엔 다른 선수에게 혼도 났다. 계속 패스될만한 곳에서 맴돌아도 패스를 안 해주길래 나중에는 중원을 지키며 안 달려가고 있었더니 여기서 뭐 하냐고, 공격 안 하냐고, 자리 지키라고, 하셨다.


축구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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