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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경화 Jan 11. 2022

어른이 얼른 되었다. 소통을 하면서 진짜 어른이. 된다

어린이가 어린이 된다, 어린이가 어른이 된다.

#넷플릭스 #겨우서른 중에서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는 온갖 듣기 좋은 말은 남들에게 다 해주고, 온갖 모진 말과 무뚝뚝한 표정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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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만니는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간다.
어느 날 무리하게 일하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다가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엄마는 걱정하며 만니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만니는 엄마에게 갖은 짜증을 내고 만다.
밖에서 착실하고 성실했지만 엄마에겐 모질던 딸, 만니.


만니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나는 어른일까...?


나 역시도 말을 하고 살아가며 말을 글을 소중히 생각하며 다루는 사람이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신의 손길이 못 미치는 곳에 신은 엄마를 보냈다.

[ 엄마 ]


그 가까운 사람은 가장 먼저 '엄마'라는 존재다.

엄마와의 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가장 사랑하며 가장 수많은 감정을 뒤섞는 관계이다.



아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엄마와 딸의 관계,

나이를 먹고 엄마의 나이로 살아가면서 엄마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엄마의 걱정 섞인 잔소리는 알면서도 때론 힘겹다.


딸에게 엄마는 친구이고, 엄마에게  딸은 둘도 없는 말동무다. 하지만 어느새 돌변해서 원수가 되기도 한다. 놀이터에서 잘 놀다 말싸움으로 삐친 짝꿍처럼 토라져 몇 날 며칠을 말하지 않고 지내곤 한다.


많은 딸과 엄마들이 공감하는 관계,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하는데 서로에게 생채기를 주고

왠지 날 서린 말을 쏘아붙여 결국 가슴에 소나기를 내리게 한다. 물론 우산은 없다.


엄마에게 다 큰 딸은 아직 어른이 아니다.

어린이일까? 어른이일까?

[ 가족 ]


어른이 되면서 어린이일 때 한없이 어려웠던

어른과의 소통, 가족과의 소통.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소통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족과의 소통,

가족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 나는 이 딜레마에 빠져서 나의 직업과의 연결선에서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가족과도 소통이 잘 안 되는데 과연 타인들에게 직업적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될 만한가?"

에 대한 딜레마였다.

그 딜레마에서 빠지기 위해서는 일단 나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부터  필요했다.


세상의 모든 스피치 아카데미 원장, 대기업 교육강사가 부모, 형제와 소통을 잘하고 있을 수 없으며

꼭 잘한다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나 자신이 늘 소통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온다는 마음에서 문제가 온다는 것.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강박의 고민은

어른의 고민이었고 답은 원초적으로 갈수록 즉,

 어린이로 돌아갈수록 찾을 수 있었다.



보통 가정에서 불통의 원인은

많은 환경적 요인과 심리 상황, 살아온 집안 분위기 등

복잡하고 무수한 것들이 내재되어 있다.

나 스스로 혼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조금 비우면 소통이 편해진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대화의

증폭이 깊어지는 순간이 어느새 온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 엄마와의 소통을

[잘하려고 한다.

잘해야 한다.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잘하지 않는다면 자격이 없다.]


이런 나의 강박은 나를 더 못난 딸로 만들고

나쁜 어른이 되게 했다.

집에서 부모님과의 나누는 대화를 편하게 생각하고

무엇이든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소통의 전제 앞에 '잘'해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불편한 것이다.

내가 강의하고 강연하는 소통의 틀에 맞춰

가족에게 대입하니 당연히 맞을 수가 없다.


가족은 조금 다른 행태로 다가가야 한다.

마음의 문이 먼저이고,

가족 간의 상처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소통 이기전에 상처에 어루만짐이다.

그 어떤 가정도 상처 없는 가정은 없다.

있는 그대로의 아픔과 상처 ,

인정하면서부터 진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상처를 주었다는 것부터 시작한다.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고된 숙련이다.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구나.

하물며 상대가 가족이라니!!

밤새 베개에 눈물을 적시는 게

아니 평생 베개에 눈물을 적셔가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 일 ]



어른이 되면 자기 일을 갖게 된다.

일을 갖게 되는 최종 결과물은 돈이다.

회사를 다니면 월급, 연봉이고,

사업을 하면 자신이 뛰어다니고 결실을 맺은 만큼

성과를 보게 된다.(뛰어다닌 만큼

성과를 보면, 그랬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많은 이들과 접촉한다.

역시나 소통을 피해 갈 수 없다.

어른과 어른의 소통이지만 소통은 언제나 쉽지 않다.

말의 힘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격이 형성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품격이 더해진다.

그 품성은 대화를 통해, 태도를 통해 나타나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 때 더 정확하게 나타나며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에게 대할 때 제대로 나타나며

상대와 친해질수록 혹은 자신이 우위에 서있다고

생각할수록 그 태도가 발화한다.


          "진짜 어른이 있고, 겉만 어른이 있다."


사회에서 겉모습 어른이 너무나 많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 해서 다 어른이 아니며

엄청난 부와 여러 곳의 지위와 명예를 가진 사람의

가볍고도 무례함이 튀어나오는 언행을 보면

어른이 아니라 아이보다 더 못하다.



요즘 내가 자주 접하는 한 어른은

해외 유학파 출신의 우아함을 갖춰 보이는 사람이다.

상생하며 함께 잘해보자는 그 사람의 말과는 달리

농이라며 던지는

"이렇게 부려먹어도 되나?"

"시켜서 미안해요"

이런 표현으로 나의 마음을 먼저 상하게 했다.

(*부려먹는다, 누가 누굴 시키는지...

무의식 중에 불현듯 나오는 권위적인 언어 표현은

그 사람 본성의 일부를 깨닫게 한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좋게 웃으며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대하는 태도가 스스로

망각하는 듯 보였다.



윗사람이 아랫사람 대하듯 자신은 예의를 갖춘다 생각할지 몰라도 전혀 그렇지 못한 실례를 범했다.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라며 자기 방어적 표현을 늘 나에게 갖췄다.

앞뒤 설명 없는 업무 표현방식에 지쳐있었고

일방적인 태도에  힘들었다.



어느 날은 내가 몸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함께 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껴

아픈 몸을 이끌었고 아침부터 데스크 탑에 앉아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메시지로 업무내용을 주고받던 중 소통이 안되자

전화통화를 했는데 내 목소리와 몸 상태가

점점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분명 몸 상태에 대해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만 하였다.

내용 이것저것 오고 가던 말미에 하는 말,

"내가 지금 4천 원짜리 팔려고 이걸 어쩌고 저쩌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지금 몸이 이 지경인데도 나는 왜 이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있지?

항상 이 사람을 만나면 불평만 듣지?


그러니 돌아오는 답변이 가관이다.


"그럼 송 대표님도 이야기하시면 되잖아요!"

"제가 하지 말라고 한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저렇게 감정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침묵이 흘렀고...


그제야

"몸이 진짜 안 좋으신가 봐요"라고 말하는 사람.




과연 제대로 된

어른과 어른의 대화일까?

전화를 끊고 비즈니스적 소통과 어른과의 소통의

그 중심에서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 나 ]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다 해낼 줄 알았다.

우리 집은 어른들이 넘쳐났고

사람들이 북적댔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무엇하나 아끼지 않았다.


늘 살던 동네에서 우리 부모님은

아낌없이 주는 부부셨다.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이 당연하듯 사는 가정환경 덕분에

나와 남동생은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런 직업을 가진 것도

물론이고 그런 부캐(부수적인 직업)를 평생 끼고 사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우스갯소리로 자식들이 돈도 안 되는 일에 충성을 다 한다며 핀잔을 주시지만 사실

제일 열정적인 후원자이시다.



남동생이나 나나 남들의 부탁은 흔쾌히 들어주고

사람 좋은 것 같으면 간, 쓸개도 다 빼주지만

정작 자신의 일은 제대로 피력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선 낯 가림이란 표현이 맞는지는 몰라도

낯 가린다.


나라는 존재도 나의 색깔이 뚜렷하고 여러 강점이

많은 편에도 불구하고 나의 장점을 말하라고

하는 자리에 하나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쑥스러움이 있다.


넘치는 자신감이 있지만 반면 잘난 체 못하는 성향이고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기피한다.

담백하고 내적으로 따뜻한 인간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아주 어릴 때는 발표를 못했던 내성적인 아이였고

모든 감정과 마음을 일기로 내뱉었던 어린이 었다.

글이 유일한 친구이기도 한,

글이 소통창구였기에 지금도 글쓰기가 나의

무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던 내가 2차 성징 기를 지나 청소년이 되면서

외향적 성향으로 바뀌었다.

교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활개를 치는

성향은 대학교 입학 이후까지 이어졌다.

그 성향은  쭉 이어져 방송인이 될 수 있는 길까지 게 했다.


대학 이후는 직업을 가지는 성인, 어른이 되면서

자아에도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내 성향을 외향적이라 단정할 수도

내성적이라 단정할 수도 없는 어른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변모하는 상대를 리드하거나 

맞추는 성향이 되었다.


혼자 있을 때 가장 나다워진다면

나는 내적 외향적 성향이 맞다.

가만히 있는 것, 정적인 것이  가장 좋고

그런 취미류가 더 좋다.

여러 취미가 있지만 그중에서

독서나 글쓰기가 더 나에게 맞기 때문이다.


진짜 어른 , 진정한 어른은

나 자신과

얼마나 대화를 잘 이끌어 가는 사람인가에서

나타난다.



나 자신이 매 순간 어떤 의식을 가지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욕구가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깨닫기 위해서는 솔직한 질문과 물음이 필요하다.

스스로의 대한 끊임없는 관철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와의 질문에서 나를 성숙하며 깨닫고

나를 찾아가는 어른이에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어른인 많은 어른들.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이 뒤섞인

우리들의 고민 속, 나 역시도 응답하며



잠시 나도 한 템포 쉬어가며...



오늘도 어른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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