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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Dec 07. 2022

아직은 간직하고 싶어서요.

_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디지털을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다.
(Robert Polidori)




소위 '아날로그적이다'라고 불리는 것들을 좋아한다.

옛날 사람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심야 라디오에 빠져있었던 걸 보면 사적 취향인 듯도 하다. 관심과 사랑 가득한 손 편지는 언제나 감동이고,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과 바스락 소리가 나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동영상 시청보다는 라디오 청취가 친근하고 Top 100 스트리밍보단 LP나 mp3로 듣고 싶은 노래를 한데 모아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에 맞게 선곡해 감상하는 것을 즐긴다. 메신저보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화가 정감 있고 USB에서 고심 끝에 건져 낸 여행 사진은 꼭 인화해서 앨범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


이런 나에게도 시대적 흐름을 무시할 수 없어 새로운 기계들이 생겼다. 마스크와 목도리에, 이어폰 줄까지 엉켜 여러 번 난감해진 뒤에야 블루투스 이어폰을 샀고 동생과 내가 모두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바람에 결국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수많은 기능이 있지만 기계치에게는 무용지물! 제3세계 언어 같은 설명서의 자세한 설명은 뒤로한 채 직접 사용하며 필요한 부분만 조금씩 익히고 친해지는 중이다.   




‘4차 산업혁명’, '미래교육',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최첨단 기술' 등 이런 단어들은 이젠 너무나 익숙해졌다. 소위 MZ세대라고 불리는 트렌드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그에 맞는 상품들도 수만 개가 즐비해있다. 가정용품은 더욱 세분화되어 일손을 돕고 있고 각 종 산업에서 사용하는 기계들은 매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편리한 기능에 세심한 디자인까지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기계들은 막대한 정보도 손쉽게 저장하고 삭제할 수 있어 효율적이고 편리해졌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만큼 삶은 무거워졌고 발전의 속도와 배우고 익힘의 간극은 연령대별로, 사회적 위치와 소득별로 점점 벌어지기도 했다. 주문도 예약도 키오스크로, 배달음식은 애플리케이션으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영상 시청까지 일상생활의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

이전에 없던 새로움과 마주하려니 30대 후반의 나는, 설렘보단 두려움이 크다. 3년 정도 사용하다 충전이 전혀 안 돼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바꿀 때도 예쁜 디자인으로만 고르는 수준이다. 그런데 팬데믹 현상으로 인해 출입 시 QR코드 인식부터 영상강의, 비대면 회의 등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원격’이 필수가 되어 가다 보니 배워야 할 것이 정말 산더미다. 교사인 나로서는 Zoom 활용방법은 기본이고 원격수업 콘텐츠 개발 및 영상 프로그램 활용방법까지.. 기계치인 사람으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산업 발전과 생활방식의 변화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부딪히는 중이다.   




그 흔한 모바일뱅크도 없고 새벽 배송엔 전혀 관심 없는 내가 신기해 보였는지, 아니면 미련해 보였는지,

친구들은 묻는다.

"아니 그래서, ooo뱅크 언제 할 거야? 혼자 무슨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거야"

“왜 MP3로 다운로드해서 음악을 들어? 그게 더 불편하지 않아?”

“지난번에 여행 갔던 사진 인화해서 앨범 만들었다면서.. 인화 값도 비쌀 텐데 디지털 액자나 그냥 휴대폰으로 보는 게 낫지 않아?”

수없이 듣는 질문이라 항상 웃으며 넘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냥 간직하고 싶어서요. 사진이든 음악이든 그냥 스쳐 지나가면 아쉽잖아요.

 나중에 꺼내 보고 싶을 때 찾을 수 있게 품에 두고 싶더라고요 아직은..”    


지체 없는 빠른 답변에 스스로도 적잖이 놀랐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냥 문득,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나 보다. 몇 해 전부터 정확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매일이 아쉬웠다. 아침 기상은 언제나 힘들고 퇴근시간은 왜 이리 멀리 있나 한숨이 나오다가도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달력을 보면 모르는 숫자들이 쌓여 있었다. 꽃내음에 설레고 초록 잎 사이로 뜨거웠다가 단풍나무 아래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어느새 길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른들 말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흘렀다. 나만 그대로인 채. 


그리고 그 사이, 사라지는 장면들이 많아졌다.

고등학생 때 유선 이어폰 줄을 나눠 끼며 음악을 들었던 순간을, 연락을 할 수 없어 약속 장소에서 무작정 당신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던 순간을, 버스킹 하는 사람들 덕분에 일상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바뀌던 순간을, 노란 조명 아래 길거리를 거닐다 서로의 체온을 맞대고 목소리로 온정을 전하던 순간들을 말이다. 배낭 하나 매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낯선 나라에서 바라본 하늘과 풍경들까지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이 이렇게도 많은데 기억력은 한계가 있으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허무함과 아쉬움이 점점 커져만 간다.

 

그래서일까?  삶의 증거로서 무엇이든, 어떻게든, 간직하고 싶었나 보다.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으니까. 기억하려 애쓰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 버리니까.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억할 수 있다면, 나름의 방법으로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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