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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Nov 23. 2017

내가 서양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

번역으로는 메울 수 없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

소설에 빠진 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달달이 세 권 정도는 읽었던 것 같다. 다른 열독가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서 부족하다는 말 들을 정도의 독서량은 아니라고 자부하며 스스로도 이를 자랑스레 여긴다.


나는 여기서 자문한다. 그렇다면 나는 '죄와 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의 명작을 읽고 한동안 여운에 빠져 등장인물의 심리를 분석하며 감동에 젖었는가? 사실 그렇지 않았다. 영 멀어보이는 문체, 복잡한 이름, 그리고 낯선 시대상에 적응하느라 바빠 그 위대함을 오롯이 체감하지 못 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꼽는 서양문학 1위는, 미래세계의 디스토피아를 상상해 그려낸 조지 오웰의 '1984'다.


작가는 오로지 각종 수사로만 책 안의 세계를 표현한다. 그러나 페이지에 한계가 있는 이상 그려내는 세계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독자들은 자신의 세상을 책 속에 투영해 감정을 싣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본설정'과 다른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 필연적으로 이질감을 느낀다.


수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나는 아직 서양문학에 감명을 받은 적이 없다. 고전명작은 최근의 서양소설에 비하면 차라리 양호하다. '물 흐르는 듯한 서스펜스',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 '한시라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따위의 수사가 든 책을 몇십 권은 읽어봤으나 개중 물 흐르는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나는 다한증 증상이 도질 때 빼곤 손에 땀을 쥐지 않았으며, 수시로 손에서 책을 놓아 두세 끼는 해결하고 책을 완독했다.


왜 존과 사라는 만난 지 하루도 안돼 키스를 하는가? 영화의 키스신은 볼 맛이 나고 노랫말 안의 키스신은 선율이 겹쳐 예쁘게 포장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책에서는? 존과 사라가 공통의 문제를 마주해 이 곳 저 곳을 들쑤시다가 느닷없이 입을 맞춘다. 이게 300쪽 짜리 책의 80쪽 부근이다. 책에서는 영상미도, 배경음악도 찾을 수 없다. 우리의 시선에서 이는 풍기문란한 사랑놀음에 불과하다. 그래서 동양적 이성을 유지하는 나는 으레 생각하는 것이다. '아, 서양에서는 키스가 일상이구나'라고. 물론 이는 깨달음일 뿐이지 감동은 되지 않는다.


정 책을 읽고 싶으면 원서로 읽으시길


번역 또한 그렇다. 나 같으면 목적어와 동사의 위치가 뒤바뀐 문장구조를 어색함 없이 번역하느니 아예 새로운 소설을 써보겠다. 구조와 표현이 다른 외국 소설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너무나 크다. 설령 그것들이 '아마존 베스트셀러'나, '뉴욕 타임즈 극찬' 같은 띠지를 포함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지금도 머리를 싸매며 완벽한 번역을 위해 고민하는 번역가들을 욕 되게 하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정확한 뜻과 매끈한 전달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들의 딜레마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는 마치 부지런한 새 같아."

"왜?"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하잖아."


한국에서 사용하기엔 어색한 표현들이다. 그렇다고 이 대사를 "존은 아침형 인간이야"라고 함부로 바꿀 순 없지 않은가? 사소한 말버릇 하나도 캐릭터의 일부가 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외국어를 직역하면 가독성은 제로가 되고, 의역하면 소설 쓰냐는 비아냥을 듣는다. '그는', '마치'를 비롯한 외국의 수많은 표현은 한국의 일상대화에선 전혀 사용 되지 않는다. 혹여 말장난이라도 나오면 집중력 저하는 더욱 심화된다. 작은 별표와 함께 'OO를 이용한 말장난'이라고 달리는 주석. 이 또한 집중력을 상당히 저해하는 주범인 것이다. 고유의 문화나 역사에 의거한 대사가 등장할 때, 일일이 주석을 읽어야만 하는 독자의 고통, 그리고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이해를 위해 일일이 주석을 달아줘야만 하는 번역가의 고통은 실상 서양문학에 있어 불가결한 필요악과도 같다. 이런 단점을 종합해, 나는 다음의 문장이 번역된 서양문학을 집약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치 성난 상어*처럼 다가가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주석: '성난 상어'라는 표현은 OO국 속담 '행복한 상어는 입 맞추지 않는다'에서 따온 표현이다) 500쪽 짜리 소설 중 172쪽 발췌.


감동은, 등장인물과 문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한 완성될 수 없다.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동양문학, 그 중에서도 같은 문장구조를 적용하는 일본문학은 읽다보면 그나마 본연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 되지만 서양문학은 그렇지 않다. 문화와 언어차이를 극복하는 묘수가 언젠가는 나올 수 있을까? 그 때는 나 또한 '아마존 베스트셀러'를 보며 '손에 땀을 쥘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가 똑같은 감동을 느끼기엔 문화와 언어의 차이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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