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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Nov 27. 2017

'친구' 진선규가 우리에게 준 희망의 메시지

친구 같은 순수함으로 나를 일깨우다

저런 조선족을 어떻게 캐스팅 했지,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물음이 아니었다. '범죄도시'를 본 관객이라면 대다수가 한 번쯤 가질 만한 생각이었다. 올해 만으로 불혹을 맞은 배우 진선규 씨는, 범죄도시에서의 열연 덕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 살인적인 눈빛 속에 들어있던 순수함이란

그간 깜짝수상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배우들은 많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 하고, 울먹이며 감사하는 사람을 하나씩 읊는 진실함에 많은 사람들은 감동했다. 당신의 앞길이 창창하길 바라요. 이제 꽃길만 걸으세요. 그런데 진선규 씨는 더 했다. 그의 소감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시에 깨끗이 청소해 주기까지 했다.


출처 SBS, 인사이트

자신의 이름이 불리고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어나려다가 결국 눈물샘이 터진 그였다. 쏟아지는 박수에 대처하지 못 하고 "감사합니다"만을 반복했는데, 그러면서도 "잘 생겼다"며 응원하는 팬에게는 "잘 생긴 건 아니"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한참 마음을 가다듬던 그는 어렵사리 마이크에 자신을 의지하며 입을 뗐다.


그의 수상소감은 조금도 준비 되지 않은 날것이었다. 처음으로 꺼낸 소감이란 게, "저 조선족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선언이었으니 그 즉흥성에 대해선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여기 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떨려서 청심환 먹고 왔는데, 진짜... 이거 받을 줄 알았으면 하나 더 먹었어야 됐는데..."


그리고 그는 다시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짜여지지 않은 멘트.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태도. 셀럽이 즐비한 행사에 초청된 것도 영광인데 졸지에 마이크까지 잡게 되는 우리의 반응이 딱 저럴 것이다. 한껏 갖춰입는 양복, 절제된 농담과 때에 맞춘 박수. 교양으로 점철된 시상식에서 그의 당황스런 모습은 되려 돋보였다. 진선규 씨는 멀리 떨어진 배우가 아니었다. 우리의 주변인이고 친구였다.


나 청룡영화제 간다며 자랑하는 친구. 너무 긴장되니 가기 전에 하나 먹자며 입에 청심환을 털어넣는 친구. 그의 인생이 우리와 동고동락 한 것 마냥 머릿속에 그려졌다. 시상식 전, 혹시 몰라 수상소감을 준비하면서도 민망하게 웃었다던 그는, 막상 손 안에 트로피가 쥐어지자 머리가 백지 상태라며 두서없이 고마운 존재들을 읊기 바빴다. 이 모든 기회를 주신 하나님, 어디선가 보고 있을 와이프. 한 템포 쉬어가더니 부모님, 장모, 경상남도 진해에 있는 친구들도 언급했다.


"그 친구들, 제 코가 낮아서 안 된다고... 코 세워야 된다고... 계까지 붓고 있는 친구들인데."


'되는 대로' 말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가까운 따뜻함이었다. 진선규 씨는 말을 더듬어서 죄송하다, 빨리 끝내겠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자신이 혹여 민폐가 될까봐 전전긍긍 했다.


읊는 사람들이라곤 코디와 매니저, 소속사 사장이 전부였던 배우들을 우리 함부로 '콧대 높다'고 재단했었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언제나 화려하고, 황홀하며, 빛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진선규 씨는 그런 패배적인 편견을 단숨에 깨부수었다.


진선규 씨는, '평범한' 주변인들 모두를 언급하고 나서야 소속사 사장을 비롯한 영화 스탭, 그리고 출연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수상소감을 마치고서도 몇 번이나 폴더인사를 하며 감동을 주체하지 못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 그의 두목 장첸 역을 맡았던 윤계상은, 그 소감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인스타그램에 격한 축하의 글을 올렸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다며.


그들 사는 세상이라고 별다를 게 없었다. 다들 한번 씩은 눈물 젖은 빵을 먹고, 고향 친구들과 키득거리며 처음 가볼 영화제 얘기를 했을 것이다. 진선규 씨의 소감은 그런 순수함의 결정체였다.


저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저들이라고 뭔가 특별한 건 아니란 것을.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도 저들처럼 빛나는 자리에 올라 눈물 흘릴 수 있음을.


'친구' 진선규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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