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가수도 아니고 한낱 대학생 주제에
결절이란 놈이 찾아온 게 3월말 쯤 됐다. 박효신이나 신지 같은 프로들만 겪는 고통으로 알았다. 그런데 막상 그 놈이 찾아오자, 일상이 고통이고 매일이 초조했다.
문제의 3월말, 나는 대학 MT 자리에서 한계를 모르고 끝없이 나섰다가 목이 망가졌다. 텅 빈 강당에서, MR을 틀어놓고 자체 노래방을 만든 그 날의 추억. 나는 내 성대를 굳게 믿고 배짱을 부렸다. '말 달리자'를 불러도, '넌 내게 반했어'를 긁어도 며칠이면 멀쩡해져 강철성대라는 명예까지 얻은 터였다. 그래서 나는, 이미 알코올에 찌든 성대를 몇 시간 씩 혹사하며 썩히고 또 썩혔다.
하루가 지난 MT 마지막 날, 내 목은 평소와 다름없이 회복기에 있었다. 언제나 이틀만 기다리면 목이 정상궤도로 돌아오곤 했다. 이 목소리도 곧 지나가리라. 나는 임원으로서 책임을 다 했고,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느낌이 쎄하진 않았다. 내 인생 최고로 목을 쓴 것 같긴 했지만, 이것은 소모가 아닌 단련일 거라 굳게 믿었다. 처음 이틀은 휘파람도 안 나왔는데, 슬슬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휘파람은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 목을 감싸는 이물감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목소리는 정상이 되었지만, 고음을 책임지는 어떤 부분이 돌이라도 박힌 듯 꽉 막힌 느낌이었다.
역시 목을 많이 쓰긴 했군. 여전히 자연치유를 지향한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딱히 신경쓰지 않고 내 할 일을 지속했다. 노래방 갈 기회가 있으면 거절하지 않고 서슴없이. 이물감은 기분 탓이라 믿었고, 그래서 갈 때마다 고음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목이 상하고 2주 뒤 쯤, 친구들과 한 번 더 노래방을 가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분명 내 목소리는 정상이었다. 그러나 한계음이 한없이 낮아졌다. 행복회로 가동을 중단했고 약간은 심각하게 내 증상을 고찰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끝없이 투어를 돌다가 아직까지 고생하는 보컬들을 떠올렸다. 존 본 조비, 제임스 헷필드, 머라이어 캐리 등... 그들을 떠올리니 왠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큰 차이는 그들은 프로고 나는 한낱 대학생이라는 점. 실제로 내 친구는, "성대결절 말만 들었지 진짜로 걸린 놈 처음 본다"며 실소를 터뜨렸다.
아직 락스피릿 충만한 20대는, 벌써부터 성대결절의 지속성을 걱정하면서도 '가오'를 생각했다.
'음주가무 하다가 성대결절 걸렸다고 하면 낯을 어떻게 들고 다니지'
'박효신이면 멋이라도 있는데 나는 그냥 나대다가 이렇게...'
'인생이 허망하다...'
뭐 이런 생각들이었다.
그 때부터 노래방을 끊고 따뜻한 물을 마셔주는 등 민간요법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물감은 여전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뜻한 물을 마시며 목을 조금 아끼는 것 밖에 없었다. 병원을 가고 싶었지만 유학생의 삶이 그리 순탄할 리 없었다. 진료비가 기본 70불인데,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한국 돌아갈 때까지, 기어코 낫고 말겠다는 의연한 다짐으로 매일 새벽 커피포트를 돌렸지만 무소용이었다. 부모님께 락스타의 꿈이 무산 됐다고 (실제로 이렇게 말하진 않았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 보험 있으니 병원 다녀오라고 내 걱정부터 하셨다. 이런 이유로 병원을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소년. 그러나 노래방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위해서라면 답이 없었다. 팔자에도 없는 이비인후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루를 통으로 쓰며 전문 이비인후과를 찾았으나, GP(General Practitioner)에 먼저 가야 한다는 소견에 따라 GP로 다시 출발. 맞다. 호주는 원래 이랬다. 한국 생각하고 전문의부터 찾은 내 잘못이었다.
하루를 날리고, 75불 가까운 돈을 지불한 뒤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소개 시켜준 친구 덕에 한결 편안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무엇이 아파서 왔냐는 질문에, 술 먹고 노래방 갔다가 목이 상했다고 둘러댄 것만 빼고 말이다.
"걸린 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 3주 됐는데, 그냥 자연스레 낫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이렇게..."
"지금 목소리는 변한 목소리예요? 원래 목소리는 어때요?"
"아뇨. 지금 이 목소리인데 고음만 안 나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의사 선생님의 비상한 두뇌에 계산이 서는 듯 했다. 결절은 맞는 것 같은데, 평생 갈 만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일말의 희망이 붙었다. 2주 동안 치료해 보고, 안 되면 전문의한테 갑시다. 75불을 또 날릴 생각에 두려움에 떤 나였지만, 소견서 미리 써주겠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 마시는 건 크게 도움이 안 될 까요?"
"목소리 나오는 곳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큰 도움은 안 될 거예요. 목 마르게 놔두는 것보다야 낫지만."
"약은 없나요?"
"예, 이제 처방 나가요. 약 복용법에 따라 잘 복용하시고, 2주간 상태를 지켜 봅시다. 만약에 목이 낫는다 싶으면 뭘 더 할 필요는 없고, 이래도 안 나으면 그 때는 전문의한테 가세요. 그리고, 에... 목 혹사하지 마시고. 술이랑 매운 음식 피하시고. 앞으로 2주 동안은 인생이 좀 노잼이더라도 참아요."
아, 점심에 불닭볶음면 먹고 왔는데...
한국 마트에서 불닭볶음면이랑 비빔면 밖에 안 사왔단 말이다. 왜 하늘은 내게 짜파게티를 사라고 계시를 내리지 않으셨나.
쓸데없는 원망이 불어만 갔다.
약값을 35불 가까이 내니 이 날만 110불 정도 깨졌다. 약 복용 시기를 알려주던 약사 선생님이, 내게 언제쯤 아프냐고 대뜸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뭐지, 성대를 위한 약이 아닌가. 딱히 시기는 없다고 답했고, 각각 일 1회와 2회씩 복용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약국을 나와 확인해 보니 역류성 식도염 약과 진통제였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의사 선생님의 통찰력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네가 음식을 소화하며 역류하는 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던, 의사 선생님의 그 말씀이 스쳐보낼 말이 아니었던 게다. 일반인인 나로서는 이 방침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줄이고, 약도 꾸준히 복용하며 성대를 달랬다. 이전보다 두세 배 더 빠른 속도로 쉬던 내 목소리도, 처방 뒤에는 증세조차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아끼고 또 아꼈다. 지난해 1등 먹은 가라오케의 밤도 쉬어가며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낫고 말겠다, 건강을 되찾고 말겠다... 목소리를 잃은 신지의 공허함을 투영하며, 프로 가수 마냥 재활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2주가 거의 지난 지금, 내 목의 이물감은 확실히 사라졌다. 목소리 또한 청량해진 것만 같은데 기분 탓일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잠깐 고음을 내봤는데, 고음이 멀쩡히 나와 분연히 포효했다. 조만간 노래방 복귀전을 치르며 목상태를 점검해 볼까 한다.
성대결절엔 병원이 답인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의 한방 솔루션에 더할 나위 없는 경의를 표하지만, 동시에 한 번 상한 목이 앞으로 또 상할 일은 없을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해 온다. 이제부터 목을 아끼고 살 작정이다. 항상 촉촉하게 유지해 주고, 자극적인 음식은 줄이고. 노래를 좋아하는 내게 있어 이번 일은 과히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 그리고 말 많이 하시는 분들. 성대결절 조심 또 조심 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