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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Sep 06. 2017

요즘 사이비의 포교활동

수법은 치밀하고 자연스럽다

필자는 비교적 순하게 생긴 겉모습 탓인지 호객행위를 자주 당하는 편이다. 사이비의 본거지로 불리는 강남역은 기본이요, 홍대와 오목교 등 어디서나 자취를 드러내는 "도를 아시나요"의 존재. 처음엔 이들을 어여삐 여겨 긴 시간 갖고 놀던 필자는 점차 그 존재가 지겨워 아예 상대를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에 세 번 걸린 적도 있으니 그 빈도에 대해선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겠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패턴은 내가 겪은 대부분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1. 둘이 짝을 지어 사냥감을 물색하다가

2. 적절한 타겟이 보이면 길을 묻는 척 다가간다.

3. 친절히 대답해 주면 인상이 너무 좋으시다고 인연을 운운한다.


이런 식으로만 포교가 이루어지면 다행인데, 필자가 지금 풀어놓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런 단편적 포교와 차원이 다른 장기간의 포교 이야기다. 자칫하면 수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입장에서, 이런 예시 또한 널리 알리고자 이렇게 키보드 앞에 앉았다. 포교 방식은 갈 수록 발전한다. 교묘하게, 그리고 선의로 포장해 사람을 유혹한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나는 항상 넘치는 열정에 비해 금전이 부족했다. 한 푼 한 푼 아끼고 모아 60만원 짜리 전자드럼(가장 저렴한 편이다)을 사고, 그 드럼을 애지중지 하며 혹시라도 고장 날까봐 노심초사 하곤 했다. 노래 또한 같았는데,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싶은 내게 있어 '저렴한 옵션'이란 노래방 밖에 없었다. 내게 있어 보컬 레슨은 사치요 낭비였다.


그 때 내 눈에 띄었던 게 바로 무료 보컬레슨 전단지였다. 엄밀히 말하면 어머니가 관심 있으면 연락해 보라고 번호를 전해주셨다. 의문부터 하고 보는 염세적 관점으로, 몇 번이나 그들의 존재를 의심했으나 결국 선한 재능기부 단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 곳에 가입했고 (오디션까지 봤다) 총 10주 코스의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갔다.


열몇 명의 수강생들은 각자 다른 목표를 가졌지만 '노래'라는 이름 앞에서는 하나였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데 너무 늦은 나이여도 괜찮을까요? 전 악기를 치는 사람인데 성악을 배워야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금 배워도 될까요? 그런 물음에 이 재능기부 단체는 '된다'고 말했다. 그 재능기부 단체는, '꿈이 있지만 돈이 없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 곳에는 몇 가지 룰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한 가지가 바로 '연락처 교환 금지'였다. 각자의 꿈을 위해 모인 곳인데 사적인 연락을 나누고, 관계가 발전한다면 수업의 본질이 훼손 된다는 이유였다. 나를 비롯한 열몇 명의 수강생은 그 지침을 철저히 따랐다. 그래서 아직도 그들 아무하고도 연락할 수가 없다. 이 단체의 진위를 알기 위해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해야 하거늘. 혹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라. 나는 아직도 이 단체를 위한 변명을 만들고 싶다.


6~7주차 쯤이었다. '꿈'을 모토로 삼았던 선생님은 수강생 한 명 한 명과 개인면담을 갖고 그들을 위한 맞춤형 인물을 소개 시켜주셨다. 배우를 목표로 하는 사람에겐 자신의 배우 친구를 소개 시켜주셨고, 아나운서가 꿈인 내겐 아나운서 인맥을 알려주셨다. 모 기업 사내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시던 그 분은, 보컬 레슨과 별개로 나와 주 1회씩 만나며 나의 고민을 소상히, 그리고 깊이 있게 들어주셨다.


친구(선생님)에게 취지를 듣고는 흔쾌히 재능기부를 수락했다는 아나운서 형의 조언은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이었다. 나는 그 도움을 모두 기억하고 메모하기에 바빴는데, 개중엔 자기가 배우는 심리테스트가 있다며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던가, 베스트셀러 책을 읽고 소감을 말해 달라던가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베스트셀러라기에 별 의심 없이 책을 편 나는 내용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축약하면, '간절히 염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신념의 신봉자가 아니기에, 나는 이 책이 어떻게 팔렸고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소감을 가감없이 이야기 했다. 필터 없이, 이런 건 별로 안 믿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이는 나의 건방짐이라기보다는 그 형을 깊이 신뢰해 내보인 솔직함에 가까웠다. 그럴 수 있어, 그 형은 그렇게 말하고선 내 심리테스트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 때의 말을 정확히 옮길 순 없지만, 나는 아직 마음 깊은 곳에 불안감이 남아있어 미리 겁을 먹곤 한댔나, 그런 류의 이야기였다. 심리적 치료가 가장 먼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 신뢰하는 유명한 심리상담가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었다. 자신은 일이 바빠져서 나가야 할 것 같다며. 그렇게 나는 두 다리를 건넜다.


그 형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심리상담가는, 이번엔 모 연예인의 힐링캠프 출연본을 보고 후기를 써오라고 했다. 그 연예인의 부지런하고 건강한 삶을 보며 깨닫는 게 뭔지 말해달라며. 여기까지도 차마 사이비 생각은 하지 못한 나는 힐링캠프를 보고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 연예인은 새벽에 깨서 쉴 틈 없이 계획적으로 자신을 이끈다고 내게 교훈을 주다가도 마지막 20분을 신에 관한 이야기로 허비했다. 그 연예인은 자신의 최종목표가 신의 존재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부분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나는, 그의 근면성실함을 보고 감명을 받았으며 그를 본받고 싶다, 는 정석적인 후기를 작성해 심리상담사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내 후기를 살펴보고선 다짜고짜 마지막 부분은 어땠냐고 물었다.


마지막 부분이요? 아, 신 얘기하는 거요?


거기부터 느낌이 쎄한 거다. 나는 이전처럼, 이런 건 별로 안 믿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얘기했는데, 이는 아나운서 형에게 밝혔던 솔직함과 달리 경계심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 방송분을 추천했는지 아냐며 그 이유를 설명했는데, 그 이유인 즉슨 나 같이 멘탈이 약한 사람에게는 종교적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무료 보컬레슨에서부터 이 '종교적 치유'라는 말을 직접 듣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두 달이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이상한 계약서를 꺼내더니 내 앞에 갖다 놓았다. 자신이 재직하는 곳에서 종교적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진행하는데 거기 내가 참가하면 좋겠단다. 이 곳에 싸인하면 곧장 그 프로젝트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내게 귀띔했다. 미쳤다고 내가 거기 싸인을 할까. 나는 그 자리에서 섣불리 싸인할 수 없으니 부모님께 상담해 보고 알려 드리겠다고 대답했다.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는데, 이 프로젝트는 극비리로 어디에도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바로 싸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 전 안 할 게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그녀와 두 시간 넘게 설전을 벌였다.


너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가? 왜 믿지 않는가? 실제로 성경 내용을 증명하는 역사적 자료가 발굴 되고 있는데 이래도 너는 신을 믿지 않는가?


사람에 따라 그 화술에 금세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여차저차 잘 방어하며 긴 시간을 버텼다. 여기에 싸인하지 않으면 더 이상 너의 꿈을 도와줄 수 없다, 그녀의 말에 나는 죄송하지만 이건 못 하겠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라고 응수하며 최종방어에 성공했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며 사이비 종교들의 특징과 포교 방법을 조사했다. '그림 그리는 심리테스트를 시키며 사람을 종교로 인도한다', 아나운서 형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녀와 연락을 끊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나운서 형한테 전화가 왔는데, 나는 이를 거절하고 그 형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했다. 마지막 수업 때 보컬 선생님께 이 말을 전해주자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나에게 두어 번을 사과했다. 그러나 10주 과정이 끝난 뒤에도 이루어지지 못한 '수강생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 훗날 연락할 일이 있어 카톡하고 봤더니 나를 차단한 선생님의 행동은 그 진정성에 의문을 안겼다. 그 사과는 과연 진짜 사과였을까. 아님 그들과 같은 편이면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겉핥기식 사과일 뿐이었을까.


이 예가 보여주듯 사이비는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고, 선의를 빙자해 선량한 사람을 늪에 빠뜨린다. 나는 이 이후로 재능기부라는 단어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물론 나는 보컬 레슨도 다 마치고 결론적으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었지만, 사람에 따라 무턱대고 들어섰다가는 예기치 못한 곤경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을 유인하고 타락시키는 나쁜 유혹이 없어지길.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나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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