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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Sep 16. 2017

우리가 전범기를 없애기 힘든 이유

외국인 대다수는 전범기가 '전범기'인 줄 모른다

이전 글에서 보듯 나는 유학생이고, 그런 만큼 한국의 위상에 대해서도 고찰할 일이 많았다. 고찰 도중 어쩔 수 없이 비교할 수 밖에 없던 대상은 바로 옆나라 일본이었다. 벌써 대표적인 먹거리로 자리잡은 스시, 생활 깊숙이 침투한 아니메, 사회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2개월 넘게 배운 사무라이 문화 등등. 세계적인 일본의 위상은 안타깝지만 한국이 목표로 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 모두를 감안하고서라도 용서할 수 없는 문화가 있었는데, 바로 전범기였다.


내 또래 아이들이 전범기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 이는 그야말로 한국인으로서 참을 수 없는 수치였다. 나는 길거리를 걸으며 간혹 보이는 전범기에 한숨을 내쉬곤 했는데, 그래도 그 때는 그 현상을 그저 '아직 어려서 나오는 무지함'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언젠가, 학교에서조차 전범기를 보게 된 나는 경악을 금치 못 했고, 내 모교에까지 전범기가 퍼지는 건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풀어갈 이야기는, 전범기를 걸어놓은 학교와 이에 맞서 싸운 나의 이야기다.



우리 학교는 예부터 다문화를 표방하여 수많은 인종이 뒤섞였다. 극동과 동남아시아는 물론이요,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까지 하나의 언어로 우리 학교에서 문화를 교류했기에 학교 축제 또한 'UN데이'로 불려 각국의 문화를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곤 했다. 장기자랑 시간엔 중국 학생이 나와 건담 시드 OST를 열창하고 들어가는 그런 학교였다.


다문화를 표방하는 건 학교 도서관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렇기에 도서관 내부 전경은 특정문화를 주제로 매번 변화했다. 한국을 주제로 한 주간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입구에 세우며 한반도 지도를 카운터에 걸어놓는 형식이었다. 그런 소소한 데코레이션이, 학생들에겐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남아 잔상이 되는 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학교를 좋아했다.


한국이 지나고 일본의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을 예정이었고 이를 당연시 여길 예정이었다. 우리가 받은 것과 같은 혜택을 다른 나라도 받아야 함이 자명하기에. 그렇게 도서관으로 들어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수십 개의 전범기가 휘날리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천장엔 수십 개의 전범기가 하늘거리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운동회에 가면 흔히 걸린 만국기의 모든 국기가 전범기라고 상상해 보라.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참상에서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했다. 몇십, 몇백의 학생이 수시로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전범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날 한국인 사이의 화두는 단연 '도서관의 전범기'였다. "미친 거 아니냐", "의식이 없어도 너무 없다" 같은 반응이 주를 이루며 역시나 '이건 잘못 됐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평소 학교 스탭에게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으나 그 날은 달랐고, 나는 일본제국의 만행에 희생된 모든 국가의 명예를 짊어진 마냥 비장한 표정으로 쉬는 시간을 쪼개 도서관에 다시 들어섰다.


도서관 담당자는 평소에도 엄격한 표정으로 엄격한 잣대를 내밀어 나와 썩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표독스러운 로빈 윌리엄스 느낌이랄까. 말 걸기 좋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카운터를 지키는 로빈 아주머니를 불러 전범기를 가리켰다.


"이게 뭔 줄 아세요?"

"모르겠는데."

"라이징 선 플래그라고,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쓰던 일본군 군기입니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이 전범기로 피해를 봤으며..."


아직도 영어 연설을 하면 몇 번은 끊기는데, 이 말만큼은 똑 부러지게 한 것 같다.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하던 지원군 친구는, 내가 로빈 윌리엄스와 실랑이를 벌일 때 위키피디아로 라이징 선 플래그를 검색하며 나름대로 열을 올렸다. 그러나 그런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는데, 이는 로빈 아주머니가 우리와 협상할 생각이 아예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거 잘 모르니까 담당자한테 얘기하렴."


뚱한 표정으로 떠난 그녀의 표독스러운 눈망울이 그 날따라 더욱 표독스러웠다. 담당자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알고 담당자를 찾아가나? 부서 떠넘기는 게 일본 이웃나라 고객센터를 보는 듯 했다. 학교에 정녕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힘없는 우리를 위해 싸워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억을 거슬렀다. 전범기의 존재를 잘 알 만한 학교 사람을 찾기 위해.


문득 당시로부터 2년 전 배운 사무라이 문화가 생각났다. 학교 사회시간에 사무라이를 배우는 걸 믿을 수 없던 나는, 긍정적으로 서술된 커리큘럼의 반대급부로 '얘네 좋은 점도 있는데 나쁜 점도 좀 있다'는 치기 어린 레포트를 제출했다가 C를 받고 산화했다. 나에게 C를 준 선생님을 찾아가면 해결의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교사들 중에선 상당한 입지를 가진 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분은 내게 2차 세계대전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가르친 분이기도 했다. 더 이상 그 분에게서 배울 게 없는 나였지만 사무실을 찾아가 문을 두들겼다. 아이고 선생님, 갑자기 불러서 죄송합니다. 간단한 사과를 마치고 본론에 들어섰다.


"선생님 사회담당이시니까 일본이 우리 지배했던 거 아시죠?"

"알지."

"그러면 전범기가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게 어떤 의미인 지는 아시죠?"

"그럼, 알지."

"도서관에 전범기 몇십 개가 깔려 있어요."


선생님의 표정이 급격히 심각해짐을 느낀 순간 나는 성취감을 느꼈다. 역시 그녀는 알고 있었다. 도서관 어디에 깔려 있느냐고 묻더니, 자기가 얘기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사과하셨다. 일반인은 그저 예쁘다고 좋아하는 태양무늬. 그 참뜻은 외국에선 사회 선생님이나 돼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 날 도서관을 다시 방문하니 천장이 더할 나위 없이 맑았다. 선생님은 약속을 곧장 실행에 옮기셨고, 덕분에 나를 비롯한 많은 아시안이 맑은 눈망울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영향력이 다른 나라 학생에게까지 멀리 뻗지 않은 게 참 다행이었다.



이 사건은 자랑할 것 별로 없는 내 인생에서 자랑스레 꺼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야기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런 사건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리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 한켠이 답답해 온다. 건강한 문화는 세계 곳곳에 전파해야 마땅하나 전범기는 결코 그 범주에 들 수 없다. 반발을 일으키고, 피해를 일으키는 문화는 아무리 커져도 제 살 깎아먹기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잘못을 모르는 일본을 책망하면서도, 우리나라 또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건 아닌 지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국민이 나서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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