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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혜 Aug 22. 2023

다시 사랑하지 않겠다는
달콤한 거짓말

(7). 토숑이를 부탁해!

     Q와 헤어지고 나서 K는 또다시 방황했다. 분명 원해서 한 이별인데 마치 자신이 이별통보를 받은 것처럼 힘들어했다. 싫든 좋든 모든 일상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Q가 막상 자신 곁을 떠나자 K는 가슴이 아팠고, 허전한 맘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냥 아무나 보면 사랑해 버릴까.”  

             

     K는 마음에도 없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정말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승강기를 타고 38층 오피스텔로 올라가면서 마주친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저 여자도, 저 남자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겠지?”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했다.  물론 이 시절에 K에게 만남의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승강기에 마주친 한 남자는           


        “혹시 커피 한잔하실 수 있을까요?”       

   

     커피 데이트 신청을 했다. 큰 망설임 없이 K는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그는 K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지만 그 남자의 말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허공에서 목소리가 큰 새가 듣기 거북한 소리로 노래하는 것 같았다. K의 방황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몸도 마음도 점점 망가져갔다. 오랜 유학생활로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은 수술과 치료를 했지만 충분히 돌보지 못했다. K는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불면증 때문에 먹던 수면제는 심한 부작용을 가져와서 폭식과 음주를 반복했다. 분명 자신이 이별을 선언했고, 먼저 떠난 것도 자기 자신이면서, 한 번 더 붙잡아주지 않은 Q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막상 정말 Q가 K에게 돌아와서 받아달라고 했다 한들, 받아줄 자신이 없었다.    

       

           “제발 그 누구라도 내게 말을 걸어줬으면…”  

       

     K는 절박했다. 아프고 힘든 자신을 누군가는 알아 봐줬으면 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K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왜 지금 절박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모든 것이 점점 더 멀어지는 걸까.         

  

        “아무것도 하지 말자.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견디기 힘들어진 K는 급기야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기 시작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잘해보려고 애쓰지 않았고, 그 무엇에도 불평하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본 거다. 수면제를 먹으면 부작용으로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었고, 다음 날 아침이면 이런 자신의 행동이 수치스럽고 싫어서 더 우울해졌다. K가 혼자 지내던 오피스텔에 엄마가 찾아온 것은 이 즈음이다. 수술후유증, 약부작용, 알 수 없는 몸의 통증. 그녀의 엄마는 K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물론 집에 와서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방문을 닫고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채 지냈다.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웠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입에서 뜬금없이 이런 말이 나온 것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무슨 독립 선언이라도 하듯 식구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처음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던 엄마는 K를 그냥 이대로 놔두면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고는 강아지를 보러 가자고 하셨다.      

     

           “유기 견을 키우고 싶은데…”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 지금은 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져서 유기 견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5년 전만 해도 부끄럽지만 K의 가족은 유기 견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집 근처 애견 숍을 찾아갔다. 애견 숍에 들어가서 K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만 가끔 봤던 애견 숍의 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물고기가 살 것 같은 어항처럼 생긴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 작고 약해 보이는 강아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모두 인형처럼 작고 예뻤지만 뭔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점원은 어떻게든 강아지를 팔기 위해 흰 장갑을 낀 채 강아지를 유리 상자에서 꺼내서 보여주고는 다시 유리 상자에 넣기 전에 강아지를 소독했다. 유리 상자는 너무 깨끗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그냥 나갈까’ 생각하며 K는 함께 간 엄마 팔을 끌었다. 그런데 아까는 잘 보이지 않던 왼쪽 유리 상자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흰 강아지가 눈에 띄었다. 그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들보다 유난히 작고 약해 보였다.                

 

        “이 강아지는 뭐죠?”

        “비숑아시죠? 비숑”

        “네?”

        “요새 인기 많은 비숑프리제인데요. 값이 비싸서 안 팔려서 개월 수를 조금 넘겨버렸지 뭐예요”

        “개월 수를 넘기다니요?” 

        “2개월 때 팔았어야 했는데 지금 3개월 반이에요.”     

     

        갑자기 화색이 돈 점원은 흰 장갑을 다시 끼고는 웅크리고 있는 흰 강아지를 꺼내 보여줬다. 다른 강아지들은 바깥으로 내놓기가 무섭게 콩콩거리면서 달리기를 하는데, 이 강아지는 땅바닥에 내려놓아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가 아파 보이는데요.”

        “천만 에요. 저희가 주사 2차까지 다 맞췄고요. 건강한 아이랍니다. 졸려서 그래요. 반값에 드릴 게요.” 

        “반값이라뇨? 저희가 데려갈게요!”               


         한 생명의 몸값을 반값으로 매기면서 돈을 주고 판다는 것에 K는 분노했다. 토숑이는 생각보다 더 많이 약했다. 우선 애견 숍에서 더 작게 보이려고 죽지 않을 만큼만 사료를 먹여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집에 온 첫날 K는 사료를 조금만 붓는다는 게 실수로 한가득 그릇에 부었다. 토숑이는 그걸 보자마자 사료는 물론 사료를 불리려고 부은 물까지 다 먹어 치웠다.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배가 맹꽁이처럼 볼록 튀어나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첫날부터 배가 들썩일 정도로 심한 기침을 계속했다. 결국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고 한 달쯤 지난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 해졌다. 유리 상자 속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토숑이는 유난히 겁이 많고 소심했다. 예방 주사를 다 맞고 5개월이 돼서야 몸에 항체가 생겼고, 그 길로 K는 첫 산책을 위해 데리고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걷게 해 보려고 땅에 내려놔도 요지부동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그렇게 활발하게 잘 다니는 녀석이 왜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걷지 않는 건지. 토숑이가 밖에서 걷게 하기 위해 K는 많은 노력을 했다.      


            토숑이가 산책을 시작하게 되면서 K의 삶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다섯 시면 K는 알람을 맞추는 것도 아닌데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가끔 눈이 떠지지 않을 때면 얼굴 위로 끈적끈적하고 간지러운 무언가가 “어서 일어나” 라며 K를 깨운다. 토숑이다! K가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면 마치 알람시계처럼 강렬한 뽀뽀로(?) K를 깨운다. 일어날 때까지! 토숑이는 동그랗고 까만 눈, 까만 코, 희고 곱실거리는 털, 웅장하다 할 정도로 크고 긴 멋진 꼬리털을 가졌다. 새벽에 일어나면 토숑이를 데리고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밥을 주고 K도 밥을 먹었다. 그리고 K는 지쳐서 한숨 자고 일어나서 청소와 빨래 같은 집안일을 했다. 그러다가 오후 4시가 되면 또다시 토숑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다녀와서는 저녁을 먹었고, 토숑이에게도 저녁밥을 먹였다. 그리고 샤워를 한 뒤 정신과약을 8시에 먹고 9시면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니 시간이 정말 빨리 흘러갔다.     


         K는 근 5년이란 세월을 토숑이 엄마로만 살았다. 그러는 사이 K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 반 이상을 차단했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하이힐과 정장만 입고 다녔던 K는 어느 틈에 헐렁한 티셔츠에 운동복, 운동화차림으로만 다녔다. 거울을 안 본 지도 오래. 여름이면 산모기에 하도 물려서 팔과 다리가 모기 물린 자국투성이였고, 곱고 잡티 하나 없던 얼굴은 어느새 잡티와 기미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것들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더 큰 보물 같은 시간이 바로 산책하는 시간이란 걸 깨달았다. 어느 틈에 K가 토숑이를 산책시키는 게 아니라 토숑이가 K를 산책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강아지를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K는 이 작은 생명체로부터 마음의 병과 방황의 시간을 치유받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을 채워 나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던 거다. 이 오랜 방황의 시간 동안 K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토숑이를 보면서 모든 욕망과 외로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까.  


        마음의 안정을 어느 정도 찾은 K는 38층 오피스텔로 다시 돌아왔다. 창가에 앉아 찻잎을 우려 차 한 잔을 만들고 있다. 다른 여느 찻잎과는 달리 고지대의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 자라지만 그 어떤 찻잎보다 풋풋한 과일향이 나는 봄의 차, 다즐링이다. 첫맛은 쌉쌀하지만 끝 맛은 달콤한 이 차는 다른 그 어떤 차보다 힘든 고뇌와 불안한 시간들을 견디고 나서 비로소 결실을 맺은 특별한 차다. K는 다즐링 차를 볼 때마다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비옥하고 좋은 땅이 아니라 척박하게 버려진 땅 위에 새로운 씨앗을 뿌렸다. 결실을 맺어 찻잎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충분한 물도 바람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메마른 땅에 희망을 걸어본다. 힘든 지금의 시간도 결국에는 감사할 수 있는 어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언젠가 저 땅 위에 세상 그 어떤 찻잎보다 더 향긋하고 달콤한 다즐링 잎이 자랄 것이라는 걸 안다. 어제에 머물렀던 슬픔, 그 모든 것들과 이별했다. 차곡차곡 모인 힘든 시간들을 쏟아버렸다.  


        절망은 머물러 있지 않는다. 슬픔은 과거로 흘러간다. 눈물은 발밑에서 무릎 꿇는다. 결국 모든 것은 다 흘러간다. K는 흘러간 어제를 돌아보지 않고 오지 않은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달콤한 거짓말을 또 하고야 만다. 그 누구보다 행복한 오늘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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