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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혜 Aug 20. 2023

<매일 약 먹는 여자>

(0) 8시 반 알람이 울리면 

나는 매일 약을 먹는다. 하루도 거른 적 없다. 하루에 한 번씩 열 알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약을 먹어야 잠을 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진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 


“땡그랑~”


오늘도 알람이 울린다. 여덟 시 반이다. 미리 책상 위에 올려놓은 약봉지를 집는다. 봉지를 뜯는다. 약을 한 번에 목구멍에 털어 넣는다. 알갱이가 큰 놈은 잘 들어가질 않는다. 입 속에 이미 들어간 약이 녹아서 쓴맛이 나기 전에 재빨리 봉지 속에 남아서 나를 놀려대는 큰 알갱이 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마침내 약들은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큰 컵 가득 들어있는 물을 꿀꺽꿀꺽 숨도 쉬지 않고 마신다. 약이 너무 많아서 한 번에 잘 넘어가질 않기 때문에 쓴맛을 느끼기 싫은 나는 기계적으로 물을 계속 마신다. 한밤중에 마시는 물은 맛있지 않다.  한 컵 반이나 되는 물을 마시고 나면 어느새 목구멍을 타고 약이 넘어간다. 최대한 멀리 약을 보내 버린다. 몸속에 어서 스며들어서 약이 퍼지기를 기다린다.

 

나는 조울증 환자다. 제2형 양극성 장애라고도 부른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단순한 우울증인 줄 알고 동네 가정의학과에서 항우울증, 항불안증 약만 타서 먹고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의사의 견해로 소개받은 대학병원에서 2018년 조울증과 공항장애 판정을 받았다. 


           “조울증이에요. 우울증이랑 헛갈렸겠죠. 원래 그래요.”


조울증 약을 먹으면서 좋아진 것은 잠을 잘잘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사실 그것 만으로도 만족한다. 조울증이라는 사실보다 이제는 잠을 잘 잘 수 있게 됐다는 사실. 그게 가장 큰 만족이었다. 여덟 시 반이면 약을 먹고 아홉 시 반이 채 되기도 전에 잠이 드는 나를 보면서 친구들은


           “신생아가 따로 없군. 뭔 잠을 그리 일찍 자냐”


라며 웃었다. 하지만 새벽 4시나 5시에 일어나서 할 일을 해야 하는 나는 매일 신생아가 돼야 했다. 약봉지를 꺼내놓고 여덟 시반이 되기를 기다리면 뭔가 든든한 백이 생긴 것처럼 안심이 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밤이 되면 생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온갖 우울한 생각들이 뇌에서 빠져나와 내 온몸을 괴롭혔다. 그러면 그 생각들을 순대 속에 당면을 집어넣듯이 다시 가슴속에 꾹꾹 쑤셔 집어넣는다.


           “이제 곧 약을 먹으니까 괜찮아질 거야 다 좋아질 거야.”


우울한 생각들이 억지로 다시 가슴속에, 머릿속에 들어가고 나면 허망하고 불안한 마음은 곧이어 먹게 될 “약 먹기”시간으로 달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겨서 조금은 덜 우울했다. 약을 먹고 대개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흔히 말해 “약이 올라온다”. ‘그분’이 오신 거다.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몸은 가벼워서 붕붕 떠다닌다. 말이나 행동을 평소와 똑같이 하고 있지만 어느 틈에 하지 말아도 되는 말과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이럴 때는 무조건 침대에 가서 눕는 것이 정석인데 이상하게 또 바로 눕고 싶지가 않다. 친한 친구들은 톡에서 내 말투가 달라지면 으레 “쟤 또 약 먹었구나”라고 생각하고는 가서 자라고 거의 명령조로 말하지만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저래~”라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다.


우울증인 줄 알고 졸피뎀과 항우울제, 항불안제를 복용하던 지난 15년 동안, 약 부작용으로 아주 많은 일들을 겪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으면 몸이 쳐진다. 그냥 쳐지는 정도가 아니라 가라앉아서 일어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졸피뎀이다. 잠을 자기 위해서는 졸피뎀을 한 알 먹는데 한알로도 잠이 안 와서 세알까지도 먹어봤다. 물론 결론적으론 잠이 오지 않는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약을 타러 가서 놀랐던 것은 영국에서는 졸피뎀 정량이 한국의 반도 안 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1/4의 용량을 하루 정량으로 잡고 있다. 그러니 약을 한 알 먹어도 잠이 안 올 수밖에. 문제는 잠이 안 오는 게 아니었다. 졸피뎀을 먹으면 헛소리와 몽유병 증상이 생긴다. 혼자 여기저기 왔다 갔다 거리는 거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주체할 수 없는 폭식이다. 약이 몸에 녹아들고 퍼지고 나면, 마치 좀비가 일어나듯 벌떡 일어나서 찬장과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한다. 눈에 레이저라도 달린 듯, 귀신같이 먹을 것만 보인다. 그리고 인간이 차마 먹을 수 없는 양의 음식을 먹어대기 시작한다. 바나나 열개, 과자 두 봉지, 초콜릿 과자 두 상자, 피자 반판, 수박 반통, 음식을 다 해치우고 나면 기분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더부룩하고 꽉 찬 느낌과 함께 나 자신이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우울감과 ‘약이 깨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와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런 생활을 반년 가까이하면서 몸무게는 14킬로 그램이나 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원래 많이 마른 편이어서 사람들은 얼핏 보고 살이 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점점 무거워지는 몸과 마음에 짓눌려 우울감과 불안감은 약을 먹어도 나아지질 않았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살고 싶지 않다”. 는 극단적인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차라리 죽자”


하지만 죽기 위한 행위자체가 힘들게 느껴졌다. 무기력함이 깊어지면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본 적이 많았다. 


           “눈감고 있으면 그냥 사라질 순 없나. 내일 눈뜨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 가도 잠을 자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약을 먹으면 어김없이 폭식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흉물스러운 괴물 같아서 울다가 지쳐 또 눈을 감았다. 우울증은 여기저기 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흔한 병 같은데 ‘조울증’ 하니까 뭔가 정상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사람이 된것 같아서, 정말 ‘정신병자’가 된 것 같아서 우울했다. 가뜩이나 우울한데 병의 이름이 날 더 우울하게 만들다니….. 처음 약을 처방받고 약봉지를 본 순간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 게나 많은 약을 먹을 수 있지.”

        “약 먹다가 죽는 거 아냐?”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그래도 조울증이 약을 먹어서 좋아질 수만 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폭식하는 버릇도 고쳐질 수 있다는 말에 “반드시 약을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꿀꺽꿀꺽 약을 먹을 때마다 꼴깍꼴깍 내 병이 전부 속에서 넘어가서 사라졌으면”


사실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지 3년이 넘게 지났고 그간 의사를 세 번 바꿨다. 하지만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것과 극단적인 생각을 덜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 불안증, 걱정, 우울감, 등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5년이란 시간 동안, 긴 터널 속에 갇혀 살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 그나마 강아지를 키우면서 산책하러 반강제로 외출한 게 전부였다. 거울을 보지 않았다. 내 모습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하루 24시간 중 강아지와 산책하는 두 시간을 제외하고는 22시간 동안 집 밖에 나가질 않았다. 밝음보다 어둠이 주는 평온함이 더 좋았고, 밤에는 맘껏 우울할 수 있는 이유를 합리화할 수 있어서 편했다. “다음날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졌다. 그리고 약에 의존하게 돼서 자꾸만 밤이 되어 약을 먹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은 나를 보호해 줄 안전장치인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잠을 잘 수 있다”는 보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공포감이 밀려온다. 사람이 무언가에 의지하는데 그게 생물이 아닌 무생물, 그것도 약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와의 상의 없이 약을 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환자고, 환자는 의사 말을 들어야 하니까. 


    그래서 매일 약을 먹는다. 사실 신경정신과 약 말고도 약을 참 많이 먹는다. 진통제, 감기약, 관절약, 마치 반찬을 골고루 먹듯 많은 종류의 약을 그동안 십여 년 가까이 먹었다. 관절과 두통으로 인해 진통제는 이리 오래전부터 습관처럼 먹고 있고, 허리디스크와 턱관절 때문에 관절소염제 및 근이완제도 많이 먹고 있고, 맨날 공부만 한다고 집에서 오래 앉아있다 보니까 면역력이 약해져서 1년 365일 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약이 먹기 싫다고 하면 “그래? 왜 먹기 겁나? 그럼 같이 먹자” 이러면서 약을 같이 먹어준 적도 많다. 약이 가진 무서운 효과에 대해서도 간과한 채 “약같이 먹어주는 좋은 친구”로 산 거다. 이렇게 어리석은 생활을 하지 않은 지 불과 7년 정도밖에 안 됐으니 몸이 얼마나 약에 절어 있는지는 아마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렇듯 마루타나 실험쥐처럼 매일 약을 먹으며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약을 매일 먹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매일 약을 먹지만 매일 약을 먹지 않기 위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약이 바뀌어서 열 알보다 더 많은 약을 먹고 있는 신세가 됐다. 한 번에 약이 잘 넘어가지 않을 정도다. 배부르게 약을 먹지만 이제 이 배부른 약을 그만 먹고 싶다. 조울증이란 병은 보통 사춘기 때 발현이 돼서 나처럼 빨리 발견해서 치료를 시작하지 못한 경우, 중증환자처럼 병이 깊어져서 쉽게 약을 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에세이를 쓰면서  나 스스로를 실험하고 또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병도 약도 극복하고 싶다. 한 번이라도 약 없이 잠이 들어보는 게 소원이다. 지금 나처럼 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동료들. 그리고 조울증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후유증을 앓고 있거나 그것조차 하지 못한 채 마냥 “왜 잠을 못 잘까”. “왜 이렇게 힘들까” 하며 걱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함께 약을 끊고 싶다. 한 주먹 가득 든 약 대신 달콤한 초콜릿을 손에 쥐게 될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난 약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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