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큐베이터 안의 숫자들은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산소 농도, 체온, 체중.
그중 어느 하나라도 떨어지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조금이라도 오르면 하루가 버틸 만해졌다.
아이는 여전히 산소호흡기와 영양 주사에 의지한 채 누워 있었다.
작은 발에는 주사선이, 코에는 산소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여전히 가슴 아팠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힘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체온을 스스로 유지하기 어렵지만,
호흡 패턴이 조금씩 안정되고 있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하루의 희망이 되었다.
면회시간이 다가오면 복도에는 조용한 긴장감이 흘렀다.
모두가 말없이 순서를 기다렸다.
면회실 앞에서는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와 멸균 가운을 입은 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그 짧은 절차조차 숨이 막힐 만큼 떨렸다.
그 문 하나를 통과하면, 바로 그 안에 내 아이가 있었으니까.
어떤 부모는 며칠째 나타나지 않았다.
아기들은 여전히 거기 있었지만, 그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이 너무 아팠다.
누군가는 포기했고, 누군가는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 차이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시간의 길이’ 같았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병원을 찾았다.
짧은 면회시간 동안 아이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그 숫자들이 아이의 호흡과 함께 이어질 때마다 나의 불안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어느 날 간호사가 말했다.
“오늘은 체중이 700g 넘었어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단 10g이 늘었을 뿐인데, 그 숫자가 내겐 천금 같았다.
병원 밖으로 나서면 봄이 한창이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겨울 같았다.
세상은 흘러가는데, 내 시간은 아이가 있는 그 인큐베이터 속에 멈춰 있었다.
밖에서는 봄이 찾아오는데, 나는 오직 체중표의 숫자만 바라보고 살았다.
퇴원은 아직 멀었다.
의사는 말했다.
“스스로 호흡을 유지하고, 체중이 일정 기준을 넘을 때까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는 듯이, 그러나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조금 더’라는 말이 얼마나 긴 시간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아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조금씩이지만 잘하고 있어.
오늘도 엄마가 왔어.”
인큐베이터 너머로 아이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작은 떨림이 내게는 대답처럼 느껴졌다.
돌아보면, 그 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실 매일 기적이 자라고 있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속도로, 아이는 하루하루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