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토끼

피의 연대기를 떠올리며

by 오지

오늘은 제주에 눈이 왔다.

어제도 오긴 왔지만, 좁쌀만큼 뿌리려다 사라진 셈이라면 오늘은 말 그대로 펑펑.

손 뭉치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아이들의 어린이집과 아이들의 아빠의 회사는

한라산 언저리.

나라는 사람이 직장에 묶여 있는 몸이 아니라

굳이, 꼭, 반드시 아이들이 등원해야할 이유가 없는데, 아이들의 아빠는 아이들에게 눈을 보여주겠다며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이른 기상으로(7:30) 아이들을 몰고 나가셨다.


잠옷 바람의 엄마인 나만 우두커니 집에 남았다.


간밤에 나에게 번개 같이 들이닥친 건

단순한 짜증과 히스테리만이 아니었다.


그것의 빨간토끼였다.

빨간토끼가 무엇이냐 하면, 나의 학생 시절 이야기.

중학교 시절 나의 한 친구는 하얀토끼가 그려진 방석 위에 앉아 수업을 듣다가 초경을 하여 그 토끼를 빨간토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뒷 일을 도와주러 나도 같이 화장실에 따라 갔던 기억이 난다. 당황한 그 친구는 눈물을 펑펑.


오늘 나는, 빨간토끼를 맞아 그 친구를 떠올린다.

눈이 펑펑 오는 오늘과

짜증이 펑펑 나고 욕지기가 오르던 어젯 밤.

이 빨간토끼는 왜 나를 빨갛게 화나고 예민하게 만들며 오는 걸까.


우리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빠는 나라는 화산과 살고 있다. 나도 빨리 평온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딸 둘인 우리 아이들의 빨간토끼는

당황스러운 기억보다 자연스럽게,

일회용 화이트 보다는 다회용 베이지,

많이 아프고 고통스럽지 않게 왔으면 좋겠다.


엄마인 나는 무얼 도와주어야 할까.

숙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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