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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웅주 Sep 02. 2018

5분간의 대화.

“그 잠깐의 마… 가 꽤 길게 느껴질 때가 있어.”


왜? 대화가 잘 안 통해? 

응. 그럴지도, 그 순간 걔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음… 넌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얘가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고, 그리고 난 무슨 말을 이어야 할까.

와… 어렵네.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이었어? 너?

아니, 대화라는게 아무래도 이어져야 하니까. 다 그렇지 않나?

응. 그럴지도. 근데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이어지던데. 왜 다 그렇지 않아?

무조건반사식으로 뭐 감탄사나 ‘진짜?’ 같은 거라도.

그니깐… 그게 대화가 잘 되면 그렇지. 근데 우리는 중간에 깊게 침묵이 이어진다니깐…


아 그리고 자꾸 왜 이야기 하면서 내 눈치를 보는지 잘 모르겠어.

네 눈치를 본다고?

응.

아.. 근데 너 그거 알아? 너는 다른 사람들이랑 대화할 때 눈 안마주치는거?

내가?

알아.

왜 그런건데?

뭐… 왜 그렇다기 보다는… 잘 모르겠어.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 하기 좀 그래. 이게 무섭거나 꺼려진다기 보다는 부끄러움이라고 해야 하나. 아냐. 부끄러움이라기 보다는 좀 민망하거나, 상대방의 눈동자를 내 눈동자로 본다는 게 좀 그래.

아 진짜? ㅋㅋㅋ 근데 암튼 너 좀 그래. 너가 그러니까 아마도 너 눈을 보면서 말하는 건 아닐까?

아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근데 그런 건 아닌거 같아. 이건 뭐 아이컨택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냥 대화가 잘 안이어진다니까.


관심사가 달라?

딱 맞는 것도 아닌데 아예 다르지도 않아.

보통 관심사가 맞으면 대화가 잘 통하지 않나?

예를 들면, 무도 좋아해요? 아 진짜? 그럼 어제 무도 봤어요? 아 그 장면 ㅋㅋㅋ 대박이었죠. 저는 케이블에서 해주는 옛날 무모한 시절부터 다 좋아해요.. 아 네네 맞아요 그 타이즈 ㅋㅋㅋ 노홍철이랑 정형돈 다시 돌아왔음 좋겠다. 아? 정말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뭐 이런 식으로.

저런 식으로는 통하지. 근데 저 대화가 마무리 되면 그 다음 대화에 맥이 끊어진다고.

무도 이야기 하면 다음에는 1박 2일 이야기 하면 되자너. 보니깐 대화가 안 통한다는 게 컨텍스트 단에서의 문제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냐. 그냥 막 뜨겁게 올라서 서로 웃으면서 대화하다가 갑자기 삭 가라앉으면서 다시 잠잠해지고, 서로 시선을 돌려서 차 마시거나 핸드폰 보거나 뭐 그러지.

그럼?

응? 그럼 내가 막 머릿속으로 다음 화제를 생각해서 말을 건네지. 그럼 또 다시 잠깐 이야기 하고… 차라리 만나서 대화하는 건 그래도 나은데, 저녁에 전화하거나 카톡 보낼 때 좀 더 어려워.

예를 들면?

전화는 아무래도 서로 못보게 되니까. 어느 순간 말하다 보면 소재가 끊기고, 그럼 ‘지금 뭐해요?’ ‘졸립지 않아요?’ ‘밥은요?’ 같은 뻔한거 물어보게 되고.. 그러다 뭐 담에 더 이야기 할까요? 하는 식이고. 카톡은 이상하게 처음에 말 건낼 때가 어렵더라고.

뭐 그건 아무래도 더 그렇긴 하겠네. 너 너무 부담가지고 있는거 아냐? 생각이 너무 많은데?

내가 원래 좀 그래. 아, 그리고 나는 걔가 아쉬운 이야기나 뭐 어려운 말 할 때 그냥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 말하냐? 너무 과한 배려? 지나친 살핌 같은게 좀 불편할 때가 있더라고.


야, 됐고. 그냥 걔랑 너랑 안맞는거야. 뭐하러 그렇게까지 노력하냐.

야 그렇게는 누구나 얘기하지-

너는 너무 대화라는 행위 자체에 자체에 대해서 강박을 갖고 있는 거 같아. 지금 우리가 이렇게 길게 떠든 것도 대화잖아. 아, 나는 얘랑 대화를 해야지. 라는 생각 없이 그냥 시작한 이야기가 대화가 된 거지? 너는 몰입해서 너의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어줬고 그리고 내가 궁금한거 물어보거나 내 생각을 이야기 한거고. 그게 대화 아냐?

너는 편하니까 그렇지. 나에 대해서도 잘 알고.

그니깐, 그 대화라는 행위 자체를 너무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니까? 넌 아무하고나 대화하면 다 친해지고 이해되냐? 대화가 숙제가 되면 힘들겠지. 자꾸 이야기 하면 내가 너 가르치는 거 같으니까 너 한번 잘 생각해봐봐. 암튼 난 그렇게 생각해. 

아, 그리고 넌 그 사람 별로 안좋아하는거 같아. 근데 어떻게든 관계를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 그거 약간 직업병 같기도 해.


나 먼저 간다.


** 이번 주제는 ‘벽’이었습니다만, 약간의 목표랄까... 본문 자체에 ‘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벽’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위 이야기는 실제 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대화는 아니며, 단순한 남-녀 간의 대화 속에서 오는 단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상대방이 꼭 ‘여친’이나 가상의 ‘애인’을 상정하고 쓴 것만도 아닙니다. 그게 이번 글에서 나름대로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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