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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Jun 20. 2020

죽은 자의 집 청소

산 자의 마음 청소

나는 왜 이 책을 그토록 읽고 싶어 했는가?

책이 출간되기 전 서평단을 모을 때도

신간 예고를 하는 출판사의 인스타그램에서도

휴대폰 화면을 넘기지 못하고 내 마음은 이미

이 책으로 향하고 있었다.

작가 소개의 짧은 몇 줄을 보고

늘 내 안에 찌꺼기처럼 남아있던 호기심들이

단단히 뭉쳐져 덩어리가 되었다.


죽음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몇 해 전 시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태어나 처음 장례식장에서 상주 노릇을 해보았다.

워낙 갑자기 돌아가셔서 모두들 호상이라고 했는데 그 호상은 왜 호상 인지도 모르겠는데 모두들 하하호호 웃으며 장례식 내내 고스톱도 치고 실컷 먹고 마시고 하며 보내었고 할머니의 두 딸들 빼고는 남은 이들 누구에게도 눈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슬프지는 않았지만 아주 이상한 기분이 내내 들었고 첫날은 식은땀에 범벅이 되어 바들바들 떨기까지 하는 몸상태가 되었다. 누군가 봤다면 손주며느리가 시할머니의 죽음을 몹시 슬퍼해 병을 얻은 것 마냥.


다행히 세 아이 핑계를 대고 집에 와 씻고 한 숨자고 나니 괜찮아져 다시금 장례 마무리를 하러 갔다. 시할머니는 이제 칠십 중반 이셨는데 일 년에 서너 번 제사 때 뵙는 일 말고는 친밀한 왕래는 없었던 터라 결혼 십오 년이 지나도 그리 정이 깊지 않았다. 다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친할머니 나이에 비해 아직 한창이신데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누군가 가족으로 엮여있던 사람이 죽었는데 이리도 슬프지 않은 내가 냉혈한 같고 이상했다. 그 이상함에 속이 울렁거리고 내내 몸이 좋지 않았나 보다.


시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훨씬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도 남의 일인 양 내 마음은 눈물 한 방울 내어주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울 엄마가 어릴 적부터 동내에서 유명한 미친 x이었다. 그 연유로 친할머니가 결혼을 극구 반대하셨지만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한 것. 아버지는 장모를 위해 몰래 논, 밭을 팔아 병원 치료도 받게 하고 많이 좋아진 장모를 돌아가시기 몇 해 전까지 모시고 살았다. 물론 아버지의 그때 첫 마음과 살아가며 장모를 향한 마음의 온도차는 영상과 영하를 오고 갔지만.


중3부터 고3까지 6년 정도를 외할머니, 부모님, 두 남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그저 매일같이 TV만 보시던 것과 가족들이 하나 둘 돌아오는 저녁이면 화투한 판 치자며 슬그머니 꿍쳐놓은 돈 주머니를 꺼내시던 모습, 참외를 참 좋아했고 서부영화를 좋아했으며 내가 용돈이 없다고 투덜대면 말없이 오천 원 지폐를 바지 속에서 꺼내 주던 모습이다.


그리고 대학, 결혼, 생계를 핑계로 나는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왔고 친구보다 자주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는 눈물 한 방울 부조하지 않는 인간이 된 것이다.

사실 아직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출근길 참외단지를 지나면서 “아! 저 노란 참외 우리 외할매가 좋아하는데 택배 한 상자 보내야지.” 했었다. 결혼할 때 남편과 인사하고 그동안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우리 외할매가 왜 하필 돌아가시기 전날 생각났던 것일까?


쓸쓸한 장례 이후 한 번도 외할머니에 대해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엄마에게 너무 힘들었던 엄마여서 일까? 아니면 엄마도 엄마에게 해주지 못한 많은 일들이 후회스러워서 일까? 나는 앞으로도 보내지 못한 참외 한 상자에 대해서 엄마에게 말 못 할 것 같다.


그 날 그 장례식장에서 부조하지 못한 눈물들에 곱곱이 이자가 붙어 왈칵 쏟아져 버릴 것을 알기에.

자식, 사위 눈치 봐가며 한 푼 두 푼 모았던 쌈짓돈을 뾰족하게 날이 선 손녀에게 두말없이 내어주던 그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못난 나를 들킬까 봐.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p101


애써 외면하려 했던 나의 슬픔을 마주 보는 일.

내 안에 물들어 있던 아픔을 지워 내는 일.


그래야 죽은 분들 앞에서 마음껏 울 수 있을 거라 이 책이 말해주었다. 문득문득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그때 그 죽음 앞에서 실컷 토해내고 내 마음 청소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더 웃을 수 있을 텐데.


우리는 그저 우연히 같은 해에 이 나라에 태어나, 당신이 좀 더 일찍 죽었고 나는 아직 살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서둘러 경험한 죽음을 향해 나 역시 잠시도 지체하지 못하고 한 걸음씩 다가설 뿐입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그렇게 예외 없이 죽음을 고스란히 맞이합니다.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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