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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Jul 29. 2020

그 녀석이 요리를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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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

월 화 수 목 금 토

일하면서 틈틈이 집안 청소에 빨래에

고놈의 코로나 때문에 학교는 격주로 등교하고

그에 따라 아침은 더 분주해졌다.

집에 있는 녀석들 밥까지 준비해 놓고 와야 하니까.

일요일이면 물먹은 솜 같은 몸뚱이가 되어

하루 종일 드러누워 자고 싶지만

밀린 집 청소도 해야 하고

왠지 모를 죄책감에 어디라도 나가본다.


요즘 큰 아들 녀석은 중1이 되어

목소리도 제법 걸걸해지고 샤워하고 나오면

후다닥 지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예전에는 맨몸뚱이로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더니.


하루 종일 뭐하는지 방콕 하여

끼니때만 슬쩍 얼굴을 비추고는

성주신처럼 쓱~쓱~ 몰래몰래 지나다닌다.


막둥이 빼고 중3 딸과 중1 아들 녀석에게

용돈은 카카오카드로 지급해 주는데

수시로 내역을 체크할 수 있어 참 좋다.

(나만 좋겠지 ㅋ)

딸아이는 맨날 화장품에 자잘한

옷가지들을 구매하고

아들 녀석은 무보까국밥, 이마트에브리데이,

7일레븐, 신전떡볶이, 이웃집소녀떡볶이 등

먹고 또 먹고다.

혼자 국밥집에서 보쌈 1인분 세트를

시켜먹는 클라쓰~


아! 코로나가 우리 아이들을 망쳐놨어!


맨날 유튜브로 먹방 보고 또 보고

새벽에 뽀시락 거려서 나가보면

불닭 X치즈... 씩 웃는다.


혼밥을 너무 오랫동안 즐겨 싫증이 났는지

며칠 전부터 녀석은

뭔가 요리를 해주겠노라 말했다.


남매 중 중간, 그러나 아들로는 장남이라

어렸을 때부터 유독 엄하게 교육하고

칭찬에 인색했던 못난 엄마에게

무슨 사랑이 넘쳐서 요리를 해주겠다니

맘 속으로 기특하기도 하고

사고 칠 것 같아 나중에 나중에 하며 미뤘다.

오랜만에 일찍 일을 마치고 남편과 장을 보던 중

"그래도 녀석이 해 준다 하는데 한번 맡겨보고

못해도 억지로 먹고 좀 칭찬해주자." 한다.

전화로 재료를 묻고 장을 봐 갈 테니

진수성찬을 차릴 준비를 하거라! 했더니

신난 녀석의 표정이 수화기 너머 그려진다.


메뉴는 오븐치즈스파게티.

베이컨, 옥수수통조림, 시판용 소스,

양파를 넣고 달달 볶고

면은 휴대폰 타이머를 맞추고는 뚫어질 듯 냄비를 쳐다보며 집중하여 끓여낸다.

마지막 오븐 사용은 누나에게 온갖 애교를 부려가며 도움을 청하여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아. 맛있다.

퇴근 후 배도 고픈데 한 시간 넘게 기다렸으니

시장이 반찬이다.

남편과 내가 한 그릇 뚝딱 비우자 녀석은

부끄러운지 "먹을 만하네요." 하며 씩 웃는다.

형아를 라이벌쯤으로 여기는 막둥이도

 “형아 맛있다." 하며 잘 먹으니 어깨가 쓱 올라간다.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이 집에 오면 칼은

무서우니 감자칼로 사과껍질을 깎아 대접했고

어린이집에서 간식을 받아와도 자기 입에 맛있는 거 들어가는 것보다

엄마인 내가 맛있게 먹어주면 더 좋아하던

그런 따뜻한 녀석이었다.

바쁘다고 힘들다고 대충 해 먹고 시켜먹고 사 먹고 하던 못난 엄마에게

녀석의 따뜻한 한 끼는 열 달을 품으며

잘 키우겠노라 다짐했던 나를 상기시켜 주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도 기쁘게 생각하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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