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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Jul 31. 2020

애써 외면했던 질문들

<천년의 수업>으로 답을 얻다.

인간 수명이 연장되었다 해도 많이 살면 백 살인데 벌써 1/3 이상 살아 버렸다.

그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지 않았던가?

아마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하던 시절에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죽음은 무엇인가?

    

돌이켜 보니 주된 질문들은 대충 추려지는데 그 답은 어디서 구했으며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 도통 생각나질 않는다. 한참을 생각해보니 주로 만화책과 소설책에서 답을 얻었던 것 같다. 책 속 주인공이 되어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통쾌한 장면이 나오면 함께 속 시원해하고 울고 웃으며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넘겼다. 그 나이에 감당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을 겪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이 다 그 책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대학에 가서부터는 전혀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술이었다. 술이 좋았던 건 아니고 그 술자리가 좋았고 체대 남학생과 내기할 정도로 잘 마시고 멀쩡한 내가 좀 멋져 보이기도 해서였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지나고 나니 몸도 슬슬 망가지고 남은 건 망한 대학 성적뿐이었다. 술을 끊고 나서는 아주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학교 마치고 여섯 시부터 열두 시까지 아르바이트하고, 방학 때도 풀타임 아르바이트로 술 마실 틈이 없었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결혼식 뒤풀이에서 먼저 필름이 끊긴 남편 대신 폭탄주 11잔을 마신 것이 나의 마지막 폭음이다.

     

세 아이 키우며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며 책 읽기는 나에게 사치 같았고 사실 읽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스물넷에 멋모르고 시작한 결혼 생활은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고 그토록 원해서 얻은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나도 엄마는 처음이고, 아내도 처음이잖아!”를 맘속으로 외치며 투덜거린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머릿속에 ‘훅’ 치고 들어온 질문이 나를 무너지게 했다.

     

넌 지금 뭐 하니?  

   

그래 난 뭘 하고 살고 있는 거지? 왜 늘 투덜거리고 삶이 불만족스럽고 구멍 난 항아리를 채우는 콩쥐처럼 하루하루를 사는 거야? 뭐가 문제야?라는 질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

     

그렇게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2년 정도를 여행, 공부, 남편이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 등을 하고 뒤 돌아본 나는 또 폭망 했다는 걸 알았다. 남편은 저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이들도 기다리다 지쳐 반 포기 상태였다. 그동안 엄마로 아내로 고생했으니 나의 시간을 지지해 주고 보상받고자 했던 어리석은 나의 생각은 지극히 나만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는 판단을 내린 후에도 에포케, 즉 판단을 멈추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여부를 다시 살펴보며, 이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익이 되고 옳은 동시에 아름다운 일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 행동할 거냐구요? 판단이 선다면 신념을 가지고 행동을 하되, 독단에 빠지지 않도록 잠시 멈춰서 또다시 에포케 하라는 말씀입니다. 에포케의 습관이야말로 질문을 끊임없이 지속해나가는 힘이 될 것이며, 꿋꿋이 행동하면서도 융통성을 갖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p39

이 책 이 문장을 그때 읽었더라면...


좀 더 나은 엄마가 되고자,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나를 다독이려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들어선 집 앞 책방에서 나를 새로 써 볼 일들이 생겨났다. 책방 대표가 되었고, 책을 다시 읽게 되었고, 멀어졌던 남편이 다시 돌아왔으며 아이들에게 더 나은 엄마가 되는 길을 찾았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책이 메꾸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충만하게 하고 책을 읽는 모습이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좋은 향기로 스며들며 훗날 내가 남긴 글들이 나를 추억하고 이야기함에 보탬이 될 것을 상상하며 매일을 보내는 것은 참 행복하다.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만이 길가에 핀 꽃을 보고, 그 꽃이 어떻게 피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만이 그 길의 흙과 빛, 바람을 살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묻는 사람의 눈에는 또 다른 길이 보이며,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에게는 점점 더 넓은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스스로 묻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위기에도 자기 나름의 답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마음껏 질문을 던지십시오. 한때 우리는 모두 질문이 많던 사람들입니다. p31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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