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업고라도 가겠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문>이라면 당신을 업고라도 가겠네.
그들의 사랑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또 다른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으며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바꾸려는 노력, 산산이 부서져도 눈앞의 사랑에 모든 것을 내던지는 무모함 그런 요소들로 아름답고 눈부시게 만들어지고 채워진다.
뻔한 이야기 뻔한 결말이지만 로맨스 영화와 드라마가 계속 생산되는 이유는 우리는 인간이고 우리의 본능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화면 속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향한 열정이 솟아나고, 부드러운 입술로 입을 맞추는 장면을 보면 심장은 이미 빠르게 뛰고 있다.
앙드레 지드 본인의 이야기가 섞여 있어 그의 일기 같은 작품이었다. 절반 정도 차지했던 알리사가 제롬에게 보냈던 편지도 지드와 결혼한 사촌 누이 마들렌의 편지를 참고했으며, 알리사 어머니의 외도도 실제 마들렌의 어머니에게 있었던 일이었으니 이 작품이 나에게 말하려 하는 메시지가 더 와닿았다.
지드는 이 작품의 서문 초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을 통해 나 개인의 의견을 찾으려 하면 길을 잃게 마련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말할 계제가 아니다. 내 역할은 독자로 하여금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성찰(省察)
1.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
2. <가톨릭> 고해성사 전에 자신이 지은 죄를 자세히 생각하는 일.
어머니의 외도와 가족을 배신하고 떠난 일을 어린 나이에 경험한 알리사는 맹목적으로 신앙에 집착하며 순결하고 완벽한 인간을 그린 나머지 사촌동생 지드를 사랑하지만 끊임없이 인간적 욕망을 거부하고 인생의 가시밭길을 홀로 걸어간다. 지드는 그런 알리사의 벽이 너무 높아 쉽게 넘지 못하며 그 또한 알리사가 넘지 못하는 벽을 세우고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했을지 현재가 아닌 알리사와 제롬의 그때였다면 과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벽을 허물수 있었을까?
“아! 제롬, 왜 돌아왔니?”
나는 그녀에게 입 맞추려고 몸을 굽혔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내 생애는 결정되었다. 지금도 나는 괴로움 없이 그 순간을 회상할 수 없다. 물론 나는 알리사의 슬픔의 원인을 아주 어렴풋하게만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닥거리는 그 작은 영혼과 흐느낌으로 온통 뒤흔들린 연약한 육신에게, 그 슬픔이 너무도 벅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p25~26
이때 제롬은 그저 사랑에 눈이 멀어 알리사의 말은 듣지 않고 계속 밀어붙였어야 했다. 알리사가 어머니에 대한 충격으로 끝이 없는 어둠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뒤따라갔어야 한다. 그러나 그 역시 잘못된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작가가 가장 두렵게 생각한 것은 자신이 내린 선택이 습관이나 관습으로 인해 경직됨으로써, 스스로 그 선택 속에 갇혀버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삶을 그렇게 살았는지 실제 그의 사촌 누이 마들렌과 결혼 생활에 있어서도 둘은 평생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고 살았으며 애인에게서 자식을 낳았고 친구의 아들과 동성연애를 했다 한다.
그는 “나는 내 이후에 올 사람들이 나로 인해,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나아지고, 좀 더 자유로워졌음을 인정할 것을 생각하면 흐뭇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삶 또한 한 편의 작품이 되어 성찰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가 위대한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수준에 있어 이 작품은 처음엔 알리사와 제롬의 사랑이 답답하고 화가 나기만 했지만 결국 그 둘을 한없이 동정하게 되었고 알리사가 그토록 원하던 천국에서의 휴식을 기도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함께 늙어 가는 것이 그들의 목표엔 너무도 못 미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최선은 그것이고 인생에 있어 어떠한 좁은 문이 내 앞에 생길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업고서 그 문을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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