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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Sep 17. 2022

감정 청소

멘탈테라피스트 라니 발음하기도 어려운 단어이고 어찌 보면 그냥 막 갖다 붙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문득 내가 좋아하는 미드 중에 ‘그’가 생각이 났다. 바로 멘탈리스트의 패트릭 제인. 언제나 유쾌하고 무장해제 미소를 남발하는 그는 상대의 심리와 행동을 관찰하여 마음을 읽어 버리고 범인도 척척 밝혀낸다. 그런 그를 생각해보니 물론 영화 속 인물이긴 하지만 이 직업이 무척 궁금해졌다. 직업이라기보다는 봉사와 나눔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을 쓴 저자는 스포츠의학박사이자 일본 최고의 멘탈테라피스트 이고 ‘몸과 마음의 치유’, ‘건강’을 테마로 한 테라피스트와 지도자 육성 외에 기업이나 병원, 스포츠클럽과의 협업을 실시해왔다. 사람들의 우울증 개선 및 방지를 위한 멘탈테라피 보급에 힘쓰고 있다. 막 갖다 붙인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전직은 일본항공 국제선 승무원이었고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이 반복되어 불면증이 생기자 그때 공부를 해서 이런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니 왠지 더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하게 책 앞장에 편지가 있어 이 책이 나에게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2017년 4월부터 ‘석세스 코어’라는 7주 과정의 강의를 수료하던 날 먼저 수료한 선배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다. 벌써 일 년이 지났는데 한 번도 읽지 않았다니 나는 무엇 때문에 책을 멀리하게 되었으며 읽지 않게 되었는지 의문스러웠다. 내게 맞는 책을 만나지 못해서?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알지 못해서? 독서는 사치라고 생각해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는 ‘지금이라도 알았고 즐거우니 되었다‘고 생각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얼른 커피 한 잔 내려 드라마 대신 책 보는 일이 많아졌고 차에도 항상 두어 권의 책을 두고 틈틈이 보게 되었다. 심지어 쇼핑 대신 읽고 싶은 책을 검색하는 일까지 하고 있으니 내가 봐도 내가 많이 변했다 싶다.


저자는 참으로 식상하게 많이 출판되고 있는 이런 종류의 소재로 글을 썼지만 읽는 동안 자꾸만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주고 눈은 책을 읽고 있지만 벌써 몸이 따라 하고 있는 신기한 책 읽기를 선물해 준다. 좋은 책 나쁜 책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나의 편견으로 다 그렇겠지 하고 몇 장만 보고 만다면 이런 재미있는 읽기도 경험하지 못하니 일단 책은 끝까지 읽어보고 판단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끝까지 다 읽어 보는 나를 칭찬해 준다.


사소한 일에 울적해지기 쉬운 사람은 의외로 많고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성실한 사람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 우울증 진료환자는 남성이 22만여 명, 여성이 45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일본도 100만 명에 달하니 저자의 말대로 일종의 스트레스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런 마음의 병도 생활 습관병인데 식습관, 음주 습관처럼 일상에서 울적해졌을 때, 간단한 방법으로 마음을 미세하게 조정하면 마음의 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각종 스트레스로부터 나의 마음을 지키고, 울적해진 마음을 빠르게 회복시키며 애초에 울적해지지 않는 마인드 유지를 위한 34가지 요령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어 소장하면서 두고두고 봐도 좋은 책이다 싶었고, 너무나 센서티브한 남편과 이제 곧 북한의 두려움 대상이 될 중학교 1학년 딸아이에게 당장 선물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중 몇 가지를 보면 <지쳤을 때 손톱 뿌리를 자극한다/졸릴 때는 쁘띠 명상을 한다/울적해지지 않는 아침 운동>등 돈이나 시간, 특별한 장소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이 책을 보면 좋겠다. 책을 선물해준 그 선배가 참 고맙다. 그 사람은 예전부터 책 읽기가 자신의 사업이나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으며 나에게도 수차례 이야기했으나 그때는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다 때가 있는 법 나의 무지함을 내가 견디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되면서 등 떠밀리듯, 먹기 싫은 보약 먹듯 나에게 책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중요한 일상이 되어 버렸고 때로는 마음껏 울게도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실실거리게도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도 해 준다.


나에게 상식 밖의 불행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나는 원래 큰일에는 대범해’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고 그때마다 위로를 거부하고 혼자 있기를 더 좋아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일들 뒤에 나는 내 마음을 접어두고 주변을 살피며 신경 쓰느라 정작 찢어진 내 마음을 붙이지도 못한 채 살아왔고 때때로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어느 날 제주도의 화산 분화구에 갔을 때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감당하고 저 아득한 곳으로 나를 던져 버리고 싶었다. 지금도 안개가 가득했던 그 깊고도 신비한 곳을 떠올리면 아프기도 하고 나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곳 같아 좀 멋지다.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도 하고 나에겐 어느 하나 순탄하게 흘러온 시간들이 없었으나 그 안에서 나만 잘하면 되었다. 그 ‘나만 잘하면’이 더 큰 우울감을 불러온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일도 육아도 남편과의 관계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만 잘하고 나만 좀더 참으면 그냥 좋게 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미움받기 싫어 내 목소리는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 많았고 남편과 자녀들에게조차 마음껏 마음을 주지 않았다. 깊은 반성으로 요즘은 아이들 생각만 해도 눈물부터 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은 나만 감당하고 그들에게는 주기 싫었는데 결국 내 마음까지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인생은 장대한 드라마입니다. 어차피 찍어야 할 드라마라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일, 정말로 실현했을 때 가슴이 뛰는 일을 하는 게 어떨까요?

28p


남편이 말했다. ‘너는 왜 끝이 없냐?’ 그냥 애들 옆에 내 옆에 있으면 안 되냐?‘ 하며 늘 집에 계시며 삼시 세끼 열심히 챙겨주시던 자신의 어머니와 나를 은근슬쩍 비교한다.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도 나를 잊고 지금껏 성실히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그랬다가는 그 분화구로 어느 날 나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고 나의 남편인 당신은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불편할 것이다.


예전부터 시간만 된다면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미루고 미루었지만 나에게 그 시간은 오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만들면 될 것이었는데 조금 미움받고 내 목소리를 내고 그러면 될 것을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적절한 시기에 나는 찢어진 나를 붙이고 들여다보며 위로해주었고 너무나 기뻐하며 예전의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정을 소화해 나가고 있다. 나의 이러한 기쁨이 남편과 아이들의 기쁨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나의 욕심임을 알고 나의 기쁨까지만 만족해한다. 대신 그들에게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연습을 조금씩 하고 있다. 나의 행복을 내세우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먼 미래를 바라보면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전보다 조금 지저분한 집과 잦아진 외식, 가끔 잊어 비리는 학교 준비물, 급할 때 준비되어있지 않은 양복 등 소소한 불편들이 모여 큰 비난과 시선으로 다가오나 결국엔 중요한 건 행복한 나이고 엄마이고 아내인데 언젠가는 그들도 알아줄 날이 있겠지. 없어도 할 수없다. 나는 오늘도 나아갈 것이고 이제는 제법 단단히 붙여져서 다시 찢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당신이 어떻게 하고 싶고 되고 싶은지가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결국 정답은 나에게 있습니다.

190p


#감정청소 #지멘지준코 #다산 #독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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